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없는 여자와 도시
사랑은 답이 아니다. 남편의 상실을 인생의 수렁으로 받아들인 어머니 곁에서, 로맨틱한 사랑에 삶을 제물로 바쳐버린 여자들의 중력에 짓눌려 고닉은 생각했다. 도무지 찾을 길 없는 진정한 짝이 인생의 화두가 됐고, 그런 사람의 부재는 모든 걸 정의내리는 경험이 됐다. 결국 고닉의 관심사는 사랑이 아닌 사랑 없는 삶이 됐다. ‘사나운 애착’을 펴내고 30여년 만에 ‘짝 없는 여자와 도시’로 돌아온 비비언 고닉의 관심사는 한결같다. 짝을 찾겠다는 열망과 가능성을 뒤로 하고, 혼자서 가장 완전한 자기를 향해 걸음을 내디딘다. 자기 장소인 도시에서, 자기 파편인 사람들 사이로.
비비언 고닉/박경선 옮김/글항아리/1만 7000원
정서적 학대에서 벗어나기
최근 정서적 학대의 한 방식인 가스라이팅이 알려지며 활발한 논의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가스라이팅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정서적 학대가 있음에도 국내에서는 아동 학대에 범주에서만 논의되고 있다. 국가, 인종, 성별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피해자들이 정서적 학대로 고통 받고 있다. 35년 경력의 심리치료사 비벌리 엔젤은 수없이 많은 학대 피해자들을 마주하며 정서적 학대를 다룬 책을 네 권이나 펴냈지만, 여전히 전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정서적 학대에서 벗어나기’를 통해 학대 피해자들이 건강한 내면을 되찾아 또다시 ‘투명한 감옥’에 갇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비벌리 엔젤/정영은 옮김/소미미디어/1만 6800원
인간 같은 동물, 동물 같은 인간
동물원에서는 물을 채운 해자로 둘러싸진 섬에 유인원을 수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자에 빠진 동료를 구하려고 시도한 유인원에 대한 보고가 다수 있다. 새끼를 다루는 데 서툰 어미 침팬지가 실수로 새끼를 물 속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수컷 한 마리가 그 새끼를 구하려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원래 침팬지는 물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데, 강력한 동기가 없이는 물 공포증을 극복하기 어렵다. 동물도 눈물겨운 자기희생을 할 줄 알고, 협동하고 교육하며 불공평한 대우에 분노한다. 인간 사회에 있는 좋은 것들이 동물 사회에도 있다.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다. 편견을 넘어 함께 행복할 방법을 찾을 때다.
이정전/여문책/1만 8000원
여행하는 여성, 나혜석과 후미코
같은 시대를 살았다고 모두 비슷한 삶을 살까. 제국에서 태어난 사람과 식민지에서 태어난 사람이 반드시 제국인에 어울리는 삶, 식민지인에 어울리는 삶을 살지 않는다. 식민지 한국과 피식민지 일본의 근대 시기를 대표하는 여성 나혜석과 하야시 후미코는 같은 시대에 태어나 4년이라는 차이를 두고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횡단하여 유럽을 다녀왔다. 둘의 여행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만나는 사람도 보이는 풍경도 모두 다르다. 식민지와 피식민지라는 배경 안에서 펼쳐진 두 여성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제국주의의 절정기, 동양 여성이 세계를 여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나혜석, 하야시 후미코/안은미 옮김/정은문고/1만 6500원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사람들은 연주자를 보며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의 화려한 모습만을 기억하지만, 이는 연주자가 지닌 극히 일부의 측면에 불과하다. 연주자의 삶은 좌절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한때 처참한 탈락으로 피아노를 포기하고 전화회사의 영업사원이 됐다. 미국에서 홀로 갓난아이들을 키우며 하루살이 삶을 살기도 했다. 그는 좌절을 거듭하면서도 생을 향한 의지와 자기 음악성을 계발하려는 집념을 끝내 놓지 않았다. 연습을 거듭한 끝에 일본 문화예술재단이 선정한 ‘현존하는 세계 100대 피아니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저자는 스스로를 ‘좌절의 스페셜리스트’라고 소개한다. 그의 인생을 읽으면 내 앞에 놓인 좌절을 다르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백혜선/다산북스/1만 6800원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쓴 벨 훅스가 페미니스트로서 계급에 대해 성찰한다. 불편한 마음에 계급 문제를 외면하거나 개인과 국가에 책임만 돌리는 담론에서 나아가 더 명확히 자신의 계급을 직시하고 ‘말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부유한 여성이 있고 가난한 남성도 있다. 흑인이지만 부유한 자, 백인이지만 가난한 자가 존재한다. 여러 정체성이 교차하고 한 사람의 생애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계급에 대해 저자는 인종과 젠더를 넘어선 화합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2008년 출간된 바 있으나 권김현영의 해제를 덧붙여 15년만에 새롭게 출간된 만큼, ‘금수저’, ‘흙수저’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계급 문제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는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벨 훅스/이경아 옮김/문학동네/1만 6000원
결혼진술서
‘결혼진술서’의 정식명칭은 ‘결혼생활진술서’다. 이는 이혼 소송 시 필수로 제출해야 하는 서류로, 재산분할과 양육문제 등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활용되기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당사자는 감정의 혼란과 판단 오류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그런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냉철히 글을 작성할 수 있도록 조언을 건넨다. 저자는 이혼을 장려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결혼진술서를 작성해볼 것을 권한다. 진정 더 단단한 사랑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결혼을 앞 둔 예비 부부에게도 결혼 생활의 현실을 담은 이 책은 더 좋은 결혼 생활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김원/파람북/1만 5500원
입속의 새
4년간 세차례 인터네셔널 부커상 후보에 오른 라틴 아메리카 문학계 젊은 거장의 초기작 스무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그의 작품에는 환상과 현실, 기이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사춘기 딸이 어느날부터 새를 산 채로 잡아먹게 된다거나, 잠에서 깨어나보니 벌레가 되어 있는 회사원 등 기이한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여성주의적인 관점으로 사회적 소수자를 담아내기도 했다. 가난한 여성, 가정학대 피해자, 우울증 환자 등이 등장하며 이 사회의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넌지시, 그러나 강렬히 보여준다.
사만타 슈웨블린/엄지영 옮김/창비/1만 6000원
지구에서 영어생활자로 살아남는 법
저자는 지방대 출신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모욕과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한국의 근무환경에서 벗어나고자 미국으로 무작정 어학연수를 떠났다. 우여곡절 스위스 제네바 NGO로 들어가게 되고 현재는 유엔 국제기구 국제공무원으로 일하는 영어생활자가 됐다. 있어보이는 발음과 시험점수를 위한 영어 공부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영어와 그 공부법을 아낌없이 전수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해외 인턴십이나 취업에 도전해야 하는 학생들, 벗어나고 싶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자조하고 있는 근로자라면 저자의 경험담이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백애리/그래도봄/1만 6000원
하버드식 호흡의 기술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만성적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의 분비에 자율신경이 반응해 발생하는 것으로, 우리의 의지로 조절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트레스를 다룰 수 있을까? 하버드대 의사인 저자가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주는 8가지 과학적인 호흡법을 소개한다. 그리고 5만명의 스트레스를 분석해 누구나 큰 결심없이 쉽게 해볼 수 있는 행동 법칙 100가지도 함께 실었다. 만병의 근원이라고 지목되지만 완전히 없애기란 불가능한 스트레스. 하버드식 호흡법과 함께라면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네고로 히데유키/문혜원 옮김/비타북스/1만 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