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추모장 앞에 추모객들이 놓은 추모 메세지와 국화 꽃이 놓여 있다. ⓒ홍수형 기자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공간 앞에 추모 메세지와 국화 꽃이 놓여 있다. ⓒ홍수형 기자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싶지 않겠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언론사 기자와의 문자메시지에서 꺼낸 말이다. 애당초 그의 사퇴를 요구했던 사람들이 ‘폼’ 나라고 그랬던 것은 아니다. 행안부 장관은 재난 총괄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으며 경찰청을 소속기관으로 두고 있는 자리이다. 그러니 법적 책임 여부를 떠나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요구들이었다. 책임을 지라고 하는데 “그것은 고위 공직자의 책임 있는 자세도 아니다"라는 말도 생뚱맞다. 뒤늦게 사과하기는 했지만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했던 말이 어떤 심리에서 나왔던 것인지 짐작된다. 자신이 직접 책임질 일도 없었는데 사퇴하는 것은 억울하고 부당하다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막연하게 정부 책임이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도 해외 순방을 앞두고 말했다. “막연하게 정부 책임이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철저한 진상과 원인 규명, 확실한 사법적 책임을 통해 유가족분들에게 보상받을 권리를 확보해드려야 한다”고 했다. 사법적인 책임을 물어야지 정치적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그래서일까. 행안부는 합동수사본부의 압수수색 대상에서도 빠졌다. 경찰에서도 수뇌부가 아닌 서장급들에게만 책임을 지우고 있다. 아래 사람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야당의 모습은 어떠한가.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을 거리에서 벌여 나가기로 했다. 참사의 무게야 엄청난 것이지만, 무슨 엄청난 의혹이 있을 사건도 아닌데 굳이 국정조사를 하자며 거리로 나가 서명운동까지 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국정조사에 대해서는 정의당도 같은 입장인지라 야권만으로 국회에서 국정조사 요구서를 처리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굳이 서명운동을 하겠다는 것은 정치적 여론전을 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민주당은 희생자들의 명단 공개를 요구하여 논란을 빚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앞장 서서 “유족들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영정을 당연히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된다"며 명단 공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 출신 변호사들은 유족들을 상대로 국가배상청구 소송 모집에 나섰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민주당이 희생자들의 명단 공개를 요구하는 것은 이태원 참사 사태를 조기에 매듭짓지 않고 세월호 참사 때처럼 장기적 사안으로 끌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름 공개를 원하지 않는 유가족들이 있음이 확인되는 이상, 해서는 안될 일임이 분명하다. "미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던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의 말이 누구의 말보다 와닿는다. 민주당은 이태원 참사의 책임 문제에 대해 윤석열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임을 구실로 판을 키우는데만 매달려 있다.

‘재난의 정치화’ 둘러싸고 
여야는 정치적 공방만 

윤석열 정부는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의 엄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지 정치적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라는 윤 대통령의 생각은 검사들의 것이지, 국정의 무한책임자인 대통령의 것이 될 수 없다. 대통령실의 눈치만 살피며 민심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도 보기에 안쓰럽다. 민주당은 참사의 재발 방지를 위한 고민과 노력에는 관심이 없고 이 참에 오로지 윤석열 정부를 공격하는 데만 관심이 가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안전의 문제를 정치의 문제로 치환해버렸을 때 정작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본질적 문제들은 해결되지 못함을 세월호 참사 이후로 지켜보아 왔다.

‘재난의 정치화’를 둘러싸고 여야의 양대 세력은 정치적 공방만 주고 받고 있다. 여권세력은 재난의 정치화를 촉발시킬 길을 역설적으로 열어주고 있고, 야당세력은 이를 기화로 정치적 판을 키우는 데만 몰두한다. 156명의 죽음은 이들 두 정치세력에게 대체 어떤 의미일까. 여야 정치권이 간직하고 있는 슬픔의 색깔과 농도는 어떤 것일지, 한번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홍수형 기자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홍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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