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세대와 소송 중인 정보라 작가
“11년치 강의 퇴직금·수당 달라
시간강사 권리 위한 판례 만드는 게 목표
대법원까지 갈 각오 됐다”
2022년부터 전업 작가·번역가로 활동
미발표작 포함 단편선 『아무도 모를 것이다』 등
올해도 신간 다수 펴낼 예정

정보라 작가는 ‘싸우는 소설가’다. 영국 부커상 국제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그는 11년간 일했던 연세대를 상대로 퇴직금·수당 지급 소송을 제기하며 대학사회의 민낯을 고발하고 있다.  ⓒ혜영(Hyeyoung)
정보라 작가는 ‘싸우는 소설가’다. 영국 부커상 국제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그는 11년간 일했던 연세대를 상대로 퇴직금·수당 지급 소송을 제기하며 대학사회의 민낯을 고발하고 있다. ⓒ혜영(Hyeyoung)

“상아탑의 구름 속에서 제가 얼마나 많은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어요. 저도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그동안 다른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구조에 일조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정보라 작가는 싸운다. ‘세계 3대 문학상’ 영국 부커상 국제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이야기꾼. 베테랑 러시아·폴란드 문학 번역가이자 대학 강사. 그는 11년간 몸담았던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퇴직금과 주휴·연차수당 지급 소송 중이다. 부커상 후보 지명 전부터 준비한 싸움이다.

정 작가는 2010년~2021년까지 연세대 노어노문학과에서 매 학기 9학점의 강의를 했다. 우수 강사로 뽑혀 총장상도 7회 받았다. 그러나 연세대는 퇴직금도 수당도 주지 않았다. 강의시간만 치면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라서다. 정 작가가 11년간 해온 강의 준비, 시험 출제·평가와 강사직을 유지하기 위한 연구활동, 학과 행정업무 등은 지워졌다.

“교단이 내 자리이고 연구와 강의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 믿었던” 그는 2021년 대학을 떠났다. 2022년 8월 소송을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연구’ 웹진에 기고한 ‘강사는 어떻게 단련되는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남의 생계를 쥐고 흔드는 것으로 자기 권력 확인하는 데만 급급한 가해자 집단에 굴종하든가, 통보조차 없는 해고의 위기를 언제나 무릅써야 하는 피해자로 남든가, 그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구조에 다시 돌아가기에는 내가 이미 너무 많은 진실을 알아 버렸다.”

정 작가는 여러 시위·투쟁 현장에서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들, 해고노동자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봤다. 분야는 다르지만 표준계약서가 없고, 회사의 관리감독을 받지만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로 위탁계약 또는 도급계약을 맺는다. 평등하게 대우하는 척하지만 마땅한 대가를 주지 않는다. 불합리에 맞설 각오를 다지면서도 “제가 대학에서 연구·강의하는 일을 굉장히 사랑했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조금 길을 잃은 느낌”이라는 그의 목소리가 서글펐다.

최근 법원에 소송 청구취지 변경을 신청했다. 원래 쟁점은 정 작가가 초단시간 노동자인지 여부였다. “그보다 강사를 초단시간 노동자로 취급하는 기준 자체가 잘못됐음을 따져 보고 싶어요. 교수나 강사나 주당 6시간 강의한다면 퇴직금과 주휴·수당 지급 기준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승소한대도 퇴직금보다 소송 비용이 더 나올 가능성이 크다. 실익보다는 “판례를 만들기 위한” 싸움이다. 최근 시간강사들이 대학을 상대로 퇴직금 지급 소송을 내 승소한 사례가 늘었지만, 명확한 법리가 정립된 것은 아니다. 대학의 눈치를 보느라 소송은 엄두도 못 내는 이들도 많다. 정 작가는 든든한 판례를 확보할 수 있다면 “대법원까지 갈 각오”를 다지고 있다.

대학 시간강사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의 노동 문제를 조명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저자 김민섭 작가 등이 공개적으로 그를 지지했다. “절 응원해 주시는 분들은 다 비슷한 싸움을 하셨거나 하고 계신 분들이고, 제가 도움을 받아요. 감사하죠.”

