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뉴스·SNS 끊은 ‘재난 세대’…집단 트라우마 극복하려면
[이태원 참사] 뉴스·SNS 끊은 ‘재난 세대’…집단 트라우마 극복하려면
  • 진혜민 기자
  • 승인 2022.11.08 18:54
  • 수정 2022-11-09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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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경험자’ 트라우마 진단 질문 5개
재난 과정 반복적으로 보는 일 피해야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 1577-0199번
대학 내 긴급심리상담 지원 확대
초중고 학생 위한 ‘위(Wee) 센터’ 운영
“대형 참사·비슷한 연령대…집단 트라우마 원인”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 시민들은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국화 꽃, 편지 등을 놓고 있다. ⓒ홍수형 기자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 시민들은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국화 꽃, 편지 등을 놓고 있다. ⓒ홍수형 기자

“또 우리 세대에서 이런 참사가 발생했어요”(26세 대학생 임영나씨)

300명이 넘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 대부분이 10·20대다. 사망자 156명 중에는 20대가 104명(67%)으로 가장 많다. 2014년 ‘세월호 참사’에 이어 또 한 번 또래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 20대에 집단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외상)가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회복에 대한 관심이 쏠린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동년배인 임영나씨(25)는 또다시 또래의 죽음을 목도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시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요. 세월호 참사를 가슴 한쪽에 묻어놓고 살고 있었는데 제가 자주 가던 동네에서 이런 참사가 벌어졌어요. 제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라니 더 소름 끼쳐요.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겠다 생각이 들어요.”

세월호 참사 발생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이예리(26)씨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던 중 SNS를 통해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했다. 이씨는 “친구가 ‘지금 이태원 큰일 났다’며 실시간 영상을 보여줬는데 압사가 일어난 현장이었다”며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처절한 현장이 여과 없이 노출돼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집단 트라우마를 겪게 된 이들은 뉴스를 보지 않고 SNS를 접는 등의 증상을 겪고 있다. 대학생 정석연(26)씨는 “이태원 참사 이후 3일간 TV를 꺼놓았다”며 “특히 뉴스에선 사건 영상을 반복적으로 틀어주는데 스트레스를 받아서 한동안 TV 자체를 안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유정(27)씨는 “간혹가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돋보기에 계속해서 모자이크되지 않은 참사 영상이 나온다”며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당분간 SNS 앱을 지우고 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수민(28)씨도 “출퇴근길에 만원 지하철을 탈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며 “이태원 참사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시민들이 추모의 글을 적어서 붙인 쪽지들이 가득하다. ⓒ뉴시스·여성신문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시민들이 추모의 글을 적어서 붙인 쪽지들이 가득하다. ⓒ뉴시스·여성신문

뉴시스가 1995년부터 1999년 사이 태어난 26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태원 참사 관련 시민 안전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7.2%(203명)가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정부 발표 또는 언론 보도를 접하며 우울감이나 무력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최모(27)씨도 “국가애도 기간 동안 나라 전체 분위기가 침울해 심리적으로 위축됐다”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태원 참사 얘기를 해서 스트레스를 받아 (국가애도 기간에) 일부러 집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외신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가운데 세월호 참사에 이어 이태원 참사로 20대가 트라우마를 겪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5일 “8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10대였던 젊은 세대들이 20대가 된 이번에는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를 안게 됐다”며 “한국의 젊은이들이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국가 차원에서 트라우마 지원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이태원 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축하고 국가트라우마센터,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등과 협업해 유가족과 부상자, 목격자 등 심리지원 대상자를 파악했다. 통합지원단이 운영하는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 번호는 1577-0199번이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재난을 경험한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응은 △믿을 수 없음과 충격 △공포와 미래에 대한 불안 △혼미, 무관심 및 감정적 마비 △신경질적인 반응(과민성) 및 분노 △슬픔과 우울함 △무기력감 △극심한 배고픔 혹은 식욕 상실 △의사결정의 어려움 △명확한 이유 없는 울음 △두통 및 위장장애 △수면 장애 등이다.

재난 경험자가 마음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사건이 발생했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 △충분한 휴식과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해 스스로를 소중히 여길 것 △평범한 일상생활을 조금씩 시작할 것 △감정을 억누르려 하지 말 것 △주변의 친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 △사고와 수습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되 재난의 과정을 반복적으로 보는 일을 피할 것 등의 지침을 실천하면 도움이 된다.

사진=보건복지부 이태원 사고 통합심리지원단
사진=보건복지부 이태원 사고 통합심리지원단

지난 3일 국립트라우마센터 홈페이지에 공개된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 위험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질문 5가지는 아래와 같다.

① 악몽을 꾸거나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 그 경험이 떠오른 적이 있다.

② 그 경험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거나 떠오르게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했다.

③ 늘 주변을 살피고 경계하거나 쉽게 놀라게 됐다.

④ 다른 사람, 일상활동 또는 주변상황에 대해 가졌던 느낌이 없어지거나,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⑤ 사건이나 사건으로 인해 생긴 문제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자기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을 멈출 수가 없었다 등이다.

최근 한 달 사이 이 중 3~5가지를 경험했다면 ‘심한 수준’으로 추가적인 평가나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2가지를 경험했다면 주의가 요망되고, 0~1가지만 해당하면 정상 수준이다.

대학교에선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고려대·국민대·명지대는 지난 1일부터 심리지원 프로그램 신청자를 모집 중이다. 연세대는 4번의 모임을 통해 심리 지원을 실시 중이다. 4차 모임은 오는 9일 열린다. 이화여대는 정신적 충격 지원과 함께 이화의료원과 연계해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로 세 명의 학생을 잃은 한양대는 캠퍼스 내 네 곳의 분향소를 설치했고 상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을 위해선 학생생활지원단 ‘위(Wee)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위 센터에 소속된 전문 상담순회교사 및 전문상담사는 심리적 위기를 겪는 학생에게 다양한 심리검사 및 심층 상담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위 센터는 각 교육지원청별로 운영된다. 서울의 경우 교육청에서 총 24곳을 직영하고 있으며, 전문상담순회교사 80명과 전문상담사 40명이 배치됐다. 특히 이번 참사로 학생 6명과 교사 1명을 잃은 서울시교육청은 피해자가 발생한 학교에 특별상담실을 설치하고 심리 상태가 취약한 학생을 검사·상담한다. 이태원 인근 학교 안 학생들에 대해선 요청 시 위 센터와 유관기관이 협조해 심리상담을 진행한다.

“대형 참사인 점·비슷한 연령대인 점이 집단 트라우마 원인”

김현수 안산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운영위원장은 8일 여성신문에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모두 동세대가 참사로 희생됐기 때문에 한두 명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며 “대형 참사인 점과 비슷한 연령대인 점이 집단 트라우마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으론 사회적 애도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김 운영위원장은 “개인의 트라우마를 넘어서기 때문에 사회적 애도가 중요하다”며 “국가 애도 기간이라는 것은 애도라고 말할 수 없다. 얼굴 없는 애도, 유족 없는 애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 행사의 일부일 뿐 위로 받을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사회적 차원의 애도라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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