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안 받으면 스토킹 무죄’
연이은 황당 판결에 여성의전화 논평

“스토킹 정의조차 없던 17년 전 판례에 매몰
피해자 고통은 전혀 이해 못한 듯...
성인지적 관점으로 상식적 판결해야”

ⓒ한국여성의전화 홈페이지 캡처
ⓒ한국여성의전화 홈페이지 캡처

집요하게 전화해도 피해자가 안 받았다면 스토킹 행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비상식적 법원 판결이 끊이질 않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사법기관이 스토킹 범죄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판사들부터 스토킹 범죄 대응 교육을 받으라’고 질타했다.

지난 10월 27일, 인천지법 형사9단독 정희영 판사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54세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남성은 하루 4시간 동안 10차례 연속으로 피해자에게 전화하는 등 스토킹을 일삼았는데,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으니 스토킹처벌법상 무죄라고 봤다. “전화기에 울리는 벨소리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으로 볼 수 없”고, “‘부재중 전화’도 휴대전화 자체 표시 기능에 불과해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도달하도록 한 부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정보통신망법상 “음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05년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여성신문 취재 결과, 법원이 같은 논리로 스토킹 무죄 판결을 내린 사례가 올해만 최소 세 번 더 있었다. (관련기사 ▶ [단독] 스토커 전화 안 받으면 ‘무죄’? 법원 황당 판결, 올해만 최소 4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556)

여성의전화는 지난 9일 논평을 내고 문제가 된 판결들이 “스토킹에 대한 정의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17년 전의 대법원 판례에 매몰돼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판결”이라고 꼬집었다.

또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도 더 지난 시점에, 무려 17년 전의 대법원 판례를 빌어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린 판사의 자질이 의심된다”, “사법기관이 스토킹 범죄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느끼고 어떤 영향을 받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고 질타했다.

여성의전화는 “실제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스토킹 범죄 피해자들은 전화를 받고 말고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울리는 전화 벨소리만 들어도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법기관은 더 이상 피해자의 두려움과 공포를 외면하지 말라. 과거의 판례에만 매달려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을 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성인지적 관점을 바탕으로 상식적인 판결을 하라”고 촉구했다.

또 국회에서 제정 논의 중인 스토킹피해자보호법엔 스토킹 피해자 지원기관 종사자 보수교육 도입이 포함돼 있는데, 정작 판사들은 보수교육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지적했다.

여성의전화는 “현 상황에서 누구보다 보수교육이 필요한 것은 판사를 비롯한 수사사법기관 종사자들”이라며 “국가가 진정 스토킹 피해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이들을 보수교육 대상자에 포함하고, 스토킹피해자보호법 제정에 박차를 가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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