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기예·시리아 지진지도 ⓒ미국 지질조사국(USGS)
튀르기예·시리아 지진지도 ⓒ미국 지질조사국(USGS)

튀르기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지진 사망자가 2만명을 넘어서면서 이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최악으로 기록됐다.

세계적으로는 지난 2011년 일본 대지진을 넘어 7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지진으로 기록됐다. 

CNN에 따르면 9일(현지시각) 현재까지 튀르기예에서는 1만7,674명이 숨지고 7만2,879명이 부상했다. 시리아에서는 3,377명이 숨졌다. 

그러나 튀르기예와 시리아 정부는 지진 대처에 무능력해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힌 사람들의 생존 가능한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 정부의 무능력 때문에 구조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분노가 쏟아지고 있다. 

◆ 튀르기예 주민들 "국가는 어디 있는가"

[아즈마=AP/뉴시스] 5일(현지시각) 튀르키예 남부 지카흐라만마라슈주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시리아 이들리브주 아즈마에 있는 건물이 무너져 차량이 깔려 있다. 이 지진으로 최소 42명이 숨졌으며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즈마=AP/뉴시스] 5일(현지시각) 튀르키예 남부 지카흐라만마라슈주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시리아 이들리브주 아즈마에 있는 건물이 무너져 차량이 깔려 있다. 이 지진으로 최소 42명이 숨졌으며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튀르기예 남부 항구도시 하타이 주 이스켄데룬의 아르주 데데오글루는 지진이 발생했던 첫 날 잔해에 갇혀있는 조카 2명을 구조하기 위해 굴삭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당국은 굴삭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뒤늦게 도착한 구조대는 잠시 일을 한 뒤 작업을 멈추고 떠났다. 두 소녀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아직 살아 있다며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들은 떠났다"고 울부짖었다.

BBC는 튀르기예 재난비상관리청(AFAD)의 구조작업이 너무 느려 분노를 사고 있다고 보도했다.

튀르기예 제1 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케말 킬리크다로글루 대표는 "이 일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한 명 꼽으라면 그는 에도르안"이라고 말했다.

튀르기예 정부는 1999년 1만7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지진 이후 '지진세(earthquake tax)'를 부과하고 있다. 지금까지 880억 리라(46억 달러. 5조8000억원)을 걷었다. 재난 예방과 긴급 서비스 개발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튀르기예 정부가 부과한 '지진세'에 대한 분노도 고조되고 있다.

약 880억 리라(46억 달러; 38억 파운드)는 재난 예방과 긴급 대응서비스 개발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튀르기예 정부는 지진이 날때마다 이른바 '특별통신세'로 불리는 세금을 거둬왔지만 이 세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킬리크다로글루 대표는 "에도르안 정부가 지난 20년 동안 지진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준비 부족에 분노하는 것은 정치인 만이 아니다.

가지안데프시의 데니즈씨는 "1999년 이후 걷은 세금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라고 한탄했다. 데니즈의 형과 동생은 잔해에 갇혀 있다.

소셜 미디어에는 튀르기예의 집권층과 친정부 언론은 지진의 영향을 받는 지역 사람들의 비판을 '중얼거림' 정도로만 생각한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 생존자는 하버투르크 방송에 "며칠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다"라고 말하자 기자는 곧바로 "구조대원들이 모든 곳을 찾고 있다"는 다른 생존자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방송은 특파원의 현장 연결을 끊고 스튜디오로 전환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도르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번과 같이 큰 지진 규모에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에도르안 대통령은 지진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부의 지진대응에 몇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상황은 이제 "통제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켄데룬 사람들은 정부가 너무 늦게 도착했다. "왜 어제 오지 않았는가. 잔해속에 갇혀 부르짖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한 여성은 화요일에 도착한 구조대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그는 "어제 왔다면 우리는 그들을 구할수 있었다"라며 울부짖었다.

카라만마라스의 NTV 특파원에게 지역 주민들이 "지원이 부족하다"고 말한 영상이 공유되고 있다. 주민들은 "국가는 어디 있는가"라고 물었다.

