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보호위 “교원 노린 성폭력” 퇴학 의결
성범죄 혐의로 기소의견 검찰 송치
보기 드문 학내 젠더폭력 강력 대응

피해 교사들이 공론화·경찰 신고
“진짜 문제는 낮은 성인지감수성
가해자 고3이라며 쉬쉬하던 학교도
‘애 장난에 고소까지’ 2차 가해도 상처
시민들 연대에 감사...피해 교사들 위축되지 않길”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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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능력개발평가(교원평가)에서 교사를 성희롱한 세종시 한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 퇴학 처분을 받았다. 피해 교사들이 공개 고발에 나선 지 약 한 달만이다. 학교가 학내 성범죄에 강력하게 대응한 보기 드문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학교는 지난 17일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가해 학생 A(19)군을 퇴학 처분하기로 의결했다. 학교는 A군에게 ‘교원평가 성희롱’은 성폭력 범죄이며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통지했다.

2022년 11월, A군은 익명으로 시행하는 교원평가 서술형 문항에 여성 교사의 신체 부위를 언급하거나 “김정은 기쁨조나 해라” 등 성희롱 답변을 적어 제출했다. 피해 교사가 여럿이다. 학교 측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교권보호위원회 심의를 요청한 교사만 5명이다.

2022년 11월, 세종시 한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A군은 익명으로 시행하는 교원평가 서술형 문항에 여성 교사의 신체 부위를 언급하거나 “김정은 기쁨조나 해라” 등 성희롱 답변을 적어 제출했다.
2022년 11월, 세종시 한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A군은 익명으로 시행하는 교원평가 서술형 문항에 여성 교사의 신체 부위를 언급하거나 “김정은 기쁨조나 해라” 등 성희롱 답변을 적어 제출했다.

피해 교사들이 지난달부터 SNS를 통해 이 사건을 공론화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피해 교사의 신고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A군을 찾아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통신매체이용음란) 혐의로 입건하고 지난 10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A군은 ‘반성하고 있으며 피해 교사들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권보호위는 피해 교사가 다수이며 A군이 경찰 조사로 밝혀지기 전까지 피해 교사들을 외면한 점, A군이 같은 학기에 학칙을 위반한 일이 2건 더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퇴학을 결정했다. A군이 퇴학 처분에 불복해 재심의를 청구하고,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까지 갈 수도 있다.

학교는 피해 교원들에게 심리상담을 받고 공무상 병가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 방학 전 학생·교사를 포함한 학교 구성원 대상으로 성인지감수성 교육을 실시했다.

하지만 믿었던 교실이 성폭력의 사각지대라는 사실은 교사들에게 큰 상처가 됐다. ‘애가 장난친 건데 고소까지 하냐’, ‘무서운 교사들이다’ 등 온라인상 퍼진 2차 가해 반응에도 충격받았다. 과거 다른 학생들에게 겪은 성희롱 사건이 떠올라 더 큰 후유증을 겪는 교사들도 있다.

피해 교사들은 학교의 느리고 구멍 난 대응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애초에 학교 측은 이번 사건 조사와 처벌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한 교사는 교원평가 열람 직후 학교장에게 ‘교내 공론화와 교육을 통해 가해 학생에게 자수할 기회를 주고 싶다. 자수하면 고소는 진행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성희롱 사건 전에도 이 학생은 심각한 학칙 위반을 저질렀어요. 학교는 ‘고3이니까’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저희들이 교권보호위에 따졌어요. 왜 처음부터 제대로 조사하고 처벌하지 않았느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요. 저희가 공론화하지 않았다면 학교는 또 그냥 넘어갔을 거예요.”

이 사건 공론화에 나선 B교사는 여성신문에 “사건의 본질은 낮은 성인지감수성이다. 교원평가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건 범죄잖아요. 그런데 기사 댓글만 봐도 ‘장난인데 뭘’, ‘학생은 익명으로 교사를 성희롱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퍼져 있어요. 단발성 성교육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사회 전반의 성인지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대대적인 교육과 정책이 필요해요.”

B교사는 피해 교사들과 연대하는 시민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저희 사건을 지켜보며 응원해주시고 민원까지 넣어주신 시민들이 아니었다면 사건이 이렇게 빨리 처리되진 않았을 거예요. 2차 가해자들보다 저희를 지지·연대해주신 교사들, 시민들이 더 많았고 큰 힘을 얻었습니다.”

비슷한 고통을 겪는 동료 교사들에게도 응원을 보냈다. 전국 교사 10명 중 3명은 교원평가를 통해 성희롱, 외모비하, 욕설, 인격모독 등을 겪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지난달 나왔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 2022). 

“이제 피해자가 숨고, 참고, 혼자 속 썩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수적인 교직 사회에서 이런 문제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 어렵죠. 저도 두려움을 감수하면서 공론화에 나섰어요. 그래도 선생님들이 위축되거나 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잘못한 게 없으니까요. 적절한 처벌도 교육이고요.”

전교조의 2021년 ‘학교 내 페미니즘 백래시와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교사 설문조사 보고서’. ⓒ여성신문
전교조의 2021년 ‘학교 내 페미니즘 백래시와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교사 설문조사 보고서’. ⓒ여성신문

전국 교사 10명 중 3명 교원평가서 성희롱 외모평가 겪어
“개개인 처벌로 끝내선 안 돼...여성혐오적 남학생 또래문화 바꿔야”

다른 교사들도 이번 사건과 학교의 대응을 눈여겨보고 있다. 손지은 전교조 부위원장은 “관례를 깬 결정, ‘성폭력은 잘못된 일’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상징적 결정이다. 여성 교사를 노린 젠더폭력은 남학생들의 짓궂은 장난, 개인적인 일탈 정도로 여겨졌다. 사회 분위기가 변하면서 피해 교사들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학교의 대응도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문제를 일으킨 개인을 처벌하는 식에 그쳐선 안 된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야 처벌하고 끝낼 게 아니라 왜 이런 일이 학교에서 일어나는지 고민해야 한다. 남학생들의 여성혐오적 또래문화를 포함한 학내 혐오·차별을 파악하고 해소하는 게 교육자의 책임과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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