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진실화해위, 1970년대 국가기관의
‘홀치기’ 특허권자 인권침해 인정
“대통령 지시로 상공부‧중앙정보부 개입
피해자, 남산 끌려가 특허권 포기각서 작성
국가‧관련 기업 공식 사과해야...
재심 등 피해자 명예‧피해 회복 필요”
1970년대 중앙정보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특수염색 기법인 ‘홀치기’ 발명자의 특허권을 빼앗고 인권을 침해한 사실이 51년 만에 드러났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72년 중앙정보부와 상공부 등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해 ‘홀치기’ 발명자 고(故) 신모 씨의 자기결정권과 인격권, 신체의 자유, 재산권 등을 중대하게 침해했음을 인정했다고 16일 밝혔다.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증대’를 명분 삼아 지시한 일로, 상공부장관, 중앙정보부장 등이 조직적으로 개입해 피해자 불법 체포, 폭력과 위협, 권리 포기 및 소취하 강요 등을 저질렀다고 결론내렸다.
신씨는 1965년 직물 염색기법인 ‘홀치기 발명 특허를 등록했다. 입체감이 뛰어나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특허 도용 사태도 발생했다. 신씨는 이 중 26개 업체를 상대로 특허권침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972년 5월18일 해당 업체들이 신씨에게 5억 22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주 뒤인 5월31일, 신씨는 기자를 사칭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 의해 중앙정보부 남산 분실로 끌려갔다. 6월2일 신씨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자진 취하하고 특허권 권리를 포기한다는 자필 각서를 썼다. 신씨는 실제로 특허권을 포기하고 소를 취하했지만, 1972년 허위공문서작성죄로 기소됐고, 같은 해 징역 1년을, 항소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신씨의 홀치기 특허를 심사한 상공부 공무원 4명은 “비위 공무원”으로 찍혀 직위해제됐다. 신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판사는 이듬해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진실화해위는 국정원으로부터 입수한 중앙정보부 내부 문건을 통해 이러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상공부 장관이 “홀치기 특허의 부당성을 들어 특허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보고하자, 박 대통령이 “1965년부터 제기된 문제점을 아직까지 시정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책했다는 내용, “홀치기 제품에 대해 특허권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협잡이 통할 수 있는 법이 되어 있고, 특허를 준 상공부도 잘못이 있으므로, 상공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 법무부 장관이 이를 조사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신씨는 지난 2006년 1기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으나, 당시 중앙정보부의 역할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어 각하됐다. 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한 후 신씨의 아들이 다시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는 “앞서 1기 진실화해위의 2007년 각하 결정에 대해 고인과 유족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또 국가가 신씨에게 사과하고, 재심을 통해 신씨의 명예·피해 회복을 위한 실질적 조처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당시 신씨의 특허권이 부당하다고 주장한 섬유수출기업들도 “국가 공권력 남용을 부추겨 신씨의 재산권과 인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사과해야 한다”고 명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