◆ 내전에 지진까지 시리아, 이보다 더 비참할 수 없다

시리아 민방위대가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화이트헬멧 트위터
시리아 민방위대가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화이트헬멧 트위터

북서 시리아 아프린의 한 마을에서 올해 7살인 모하메드가 지진이 발생한 지 30시간 만에 구조됐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의식을 되찾고 의사를 보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집이 무너져 내리면서 모하메드의 옆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그를 치료한 시리아 미국의학회재단(SAMS) 의사 아흐메드 알 마스리 박사는 다음날 내가 누구인지 물었다. 모하메드는 "나의 생명을 구해준 의사"라고 답했다. 

모하메드는 구조됐지만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알수 없다.   

11년 넘게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는 이번 지진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튀르기예 가지안테프에 있는 시리아 미국의학회재단은 지진이 발생한 월요일 튀르기예와 시리아를 뒤흔든 규모 7.8의 지진에 따른 지상 상황은 시리아에서 "더 비참하다"고 말했다.

바치르 타잘딘 박사는 CNN에 "시리아에서는 더 비참하지만 터키와 시리아에서는 모두 비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타갈딘은 10년이 넘는 시리아 북부의 분쟁은 "불쌍한 경제 상황"을 조장하여 현재의 위기에 대응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알레포와 하마, 라타키아 등의 도시가 있는 이 지역에는 국제사회의 구조, 원조의 손길이 거의 닿지 못한다. 이 지역에서의 구조 활동은 지역 민간인들로 구성된 ‘시리아민방위대(Syria Civil Defense)’가 맡고 있다.

'화이트 헬멧(White Helmet)’으로 알려진 민방위대가 구조는 물론 피해집계를 하고 있다. 외신들은 시리아 지진의 피해 집계를 정부 당국자보다는 대부분 화이트 헬멧을 더 많이 인용하고 있다.

뱌사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는 2021년부터 이 반군 세력이 장악한 이 시리아 북서부에 외부 구호단체가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국경 통로를 한 개만 남겨 놓고 모두 끊었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유일하게 남은 튀르키예에서 이곳으로 이르는 ‘바브 알-하와(Bab al-Hawa)’ 국경 통로를 통해 지원이 가능했었다. 이번 지진으로 이 통로로 이르는 길마저 파괴되고 폐쇄돼 국제  구호팀과 물자가 들어갈 길이 없어졌다.

시리아 전체 국토의 4%에 불과한 북서부는 이번 지진 이전에도, 2011년부터 시작한 내전으로 인해 이미 폐허가 된 지역이다. 사회기반시설의 65%가 파괴돼 방치됐고, 인구 410만 명 중 90%가 국제 사회의 원조에 의지해 사는 국내 난민들이다.

알레포와 이들리브 등의 도시가 있는 북서부는 수도 다마스쿠스의 지배를 받는 지역과, 튀르키예의 영향 하에 있는 반군, 미국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족 민병대, 유엔과 안보리가 ‘국제테러집단’으로 지목한 이슬람 지하드 세력인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의 세력권으로 또 나뉜다.

아사드 정권과 이를 지원하는 러시아는 HTS에게 국제사회의 원조 물자가 가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이끌어내 기존에 이곳에 닿을 수 있었던 국경 통로 4곳 중에서 바브 알-하와를 제외하고는 모두 폐쇄했다.

러시아는 작년 말에도 남은 한 개 통로를 6개월 연장 유지하는 안보리 결의안을 거부권을 헹사했다가 지난 달에 결국 승인했다.

아사드 정권의 의도는 수도 다마스쿠스를 통해서만 반군 지역에 외국의 원조물자가 들어가게 해, 누가 무엇을 얼마나 받는지 철저히 통제해, 궁극적으로 반군 세력과 동조자들은 굶주리게 하겠다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아사드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시리아에 내린 경제 제재 조치를 풀어달라고 미국와 유럽연합(EU)에 요청했다. 이 경제 제재는 아사드 정권이 내전 중에 양민을 학살하고 살인 가스로 살해하는 등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질러 내려진 조치다.

