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100일 국회 추모제
112 최초 신고자·생존자·유족 등 발언
“매년 하던 안전 조처 대체 왜 안했나...
진상규명이 유일한 상처 극복 열쇠
‘이태원은 무서운 곳’ 편견과
피해자·유족이 겪는 고통 막아달라”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
“국회·정부·서울시가 분향소 세워달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 추모제에서 헌화하고 있다. ⓒ뉴시스/공동취재사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 추모제에서 헌화하고 있다. ⓒ뉴시스/공동취재사진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은 5일, 유족과 생존자들이 국회에 모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분향소 설치 등을 거듭 촉구했다.

국회 이태원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10·29 이태원 참사 국회 추모제’를 열었다. 국가기관이 연 첫 공적 추모제다. 행사는 종교계 추모 의례로 시작해 여야 지도부 추모사, 참사 생존자, 최초 신고자, 유족 대표들의 발언, 4·16 합창단 추모 공연, 의원 일동의 ‘우리의 다짐’ 낭독, 헌화로 마무리됐다.

112 최초 신고자인 지역주민 박모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태원에서 태어나 현재 이태원 상인이며 대한민국에서 두 자녀를 키우는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매년 이태원 할로윈 축제의 활기와 즐거운 추억을 회상하며 눈물지었다.

박씨는 “10월29일 늦은 밤 설거지를 하며 들은 이태원 참사 소식에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듯했다”며 “159명의 소중한 자녀들이 국가의 무관심과 안일한 대처로 다시는 가족들 품에 갈 수 없다는 게 너무도 비통하다”고 말했다.

또 “참사 이후 (희생자들을) 마약과 무질서한 청년들로 둔갑시키려 했던 어른들의 이기심을 봤다”며 “제 분노는 희생자들이 받아야 하는 사과를 받지 못하고 국가 책임자들이 반성 없이 핑계를 대는 뻔뻔함 때문”이라고 했다. 박씨는 “강추위에 녹사평 분향소에 계시고, 무례한 2차 가해 폭언을 견뎌내는 유족들을 볼 때면 죄스럽고 저 자신의 무능함에 분노하게 된다”고도 했다. 독립적 진상조사 기구 설치도 호소했다.

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 추모제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 유가족 등이 묵념하고 있다.  ⓒ뉴시스/공동취재사진
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 추모제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 유가족 등이 묵념하고 있다. ⓒ뉴시스/공동취재사진

지난달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공청회에서 증언했던 생존자 김초롱씨도 연단에 섰다. 김씨는 “매년 별문제가 없었기에 평범하게 (이태원 할로윈 축제 현장을) 찾았는데 그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고를 예방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며 “참사의 유일한 원인은 그동안 했던 것을 하지 않은 것, 군중 밀집 관리 실패가 유일한 원인이다. 진상 규명이 절실하다, 그것이 트라우마를 없애고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참사 이후 목소리를 낸 건 세상이 변하기 바라기 때문이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며 “용기 낸 대가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걸 목격하는 것뿐이라면 정말이지 다시는 살면서 용기를 못 낼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진상을 규명하려는 세상의 의지가 재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극복 열쇠”라며 “나서지 말라는 사람이 많지만 외면할 수가 없다. 남아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사실 많이 슬프다”고 울먹였다.

김 씨는 “이태원이 위험한 곳, 무서운 곳이라며 금기시되지 않게 도와야 한다. 일상의 복구를 도와달라”며 “피해자와 유족들이 더는 고통을 겪지 않게 많은 분들이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종철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추모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공동취재사진
이종철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추모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공동취재사진

이종철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오늘 추모제가 다시는 이런 슬픈 참사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며 “우리 아이들의 마지막을 알고 싶고, 왜라는 질문에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 무너지는 가족들의 마음에 공감해달라”고 말했다. 독립적 진상조사 기구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도 촉구했다. 이 대표가 발언하는 동안 현장에서는 “도와주세요”,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부탁합니다”라는 유족들의 외침과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이 대표는 “국회와 정부와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국화꽃과 카네이션으로 단장된 합동분향소를 공식적으로 만들어달라”고도 요청했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지난 4일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는데, 서울시는 6일 오후 1시까지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통보했다. 이 대표는 “내일 서울시에서 천막 분향소를 철거하러 올 경우 휘발유를 준비해놓고 그 자리에서 전부 아이들을 따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지도부도 추모제에 모두 참석해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앞에서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행사가 끝난 후 김진표 국회의장,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등 참석한 정치인들이 유족들의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날 추모제는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주최하고 국회 생명안전포럼이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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