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서 열리는 첫 겨울 월드컵
300조 이상 사상 최대 예산 투입
월드컵 92년만에 첫 여성 주심·선심

외국인 노동자·여성·성소수자 억압 파문
세계 곳곳서 ‘보이콧 카타르’
FIFA “이념·정치 말고 축구에 집중하자”
유럽 축구계 반발 “인권은 보편적 가치”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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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이 오늘 밤 개막한다. 사상 최초로 겨울에 열리는 월드컵, 중동 국가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월드컵 대회다.

역대 최대 예산이 투입된 월드컵으로도 불린다. 카타르는 경기장 건설, 첨단 냉각 시스템 마련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 10여 년간 2200달러(약 300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대회는 수도 도하 등 5개 도시, 8개 경기장에서 열린다. 모든 경기장이 반경 약 50㎞ 내에 모여 있다.

여성 심판이 뛰는 최초의 월드컵이기도 하다. 총 6명(주심·선심 각 3명)으로, 주심은 스테파니 프라파르(프랑스)와 야마시타 요시미(일본), 살리마 무칸상가(르완다)이다. 부심은 네우사 백(브라질), 카렌 디아스(멕시코), 캐서린 네스비트(미국)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이틀 앞둔 18일(현지시간) 오전 카타르 도하 카타르 스포츠 클럽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번 대회 경기 심판들의 실기 훈련에서 살리마 무칸상가 여성 심판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이틀 앞둔 18일(현지시간) 오전 카타르 도하 카타르 스포츠 클럽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번 대회 경기 심판들의 실기 훈련에서 살리마 무칸상가 여성 심판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간판 공격수 손흥민이 19일(현지시간) 오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간판 공격수 손흥민이 19일(현지시간) 오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대한민국을 포함해 대륙별 지역 예선을 통과한 32개국이 오는 12월 19일 결승전까지 29일간 대결한다. 개막전은 한국 시간 21일 오전 1시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개최국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A조 조별리그 1차전이다. 결승전은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은 2010 남아공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두 번째 원정 16강 진출에 도전한다. 간판 공격수 손흥민은 이달 초 안와골절 부상으로 수술 후 극적으로 합류했다. 한국 대표팀의 첫 경기 상대는 우루과이다. 오는 24일 오후 10시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1차전을 치른다. 이어 가나(28일 오후 10시), 포르투갈(12월3일 0시)과 대결한다.

개막전에 앞서 성대한 개막식도 열릴 예정이다. 특히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이 개막식 무대에서 공식 사운드트랙인 ‘드리머스’(Dreamers) 무대를 선보일 계획이라 한국과 K팝 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최소 백만 명 이상의 축구팬과 관광객들이 월드컵 기간 카타르를 찾을 전망이다.

세계 곳곳선 ‘보이콧 카타르’

세계인이 기다려온 축구 축제지만, 노동자·성소수자·여성 등 인권침해 문제로 얼룩진 월드컵이기도 하다. 개막 전부터 곳곳에서 ‘보이콧 카타르’ 선언이 이어진 이유다.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에 투입된 노동자들의 인권·노동권 침해 실태를 조사해온 인권단체 ‘에퀴뎀’(Equidem)이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공개한 보고서 표지. ⓒEquidem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에 투입된 노동자들의 인권·노동권 침해 실태를 조사해온 인권단체 ‘에퀴뎀’(Equidem)이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공개한 보고서 표지. ⓒEquidem

경기장, 도로 등 월드컵 인프라 건설 현장에 투입된 외국인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혹사당했고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2010년 월드컵 유치 확정 이후 카타르에서 6500여 명이 사망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은 주로 인도,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출신이다. 불법적인 취업알선료를 내야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나치게 더운 날씨, 코로나19 감염이 우려되는 환경 등 열악한 여건에서 일해야만 했다는 사례, 하루에 14시간씩 일해도 추가 수당을 못 받았다는 사례, 관리자들의 폭행·폭언에 시달렸다는 사례, 여권까지 빼앗겼다는 사례도 나왔다. 15%가 근무 수당을 제대로 못 받았고, 47%는 아랍어를 못 하거나 중동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더 힘든 업무를 지시받는 등 국적에 따른 차별을 겪었다고 밝혔다. 불합리한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면 해고당하거나 수당 삭감 등 불이익을 받았다.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에 투입된 노동자들의 인권·노동권 침해 실태를 조사해온 인권단체 ‘에퀴뎀’(Equidem)이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공개한 보고서에 실린 내용이다.

