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자급하지 못하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기 위해 생명과 연결되려고 애쓰는 에코페미니스트 벗들을 소개합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선택해야 할 다른 길은 무엇인지, 그게 가능한지, 어떤 삶을 상상할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편집자 주> 

나는 독서가 취미다. 출판 편집자라는 직업 덕에 다양한 책을 찾아보기도 하니 이래저래 좋은 책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건 아닌데’ 하고 스스로 부끄러움에 빠졌다. 글로 배운 지혜를 몸이 따라갈 수 없어서 생긴 자괴감이었다. 퇴사하고 시골로 내려왔다. 머리를 더 짧게 잘랐다. 화장하지 않은 채 밖에 나갔다. 화학적 생리대를 쓰지 않았고, 브래지어도 차지 않았다. 사회가 정한 여성성에 반기를 들기 위해? 그래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칠 수는 없었다.

내가 성차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듯, 생명 착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 있다. 이들은 왜 착취되는가? 고작 길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위해, 유행하는 옷을 싸게 사기 위해,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냄새를 가리기 위해, ‘사회생활’ 하는 데 더 편하기 위해 내가 한 선택 때문이다.

생명을 쥐어짜서 나오는 편리는 갑질이다. 내가 더 편하기 위해, 더 나은 의자에 앉기 위해 갑질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난 계속 부끄러웠다. 좋은 책에서 배운 지혜 가운데 하나가 윤동주 시인의 <서시> 한 구절과 비슷하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배달 음식을 먹는 것도, 내게 선물하듯 옷을 사는 것도, 화장품을 바르는 것도, 어느 하나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방식과는 멀어 보였다.

6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올림픽공원에서 신영초등학교 학생들과 수원환경운동연합, 다산인권센터 등 관계자들이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재난이 인류생존을 위협하고 지구의 생명 다양성을 파괴하는 의미를 담은 '다이-인(die-in)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6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올림픽공원에서 신영초등학교 학생들과 수원환경운동연합, 다산인권센터 등 관계자들이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재난이 인류생존을 위협하고 지구의 생명 다양성을 파괴하는 의미를 담은 '다이-인(die-in)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도시를 떠나서 자급하려고 애썼다. 여성과 아동을 싸게 부려 먹어서 탄생하는 물건들에서 멀어지려고 발버둥 쳤다. 동네 산을 불법으로 파헤치고 기후위기 정책을 내놓지 않는 지자체에 반기를 들었다. 인간어를 할 수 없는 동식물들과 연대하고자 했다. 돌봄과 살림은 사회적으로 무능한 여성들이 전담할 일이 아니라 생명답게 사는 사람들이 하는 고귀한 행위임을 여기저기 알렸다.

그래도 무해한 사람은 될 수 없다. 마이너스가 되는 일을 했다면 다른 방향으로 플러스가 되는 일을 더 많이 하려고 애쓰는 것뿐이다. 그러니 나에겐 벗이 필요하다. 모든 죽어가는 존재들에게도 벗이 필요하다. 서툴러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벗, 이런 삶은 어떠냐고 이끄는 벗, 그건 갑질이라고 고쳐 주는 벗,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방식이 ‘자급하는 삶’과 가장 닮았다고 알려 주는 벗. 나는 나를 자급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로부터 하나씩 벗어나고 있다. 온갖 허울을 벗어던지는 나의 소중한 벗들 덕에. 그들을 내 언어로 부르자면 ‘벗는 벗들’이다. 올해도 그들 덕에 잘 벗어던지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 당신에게 벗는 벗이 되고 싶다.

문홍현경 에코페미니스트
문홍현경 에코페미니스트

 

문홍현경 에코페미니스트

출판사 ‘니은기역’의 대표이자 ‘지구를위한작은발걸음’ 기후활동단체 대표. 탈도시를 감행해 현재는 조그맣게 농사를 짓는 새내기 소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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