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영국작가 마크 심슨의 신조어…

남녀 역할경계 모호한 시대 사회상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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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섹슈얼 코드를 활용한 꽃미남 스타일로 인기를 모은 남성 연예인들.

“피부가 장난이 아닌데”

“로션 하나 바꿨을 뿐인데”

하얗고 고운 피부를 지닌 두 남성이 잘 빠진 상반신을 드러낸 채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의 남성화장품 CF. 뭇 여성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이 모습은 이제 현실에서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자신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가꾸는 이른바 '메트로섹슈얼' 시대가 남성들에게 열리면서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 코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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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패션, 미용, 건강, 출판 산업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메트로섹슈얼 족을 겨냥한 제품들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화장품 업계는 기능성 화장품인 화이트닝 제품이나 에센스, 마스크 팩, 잡티 커버 크림을 비롯해 주름 방지 크림, 아이크림 등 다양한 남성전용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에 발맞춰 미용 업체에서는 피부강좌, 스파 등 남성용 뷰티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설하고 있으며, 성형외과에서도 남성 전용 미용클리닉과 상담실을 열고 있다.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은 1994년에 영국 작가인 마크 심슨이 처음 소개한 말로 외모를 중시하는 젊은 남자들의 새로운 변화를 뜻한다. 메트로섹슈얼을 지향하는 남성들은 쇼핑몰, 피트니스 센터, 미용실 등이 인접한 도시(Metro)에 살면서 패션, 미용, 인테리어, 요리 등 여성적(Sexual) 라이프스타일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데, 이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는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한다.

소년 같은 얼굴과 섹시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가수 '비'나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잘생긴 외모에 감각적인 패션감각을 선보인 탤런트 '조인성', 파마머리로 새로운 유행을 선도했던 축구선수 '안정환', 귀고리를 하고 매니큐어를 칠하며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선보인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은 메트로섹슈얼을 대표하는 스타들로, 하나같이 곱상한 외모와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 섹시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패션코드

흰 바지에 꽃무늬 셔츠가 뭐 어때?

정장 노타이부터 액세서리언더웨어까지 거센 바람

메트로섹슈얼은 우선 패션에서부터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올해 대대적으로 인기를 얻은 꽃무늬 셔츠. 특히 흰색 바지에 꽃무늬 셔츠를 코디해 입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패션은 자기표현이며, 자신만의 옷 입기를 연출하는 기술은 이미지 시대에 각광받는 능력 중 하나”라고 하는 이들은 액세서리 좌판, 화장품 가게, 동대문 쇼핑몰을 거리낌 없이 누비고 있다.

메트로섹슈얼 패션은 편안한 느낌을 살리면서 밝고 가벼운 옷들이 주종을 이룬다. 바지는 헐렁하게 입되 허리 라인의 실루엣을 강조한 디자인이 많고 앞주름이 없는 일자바지와 앞주름이 잡혀 있되 밑단으로 갈수록 바지폭이 좁아지는 스타일이 유행이다. 셔츠는 섹시함을 강조한 것이 유행인데, 셔츠 앞단추를 서너 개씩 풀어서 가슴을 과감하게 드러내 남성성을 강조한다. 비교적 짧고 타이트한 스타일, 색상은 밝은 느낌을 주는 베이지와 화이트, 핑크가 강세다. 또한 소재는 면, 마, 린넨, 실크, 면마 혼방 등 다양하다.

정장에도 예외 없이 메트로섹슈얼의 바람이 불었다. 넥타이에 비해 단조로운 디자인과 컬러를 가졌던 셔츠가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노타이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드라마 '불새'에서 에릭이 줄무늬 셔츠에 넥타이 대신 목걸이를 한 것이 좋은 예. 또는 화려한 꽃무늬 셔츠를 정장 재킷 안에 노타이로 입기도 한다. 재킷도 스리버튼이 기본이지만 투버튼이나 원버튼 등 자유로워졌다.

메트로섹슈얼 패션과 함께 떠오른 것이 바로 적절한 소품이다. 특히 최근에는 모자와 두건을 착용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으며, 그들은 시계나 반지, 귀고리, 피어싱 같은 액세서리로 과감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멋스러운 선글라스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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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섹슈얼의 바람은 그동안 여성의 전유물이던 속옷에도 불어 닥쳤다. 섹시하고 화려한 남성 속옷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 몸매를 살려주는 사각 쫄팬티인 드로어즈나 라인이 드러나지 않는 무봉제 팬티(L&F의 '젠토프')가 나오는가 하면, 레이스와 망사, 자수, 큐빅 등 화려한 장식물을 사용한 속옷도 선보이고 있다. 그밖에 땀 냄새를 없애주는 데오도란트 기능이 있는 속옷(보디가드)이나 자외선을 차단해 주는 속옷도 출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최첨단 온도조절 소재를 이용한 속옷 브랜드 딤의 '딤 프레시'와 얇은 옷을 입어도 속옷이 비치지 않게 피부색에 가까운 컬러를 사용한 임프레션 제품들도 대표적이다.

TV드라마 '황태자의 첫사랑' 남자 주인공(차태현 분)의 페미닌한 감각을 한껏 살린 메트로섹슈얼 패션 스타일과 '파란만장 미스 김 10억 만들기'의 남자 주인공(지진희 분)의 화려한 꽃무늬 셔츠.

▣라이프 코드

웰빙 트렌드 맞물려 ...자기관리엔 아낌없는 투자

중산층 명품소비 '매스티지' 영향...얼짱·몸짱 소비주의 세태 비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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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스타 안정환의 꽃미남 이미지를 활용한 한 남성화장품 CF.

메트로섹슈얼은 자기 관리를 위한 투자에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웰빙 트렌드와도 연관이 많다. 대형 할인점에는 해산물 코너에서 전복, 장어 등을 구입하는 젊은 남성들이 자주 눈에 띄고 육류를 선택하더라도 제주흑돈, 무항생제 돈육, 녹차돈육과 같은 프리미엄급 육류를 선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몸짱'이나 '반신욕' 관련 제품들에 대한 남성들의 소비도 크게 늘고 있는데, 여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미용소금, 천연 입욕제, 아로마오일, 반신욕 용품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는 메트로섹슈얼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소비코드인 '매스티지'의 영향도 크다고 할 수 있다. 매스티지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준고가 명품 브랜드나 프리미엄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상품 가격보다 가치가 주는 만족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이들의 대표적인 소비상품으로는 와인과 고가청바지, 준고가 명품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문화비평가들은 최근 메트로섹슈얼이 부각되고 있는 현상을 외모지상주의에서 찾으며 비판하고 있다.

얼짱·몸짱 열풍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 세태를 반영한다는 것. 비평가들은 외모지상주의, 소비지향적인 면모를 벗고 진정한 메트로섹슈얼족이 되기 위해서는 외모뿐만 아니라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주5일근무제'와 함께 찾아온 여유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가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인지 요즘은 요가, 댄스 등에 메트로섹슈얼족의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 요리, 인테리어 등도 그들의 큰 관심거리다.

이윤원 객원기자

bint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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