카타르 측은 대부분의 문제 제기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해왔다. 월드컵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37명이고, 업무 관련 사망자는 이중 3명이라고 밝혔다. 또 월드컵 유치 확정 이후 노동권 보호를 위해 노력해왔다고 항변했다. 외국인 노동자 이직·출국 시 고용주 승인을 요하는 ‘카팔라’(kafala) 제도도 폐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에퀴뎀 측은 “월드컵 인프라 구축을 위해 일한 많은 노동자들에겐 어떠한 선택권이나 인권도 보장되지 않았다”며 “국제축구연맹(FIFA)이 카타르 당국에 국제 노동기준을 준수하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카타르 당국이 하루빨리 노동자들이 겪은 피해에 대해 보상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카타르 월드컵은 착취와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피터 태첼 등 활동가들이 지난 19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카타르 대사관 앞에서 카타르 당국의 성소수자 억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피터 태첼 트위터 게시물 캡처
영국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피터 태첼 등 활동가들이 지난 19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카타르 대사관 앞에서 카타르 당국의 성소수자 억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피터 태첼 트위터 게시물 캡처

동성애 불법·최대 사형...방문객 안전 우려도
홍보대사 “동성애는 정신적 손상” 망언
여성인권 억압 문제도 불거져

성소수자·여성 인권 억압 문제도 불거졌다. 카타르는 이슬람 국가 중에서는 비교적 자유분방한 나라로 알려졌지만,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을 고수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카타르에서 동성애는 불법이고 최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카타르의 성평등 수준은 세계 최하위권이다. 세계경제포럼 ‘성 격차 지수’(Gender Gap Index·GGI)에서 카타르는 146개국 중 137위다(한국은 99위). 카타르 남성은 아내를 4명까지 둘 수 있고 자유롭게 이혼할 수 있다. 반면 여성은 남성 보호자의 동의 하에만 결혼할 수 있고, 이혼하려면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 혼외 성관계로 임신한 여성은 기소될 수 있다. 카타르엔 여성인권 전담 정부 부처가 없다.

카타르 축구대표 출신인 칼리드 살만 카타르 월드컵 홍보대사는 지난 8일 독일 언론 ZDF 인터뷰에서 “동성애는 정신적 손상”, “카타르 월드컵을 보러 카타르에 오는 성소수자들은 우리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망언을 했다. 카타르에서 동성애자들을 구금하며 동성애 전환 치료를 시행했다는 보고서도 공개됐다.

선수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덴마크 대표팀은 아무런 표시 없는 검은색 유니폼을 준비하기로 했다. 덴마크, 독일, 잉글랜드, 프랑스 등 9개국 대표팀 주장들은 차별에 반대하는 ‘하나의 사랑’(One Love) 완장을 차고 출전할 예정이다.

파문이 커지자 카타르 당국은 월드컵 기간 성소수자를 처벌하지 않겠다며 ‘성소수자 커플 방문 환영’ 메시지를 내기도 했지만, 비난의 눈초리를 거두기엔 역부족이다.

카타르가 여성에게 안전한 국가냐는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2022년 2월 월드컵조직위원회 소속으로 카타르에서 일하던 멕시코 여성이 동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카타르 당국은 “연인 사이”라는 가해자의 손을 들어줬고, 피해자를 ‘혼외정사’ 혐의로 기소해 파문이 일었다. 카타르 월드컵 공식 숙소로 지정된 호텔들에서 지난 5년간 발생한 여성 노동자 성폭력·인권침해 고발도 터져 나왔다. 

FIFA “이념·정치 말고 축구에 집중하자”
유럽 축구계 반발 “인권은 보편적 가치”

FIFA는 황당하게도 “축구에만 집중하자”는 입장을 냈다. 이달 초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 명의로 32개 참가팀에 보낸 편지에서 “축구는 이념적·정치적 싸움에 휘말려선 안 된다”고 밝혔다. 앞서 FIFA는 인권 존중 촉구 문구가 적힌 유니폼을 입겠다는 덴마크축구협회(DBU)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독일축구협회(DFB)의 베른트 노이엔도르프 회장 등 유럽 축구계는 “인권은 정치적 요구가 아닌 보편적이고 중요한 가치”라며 항의하고 있다. 스포츠는 인권이다. 축구계의 번영과 성대한 축제를 위해 약자들을 짓밟는 현실에 눈감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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