정보라 작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2022년 8월31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강사 처우 개선과 관련 법제도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정보라 작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2022년 8월31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강사 처우 개선과 관련 법제도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2022년 가장 잘한 일은 “데모”, 가장 기쁜 일로는 2009년 정리해고에 맞서 파업 투쟁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국가가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대법원이 부당하다며 돌려보낸 일을 꼽았다. 

이태원 참사는 정 작가에게 2022년의 가장 큰 슬픔이자 분노다. 희생자를 기리는 오체투지, 추모제에도 다녀왔다. “그분들이 쓰러진 땅에 엎드리는 게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문학을 통해 참사를 애도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유가족이나 희생자에게 누가 되지 않으면서, 그분들을 존중하면서 애도할 방법을 찾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해 2014년 9월 시작된 ‘304낭독회’가 좋은 사례가 될 듯해요. 물론 장르문학은 사회의 변화에 민감해요. 2015년부터 한국 SF 작품들 중 재난, 참사를 다룬 이야기가 늘었어요. 한국 사회의 위기감이 반영된 거라고 봐요. 앞으로도 그러한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정보라 작가의 환상문학 단편선 『아무도 모를 것이다』(퍼플레인) ⓒ퍼플레인
정보라 작가의 환상문학 단편선 『아무도 모를 것이다』(퍼플레인) ⓒ퍼플레인

2022년부터 그는 전업 작가·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올해 펴낸 첫 책은 초기 발표작 9편과 미발표작 1편을 모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퍼플레인). 환상과 현실, 신화와 역사를 뒤섞은 기묘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이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많은 경우 화가 나서 글을 쓴다”고 적었다. 그를 고민하고 분노케 하는 일상의 모든 순간이 글감이다. 결혼해 포항에 살면서 태풍 ‘힌남노’ 피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방류 예고 등 환경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 지난해 공개한 해양수산물 3부작이 그 결실이다. 암 투병 중인 남편, 무릎 수술을 받은 시어머니를 돌보고 병원을 오가며 보고 느낀 일들도 생생하고 애틋하게 담았다. 해양수산물 시리즈는 추가로 집필해 약 6편 규모로 완결할 예정이다. 오는 2월엔 밀리의 서재에서 장편을 공개한다. 구미호와 인간 남성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웹소설 단행본도 나온다. 폴란드 아동청소년용 과학책 시리즈도 번역해 출간을 앞뒀다.

출판시장은 불황인데 홀로 무섭게 성장하는 웹소설 시장에 관한 의견도 물었다. “중요한 건 계속 쓰고 읽는 거예요. 누군가가 즐겁게 읽을 수 있으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해요. 지금 출판계는 순문학이냐 웹소설이냐를 따질 때가 아니에요. 한국 문학은 넷플릭스, 유튜브와 싸워야 하잖아요. 한국어로 쓴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면 엎드려 절해야죠.”

창작자들을 위한 조언을 청하자 아주 실용적인 답변을 들려줬다. “종이소설과 웹소설은 문법도 테크닉도 달라요. 예를 들면 웹소설은 스마트폰 화면 안에 하나의 장면이 들어가야 하는 식이죠. 장르별로 집필의 ‘공식’이 존재하고, 작가 혼자가 아니라 기획·연재를 관리하는 PD와 함께 일하고, 독자와 소통하는 걸 좋아하면 즐겁게 쓸 수 있다고 해요. 그렇지 않다면 ‘글을 팔아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는데요. 한국에서 글 써서 먹고살기 쉽지 않으니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글을 쓰는 분들은 몸을 소중히 하세요. 근골격계 질환 예방이 중요해요. 장르는 바꿀 수 있는데요. 손목, 연골이 닳고 시력이 나빠지면 결코 좋아지지 않아요. 초보 작가분들은 문체부가 고시한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를 꼭 다 읽어보세요. 너무나 훌륭한 계약서예요. 종이책, 웹소설, 오디오북 등 종류별로 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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