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 인권위 권고 불수용

인권위는 4일 어린이날 100회를 맞아 인권위원장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홍수형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 권고를 여가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들이 불수용했다. ⓒ홍수형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송두환, 이하 인권위)의 트랜스젠더 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 권고를 여가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들이 수용하지 않았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28일 상임위원회에서 국무총리, 보건복지부장관, 행정안전부장관, 여성가족부장관, 통계청장이 인권위의 권고를 불수용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26일 밝혔다.

인권위는 2022년 3월 16일, 국무총리, 보건복지부장관, 행정안전부장관, 여성가족부장관, 통계청장에게,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가 정부의 정책 대상으로 가시화될 수 있는 벙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는 국무총리에게 중앙행정기관 등이 수행하는 국가승인통계조사 및 실태조사에서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존재를 파악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침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고, 보건복지부·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장관과 통계청장에게, 각 기관이 실시하는 국가승인통계조사 등에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관련 조사항목을 신설할 것을 권고했으며, 통계청장에게, 통계청이 관리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조속히 개정해 성전환증을 정신장애 분류에서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와 보건복지부·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장관 및 통계청장은 "부처 실태조사의 모집단이 되는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성별 정체성을 별도로 조사하지 않고 있다"며 "표본이 적어 성별 정체성 등을 조사하는 것이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고 회신했다. 

통계청장은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조사항목에 대한 응답 거부가 증가하고 있어, 사회적 합의·현장조사 가능성·조사 불응 등을 고려하여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특히 통계청장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상 정신장애 분류에서 성전환증 삭제 관련해, “ICD(국제질병분류) 제11판의 반영 시 검토하겠다”고 하면서도, 2026년부터 적용되는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제9차 개정의 고시(2025. 7.)에는 반영이 어렵다”고 회신했다.

인권위의 권고 취지는 트랜스젠더의 인구학적 규모와 요구를 파악하여 국가정책 수립에 반영할 필요가 있으며, 트랜스젠더가 정신질환이 아니라는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판단을 존중하고 이를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반영하여 트랜스젠더를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국가승인통계조사 등에 성별 정체성 등과 관련한 조사항목을 추가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 및 조사의 실효성 측면에서 상당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여 당장 실행하기 어렵다는 데는 동의하나,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의 실태와 요구를 파악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인권위는 “국무총리, 보건복지부장관, 행정안전부장관, 여성가족부장관, 통계청장이 인권위의 권고를 불수용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거나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하며 “국가의 각종 정책에서 사회적 소수 집단이 배제되는 등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해당 집단의 규모와 요구를 파악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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