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홍현경의 벗는 벗들]

그런 사람을 알게 됐다. 방 모퉁이마다 깃든 존재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는 사람, 수챗구멍 냄새로 괴로워할 물속 생명을 걱정하는 사람, 세상을 눈으로만 보지 않는 사람, 모든 것이 투명한 거미줄로 연결돼 있어서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 그런 까닭에 토마토님, 공기님, 꼽등이님도, 한때 미워했던 이도, 저 멀리 태평양에 떠다니는 과자봉지도 모두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이는 내게 “별을 흔들지 않고서는 꽃을 꺾을 수 없다”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격언을 들려줬다.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다 별과 연결돼 있어서 우리가 꽃을 꺾으면 별을 흔드는 것과 같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소리쳤다. “별과 연결된 무수한 나무를 베어 열차를 놓고, 케이블카를 놓겠다고요? 여태 너무 많은 별을 흔들어 온 탓에 지구가 처한 위험이 보이지 않나요?” 이런 아름다운 소리를 낼 줄 아는 그이는 <벗자편지>를 함께 쓴 ‘칩코’다.

환경적폐 설악산케이블카 청산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등 각계 121개 단체들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문화재청 설악산케이블카 불법강행 규탄 및 문화재청장 해임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환경적폐 설악산케이블카 청산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등 각계 121개 단체들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문화재청 설악산케이블카 불법강행 규탄 및 문화재청장 해임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칩코는 지난해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운동을 열심히 했다. 올해는 다른 일들도 줄여서 지리산을 괴롭히는 개발 논리와 싸울 거라고 들었다. 칩코가 느끼는 연결감과 모든 생명을 향한 존중은 뾰족뾰족하던 나를 둥글게, 말랑하게 바꿔 놓는다. 지난해 그가 준비해 연 ‘남생이(민물거북 가운데 한 종) 탐사대’ 모임에서도 나는 칩코가 보내는 생명 평화의 기운을 느꼈다. “가장 느린 존재에게도 안전한 길은 모두에게도 안전합니다.”하고 말하던 그의 소리는 무수히 흔들리는 별들에게도 평화를 줄 것만 같았다.

정말로 모든 생명이 저 우주의 별 하나하나와 연결되어 있다면, 지리산에 산악열차가 놓이고, 설악산에 오색케이블카가 놓이고, 흑산도에 공항이 들어설 때 우리는 얼마나 엄청나게 많은 별을 흔들게 될까. 흔들리다가 흔들리다가 결국 스러지는 별들이 지진, 가뭄, 홍수, 해수면 상승과 같은 자연재해로 우리에게 위험 신호를 보내는 거라면 왜 이런 숱한 신호를 보고도 파괴는 멈추지 않는 걸까.

산악열차나 케이블카가 놓일 숲에는 무수한 생명이 산다. 그 생명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그들의 집이 곧 내 집이라고 생각할 줄 아는 이라면 결코 재미를 위한 파괴에 함께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 칩코의 ‘연결감’이 더 많은 이에게 가 닿으면 좋겠다. ‘어느 것 하나 나 아닌 것이 없다’고 깨달을 때, 차별과 혐오도 희롱과 폭력도 멈출 수 있을 테니. 재미 삼아 한 번 산악열차를 타 보고 싶은 마음도 거뜬히 누를 수 있으리라.

하늘을 향해 외치듯 SNS 계정을 향해 #미리탑승거부를 외치면 어떨까. “나는 지리산 산악열차가 놓여도 타지 않겠다.” “나는 설악산 케이블카가 생겨도 타지 않겠다.” 하고 모두가 미리 선언하면 어떨까. 그럼 별을 흔드는 파괴를 막을 수 있을까? 모두가 바란다면 그렇게 될 거다. 별과 연결된 존재들이 모두 그렇게 바란다면 분명히 막을 수 있다. 정말로 지킬 수 있다. 파괴를 거부하는 자들의 바람을 별들도 응원하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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