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1일 경기도 안산소방서 안전체험관에서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이 심폐소생술(CPR) 및 응급처치 교육을 받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22년 11월 1일 경기도 안산소방서 안전체험관에서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이 심폐소생술(CPR) 및 응급처치 교육을 받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또래 친구들은 아직 대학생이거나 혹은 취업준비생인 시절, 약간 아저씨 개그처럼 써먹는 개그 소재가 있었다. 누가 직업이나 신분을 물어보면 대학생이라고 답하는 것이다. 개그의 흐름은 대충 이렇다. “혜린씨는 뭐 하세요?” - “아, 저 아직 대학 다녀요.” - “아. 그러시구나! 혹시 학교가 어디세요?” - “해병대요” - (침묵)

서울대·연세대·고려대, 그리고 군대. 농담이 아니라 군대는 배워야 할 것도, 들어야 할 교육도 너무 많았다. 일단 법정 의무교육인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과 인권교육부터, 자살예방교육, 군법교육, 인성교육, 어느 부대에서 사고만 터졌다 싶으면 사후 대책으로 준비되는 산발적인 교육까지. 그렇게 많은 것을 듣고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가르쳤는데, 군을 나서고 몇 년 지나니 막상 기억나고 생각나는 것이 몇 개 없다. 대부분 군대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번갯불에 콩 볶듯 진행됐고, 시수를 채우고 보고 기한을 맞추기 바빠서 질을 따질 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간부들보다는 짧은 군 생활을 가지는 병사들은 오죽할까. 자기가 맡은 주특기만 가르치는 것도 사실 제대로 익히자면 1년을 꼬박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 사이며 근무며, 당직이며, 내무생활이며, 다른 군사훈련, 부대 훈련, 때마다 찾아오는 진지 공사, 위에서 언급한 숱한 교육들, 여기에 더해 정훈 교육, 보안 교육…읊자면 하루 종일이다. 군인의 하루는 생각보다 바쁘고 생각보다 24시간은 짧다. 모자란 걸 가르치기 위해서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군기(軍紀)만 잡으면 적군도 벌벌 떨 강군이 될 것만 같은 예비역 장군님들이나 위정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21세기 한국 군대는 군기를 얘기할 시간조차 부족하다.

와중에 여당의 유력 당권 주자인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이 내놓은 안이 흥미롭다. 1월 23일 김기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발의한 ‘민방위기본법’ 개정안과 관련해 “국민안전, 사회 갈등 없는 양성평등 병역 시스템을 위한 첫 단계”임을 강조하며 “여성 민방위 훈련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필수 생존 교육”이라고 밝혔다. 현행 민방위 교육이 심폐소생술과 제세동기 사용방법 등의 응급조치는 물론, 산업재해 방지, 화생방 대비, 교통과 소방안전에 관한 필요한 생존지식을 담고 있지만 민방위법상 대상이 ‘20세 이상 40세 이하 남성’만을 대상으로 실시한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나 여성은 전시에 생존을 위한 아무런 지식도 지니지 못한 채 완전한 무방비 상태로 놓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의 이러한 ‘여성에 대한 극진한 우려’ 행보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지난해 10월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여성에게 ‘군사기본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며,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자강의 시작입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역시 실제 전쟁에 대비해 자기 방어능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여성에게 군사훈련을 받게 할 취지였다.

김 의원은 일단 사람이 군대에 가거나, 혹은 군대와 유사한 어떤 역종을 수행하면 생존 능력이 올라갈 수 있는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다고 굳게 믿는 것 같다. 그러나 군대는 그런 것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아니고, 김 의원이 나열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딴 곳에 있다. 심폐소생술을 포함한 응급처치에 대한 교육은 학교보건법에 따라 모든 학생이 의무로 교육받도록 돼 있다. 나의 경우는 응급처치법은 적십자에서 제공하는 인명구조요원 교육을 통해 계속 익히고 있고, 산업 안전과 관련한 교육은 군대가 아니라 전역하고 나서 새로 취직한 직장에서 배웠다. 고용노동 관계 법령에 규정돼 있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이다. 교통안전은 운전면허 취득과정에서 배웠다. 요즘은 사람이 나고 자라며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장소가 군대에만 한정된 시대가 아니다. 군대만이 그런 교육을 제공하던 시절이 분명 있었던 것은 맞다. 가령 프랑스 혁명(1789년) 시절처럼 말이다.

생존이란 무엇인가. 삶을 위협하는 악조건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 아닌가. 생존은 남자한테만 해당되는 것도, 20세 이상 40세 이하에게만 해당하는 조건도 아니다. 국민의 생존을 강조하고 싶다면 전시에 모두를 징발할 계획을 세울 것이 아니라,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가까이서 필요한 교육을 쉽게, 상시적으로 득할 수 있도록 계획돼야 할 것이다. 사람의 생존력은 체력과 발달과정에 따라 다르므로 아동은 아동에 맞게, 노인은 노인에 맞게 교육이 디자인될 필요도 있다. 또 생존은 병역 수행과 같이 갈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다. 반드시 군대를 가야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것은 개인의 준비 미흡이 아니라 민간인의 안전을 미리 담보하지 못한 거대한 국가 실패에 가까울 것이다.

국민안전, 사회갈등, 양성평등, 병역, 평화, 생존. 서로 호응하지도 않는 단어들을 나열하며 결론적으로는 “여자도 군대 가자!” (저 문장 속에서 그나마 서로 접점이 있는 것들이라면 양성평등과 병역 정도일 것이다)를 외치기 전, 당심을 잡겠다고 특정 성별과 연령대가 좋아할 문장을 생각 없이 내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군사교육이 그렇게 중요해 군대에 가면 세상에 필요한 모든 교육을 받을 수 있으니 여자도 가라고 하기 전에, 군대에서 과연 군인에게 필요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진단해보는 것이 먼저 아닐까? 앞의 개그만큼이나, 군대를 종합 교육기관쯤으로 착각하고 모두를 군대에 보내면 사회갈등도, 평화도, 생존도, 당권도(!) 해결될 것이라는 상상은 맹랑하기 그지없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주변에서 접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들을, 군대에서만 배울 수 있는 시절에서 200년도 더 지났다는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 현대의 군대가 그럴 여유와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사실도 덤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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