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트위터 캡처
사진=트위터 캡처

얼마 전 7시간 동안 유유히 한국의 영공을 날아다니며 한국의 방공망을 무색하게 만들었던 무인기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비례성 원칙’에 따라 “북한 무인기 한 대에 대해 우리도 두, 세대 올려보내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북한 무인기 침범 당시 원점 타격도 준비하면서 확전 위험도 각오했다”고 설명했다. 평소 윤 대통령의 태도나 발화 행태를 짐작한다면 참모들에게 길길이 날뛰며 북한 그게 뭐가 무섭냐, 우리는 왜 대응 안 하냐, 북한이 한 대 보냈음 우리는 두세 배로 갚아줘야 한다고 했을 것만 같다. 그러니 대통령 입에서 “확전을 각오“”, “북한이 핵이 있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쉬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대통령만 그런 것도 아니다. 여당인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전쟁을 두려워하는 자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며 북한에 대한 철저한 응전태세를 갖출 것을 강조했다. 확전을 각오했다는 국군통수권자와 여당 지도부의 발언에 모두 감복한 것인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일부에서는 ‘그까짓 거 전쟁하자’는 글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전쟁이 날까 봐 두렵다는 한 트위터 사용자에게 남성 사용자는 “뭐 전쟁 일어나면 여자들은 뭐할 건데? ㅋㅋㅋ전쟁일어나면 너네가 할 건 다리 벌리는 일뿐이야ㅋㅋㅋ”라는 조롱과 성적 모욕이 담긴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전쟁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한국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신기한 지점은 너무나 명확한 휴전 국가에 살면서 너무나 실제 전쟁과는 먼 인식체계를 가지고 산다는 점에 있다. 징병률이 80%가 넘는, 그래서 대체로 거의 모든 남성이 군대를 다녀오는 국가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점은 더욱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휴전국에 살며 국민의 절반은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을 거쳤으면서도 전쟁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안보 의식, 전쟁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지점이다. 그런 면에서 위의 트윗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남자인 자신은 (아마도) 군대로 가겠지만, 여자들은 군대를 안 가니 ‘다리 벌리는 일’만 남는 것. 전쟁이 무엇인지, 어떻게 발생하는지, 전쟁의 결과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교육도 이해도 감수성도 없으니 뱉을 수 있는 말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겪은 전시 성폭력 문제로 아직도 이웃 나라와 외교적 마찰이 있고, 한쪽에선 피해회복의 노력이 지금까지도 이뤄지고 있는 국가임을 생각한다면 더욱 기가 막힌 일이다.

해방 이후 한국의 근현대사의 모든 문제는 한국전쟁과 분단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이 남긴 가장 큰 문제는 휴전과 분단 그 자체가 아니라 한 국가로서의 ‘불완전성’에 있기 때문이다. 내전을 통해 분단돼 개별국가로 사는 곳은 2차 대전 또는 냉전 종료 후 강대국의 질서에 따라 영토 확정이 이루어졌다 다시 갈라진 아프리카,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다. 그러나 반백 년이 지나도록 상호 독립된 정부를 구성하고, 국제사회에서도 개별국가로 활동하지만 한편 서로가 통일을 노래하는 국가는 한반도, 키프로스뿐이다. 이따금 남-북이 서로 평화 분위기일 때, 국제 경기에서 한반도기를 흔들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지만, 통일은 사실 굉장히 폭력적인 의미를 내포한 단어다. 우리가 통일을 노래할 때, 그 모습을 북한에 흡수되는 형태로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한편 북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을 생각할까? 남북 모두에게 ‘통일’이 생략하고 있는 말은 상대 정부의 완전한 해체와 붕괴를 위한 무력 충돌이다. 한국전쟁이 아직도 미완의 전쟁에 머무르고 있는 가장 근본적 이유다. 한반도에 있는 남북한 모두, 국가로서의 영토적 완전성을 위해 결국 상대를 붕괴시켜야 한다는 과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안보 역학적으로 한국과 북한은 언제든 다시 충돌해 전쟁이 나도 이상한 상태가 아니다. 그리고 휴전이 끝나고 다시 개전 된다면, 남북한 모두의 목표는 한국전쟁 때 양측 모두 차마 달성하지 못했던 것, 영토의 통일을 위한 상대 세력의 절멸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군사력 세계 6위의 군사 강대국이자, 경제 규모 10위권이고,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과의 군사동맹국이다. 한편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고, 유사 상황 시 중국의 자동 개입 조항이 포함된 동맹관계를 갖고 있다. 또 한반도는 종심이 매우 짧고 작은 땅덩이에 기반 시설이 모여 있어 피해 확산의 시간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일단 개전 된다면 전쟁이 어떤 형태로 끝나든 막심한 인적, 물적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영토의 회복은 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어쩌면 지금까지 이뤘던 경제적 성장을 모두 내던져야 할 수도 있다. 당연히 피해의 크기는 한국이 더 클 것이다. 잃을 것이 없는 나라와 가진 것이 많은 나라의 싸움이란 것이 그렇다.

윤 대통령은 2022년 연말,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방문해 “우리가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며 위장된 평화로는 안보를 지킬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평화와 성장은 전쟁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획득할 수 있었고 또 유지될 수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여자들은 뭐할 건데?”라는 질문은 잘못됐다. 그게 남자-여자를 가르는 질문이라서가 아니다. 남자인 자기는 전쟁 영웅이 되고 여자는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판타지에서나 있는 얘기지 전쟁이 일어나면 너나 할 것 없이 이 소용돌이에 말릴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전쟁을 얘기하는 것은 항상 신중해야 하며 특히 전쟁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 국가의 지도자는 더욱 그렇다. 전쟁을 각오한 사람만이 평화를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전쟁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평화를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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