[홍수열의 쓰레기 개론 101]
환경부, 일회용품 규제 또 미뤄
컵 보증금제는 세종·제주만 시행
정부 ‘2025년까지 폐플라스틱 20% 감축’ 목표
강력한 규제 없인 달성 어려울 것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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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온라인 소비, 배달문화 증가로 인해 일회용품 사용이 대폭 증가했다. 그린피스가 지난해 8월 841가구를 대상으로 일주일 동안 사용하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조사했더니 7만8000개에 달했다고 한다. 1인당 하루 평균 4개의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한 셈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위생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진 점을 노려 기업들의 위생 마케팅도 극성이다. 핵심은 일회용품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일회용 행주나 수세미, 도마까지 나오고 있다. 어떤 기업은 일회용 행주 사용을 인증하면 상품을 주는 행사까지 개최하면서 일회용품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 모 지자체는 코로나19 대책의 일환으로 일회용 앞치마를 음식점에 나눠주면서 손님들이 앞치마를 공유하지 않도록 했다. 행주 등을 위생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지식을 확산시키는 게 아니라 아예 일회용으로 대체하자고 한다.

한편에서는 기후위기와 미세 플라스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는 캠페인을 하고, 또 한편에서는 플라스틱 사용을 늘리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어질어질한 세상이다. 기존에 사용하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것조차 버거운데 일회용 제국의 영토는 계속 팽창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일회용품 사용 규제도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2018년 쓰레기 대란의 뼈아픈 교훈이 5년이 채 되지 않아 없던 일이 되고 있다. 지난 4월 1일부터 시행된 매장 내 플라스틱 일회용 컵 사용 금지는 단속 유예로 인해 실질적으로 유명무실해졌다. 24일부터 매장 내 일회용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젓는 막대 등의 사용이 금지되는데, 이것도 1년간의 계도 기간을 가지겠다고 한다. 1년 동안 단속하지 않겠다는 것이니 매장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것을 방치하겠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법을 개정한 후 1년의 준비 기간을 준 것인데 또 1년의 계도 기간을 주면 내년 이맘쯤에는 정착이 돼 있을까?

지난 6월 10일 시행 예정이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는 12월 2일로 미뤄지더니 그나마 제주도와 세종시 우선 시행으로 축소됐다. 전국 시행은 2024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가능할지 지금으로서는 기약할 수 없다.

6월 10일 종로구 스타벅스 더종로R점 앞에서 전국카페사장조합과 컵 가디언즈의 공동주최로 소상공인 피해 없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시스·여성신문
6월 10일 종로구 스타벅스 더종로R점 앞에서 전국카페사장조합과 컵 가디언즈의 공동주최로 소상공인 피해 없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시스·여성신문

환경부는 얼마 전 발표한 ‘전 주기 탈 플라스틱 대책’을 통해 2025년까지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을 2021년 대비 20%P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업자 지원과 소비자 인센티브 강화를 통해 다회용기 사용을 확대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계획이다. 기존 규제 강화 정책을 포기하고 다회용기 사용 지원을 통해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정책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소비자와 사업자의 저항을 줄이는 ‘넛지형 감축수단’이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결국 규제 반발을 이겨낼 수 있는 정책적 의지가 없음을 보인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인센티브만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다회용기 사용을 늘릴 수 있을까? 그 성과가 과연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을 향후 3년 만에 20%P 줄이는 결과로 나타날까? 텀블러 사용 시 할인 제도를 지난 20년 동안 시행했지만 텀블러를 들고 다니면서 음료 등을 담아 가는 비율은 처참한 수준이다. 다회용기 사용 확대는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일회용품 사용 억제를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일관된 규제 적용으로 표현될 때 민간은 자발적으로 다회용기를 사용할 것이다.

지금처럼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그나마 지난 몇 년간 일회용품 규제 강화 흐름 속에서 생겨나던 다회용기 산업의 싹이 짓밟힐 것이다. 매장 내 일회용기 사용 금지에 맞춰 다회용기 대여·세척 서비스를 준비하던 기업들은 또 한 번의 좌절을 겪을 텐데 연속된 믿음의 배신을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일회용품 규제엔 많은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일회용품이 확산되는 것을 방치할 수도 없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규제는 없다. 어차피 겪어야 할 고통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뚫고 나가야 한다. 규제를 피한다면 환경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지금 우리 곁의 쓰레기』 저자. 2014년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를 설립해 폐기물·자원순환 정책 및 제도 등에 조언을 제공하며 쓰레기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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