미국과 나토(NATO), EU 국가들은 시리아에 구조ㆍ원조 팀을 보내겠다고 밝혔지만, 시리아는 반응이 없다. 지금까지는 유일한 아사드 정권의 후원세력이라 할 이란이 6일 70톤 가량의 식량과 텐트, 의료품을 공수(空輸)한 것이 전부다.

아날레나 배어복 독일 외무장관이 7일 러시아를 비롯한 모든 국제사회는 아사드에게 시리아의 북서쪽으로 가는 통로를 열도록 영향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지진 80시간만에 들어온 생멸줄 유엔 구호물자

시리아 난민촌. 이 곳은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주로 비정부기구에 의존하고 있다. ⓒ하얀헬멧 트위터
시리아 난민촌. 이 곳은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주로 비정부기구에 의존하고 있다. ⓒ하얀헬멧 트위터

시리아 북서부가 튀르키예 국경선 바로 위에서 6일 새벽 강진이 발생한지 사흘이 지난 뒤인 9일 낮 유일한 외부 지원 물자를 유엔 구호품을 받았다.

트럭 6대 분량의 유엔의 구호물자가 이날 처음으로 시리아 피해지역을 향해 출발했다. 국경선 상에 세워진 양쪽 지역 통행의 통과 지점이 단 한 곳뿐이었고 이 유일한 문이 지진으로 도로가 부서지면서 닫혀버렸다. 해당 국경선의 길이는 지중해변서 유프라테프강 서안까지 500㎞가 훨씬 넘는 장거리다.  

그간 튀르키예 남동부에서는 국내서 8만 명이 넘는 구조대가 동원되고 해외서도 70개 국 이상이 전문구조대 파견을 약속하며 속속 도착하며 구조와 구호 활동을 벌였다.

지진 발생 80시간이 지나서야 정부급 물자지원을 처음으로 받을 만큼 행정 체계가 낙후되고 열악한 시리아 북서부 사정을 감안하면 이곳의 실제 피해 정도는 지금 전해진 것보다 몇 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유엔 지원이 재개되면서 피해 통계가 비로소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2011년 아랍의 봄 민중봉기가 두 달 뒤 4월부터 내전으로 변한 시리아는 그로부터 만 12년이 지난 현재 내전의 상처가 아주 깊다. 지진 피해 지역은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정부 통제 지역과 반군 결집 지역으로 나뉜다.

알레포시 등 아사드 정부 통제 지역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400㎞ 떨어져 반군을 포위하고 있는 정부 군대만 곳곳에 포진해 있을뿐 행정 서비스는 열악하다.

권력 유지를 위해 자국민에게 생화학무기를 사용하고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공군 지원에 살아남은 아사드 정부는 서방의 경제 제재로 2016년 말 탈환한 북서부 알레포시 등을 제대로 살필 여력이 없다. 유엔 구호기관이 식량을 지원해오고 있다.

유엔 기관은 지진 전 시리아 국민 1800만 명 중 1500만 명이 식량 구호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유엔은 튀르키예 지진 발생 하루 뒤에 튀르키예 남동부 국민 1300만 명이 지진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말했고 이틀 뒤에는 시리아 북서부에서 1000만 명이 지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 시리아 1000만명 중 아사드 정부 통제 아래에 있는 국민 수가 인구 100만이 넘는 알레포시를 비롯해 600만명이다. 나머지 400만명이 반군 결집지역 주민이다. 이 400만 명은 특히 유엔의 구호 식량 아니면 먹을것을 구할 수 없는 절대빈곤층이라고 할 수 있다.

시리아 북서부는 유프라테스강 서안의 알레포주, 중간의 이들립주 및 지중해변의 라타키아주가 튀르키예 국경선과 각각 접해 있다. 

알레포주는 가운데 알레포시를 비롯해 80%가 아사드에 수복되었지만 주 북단에는 반군 텐트촌이 늘어서 접경지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 이번 지진에 알레포주는 국경선에서 상당히 떨어진 알레포시도 피해를 입었으나 그보다는 바로 국경과 접한 반군 텐트촌이 있는 아자즈, 라조 및 잔다리스가 피해가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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