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반도체 지원법의 지원조건을 공개하면서 한국의 반도체 업계에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견제에 굴하지 않고 자국 반도체 굴기 야망을 계속 추구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전쟁에 가장 큰 실익을 챙기는 나라는 한국이 아닌 대만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침체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으로 세계 1위의 반도체 국가인 한국의 반도체 업계가 이중고를 겪고 있다.

◆ 미국의 '반도체 패권법'

[워싱턴=AP/뉴시스]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워싱턴=AP/뉴시스]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미국의 언론들은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미국의 기술기반을 재건하려는 법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목표는 경제와 국가 안보에 대한 기여이다. 미국은 국방부를 비롯한 미국 정부 기관이나 주요 시설에 필요한 반도체를 얼마나 생산하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지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세계 반도체 제조에서 미국의 점유율은 37%에서 12%로 떨어졌다.

세계에서 칩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기업은 대만의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이다.애플, AMD, 엔비디아, 퀄컴과 같은 미국 회사들은 그들만의 칩을 설계하지만, 이 기업들은 모두 그것들을 만들기 위해 대만의 TSMC를 고용한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는 반도체를 개척한 미국 회사인 인텔을 위해 일부 칩을 만든다.

반도체 지원법은 빼앗긴 패권을 다시 찾고 중국의 반도체 독립 야망을 꺾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의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정권을 바뀌었어도 변함이 없다. 이 구상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미국 경제와 국가 안보 모두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연구개발비 130억 달러, 공장 신축비 390억 달러, 개인투자자 유치 세액공제 240억 달러 등이다.

인텔의 최고경영자 팻 겔싱어는 "이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산업 정책 입법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527억 달러(약 69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 생산 지원금 신청 절차를 안내하면서 경제 및 국가 안보, 사업 상업성, 재무 건전성, 기술 준비성, 인력 개발, 사회 공헌 등 6개 심사 기준을 제시했다. 

미국 정부가 특정 기업에 반도체 생산 보조금을 지원할 때 초과이익을 공유하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군사용 반도체를 장기 공급하는 업체에게 보조금을 우선 지원한다. 국방부와 국가안보 기관은 미국 내 상업 생산시설에서 제조한 안전한 최첨단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접근권을 갖게 하겠다는 의도다. 

1억5000만달러(1990억원) 이상 지원금을 받는 기업은 현금흐름 혹은 이익이 사전에 정한 규모보다 많을 경우 미국 정부와 초과이익 일부를 나눠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할 경우 일정 기준을 넘어선 이익은 미국 정부와 나눠야 한다.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하려는 것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1억5000만 달러 이상의 반도체 지원금을 받는 기업이 전망치를 웃도는 이익을 거두면 보조금의 최대 75%까지 반납해야 하고, 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보조금을 받는 것이 끝이 아니다. 미 상무부의 심사를 통과하면 앞으로 10년 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 첨단 반도체 시설을 짓거나 기존 시설에 추가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협약을 맺어야 한다. 미국이 요구할 첨단 반도체 기술 통제 수준에 대한 안전장치 조항은 나오지도 않았다. 상황에 따라서는 중국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수조원의 혜택을 받은 대가로는 너무 큰 것이다. 

그 때문에 '반도체 지원법'이 아니라 '반도체 패권법'이라고 할 만큼 독소 조항투성이어서 한국 반도체 업계에 폭풍의 핵이 될 조짐이다. 

◆ 중국, 식지 않은 반도체 굴기

[베이징=AP/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2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폐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베이징=AP/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2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폐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중국 정부 펀드인 ‘국가집적회로산업 투자기금’은 자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회사인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에 19억 달러(2조5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 펀드는 2014년 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조성한 펀드다. 450억달러를 확보해 대표적인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중신궈지(SMIC)와 YMTC를 포함한 중국 100여개 반도체 제조, 설계, 패키징, 테스트, 설비, 소재 등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블룸버그는 "펀드의 투자 규모를 보면 중국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공격을 당하고 있는 자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를 끌어올리려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2일 YMTC가 중국의 투자자본으로부터 490억 위안(9조2678억)의 투자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금액에는 국가집적회로산업 투자기금의 자본도 포함됐다.

SCMP는 YMTC에 대한 추가 투자는 중국의 반도체 야망에 미국이 도전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졌다고 전했다.

YMTC는 지난해 12월에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미국이 갖고 있는 원천기술에 대한 접근이 제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YMTC는 업계 선두업체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를 제치고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앞선 제품을 선보였다고 SCMP는 보도했다.

중국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도 올해 들어 잇따라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섰다. SCMP에 따르면 중국 장쑤성 쑤저우시는 올해 시내 반도체 산업 생산량을 20%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300개 이상의 반도체 업체의 매출액을 지난해 1000억위안에서 올해 1200억위안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쑤저우뿐 아니라 광둥성 광저우시도 지난달 반도체, 재생에너지 등 첨단 제조 분야에 향후 3년간 2000억위안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알리바바의 고향’ 저장성 항저우시도 같은 달 조세 절차 등을 간편화하는 등 집적회로(IC) 산업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SCMP는 지난 3일 상하이에서 열린 반도체채용박람회에 700명이 몰려 500개의 신청했다고 전했다.

이는 세계적인 반도체 산업의 침체와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중국 반도체 업계의 전략적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성공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중국 경제 전문가들과 관리들은 중국이 성공을 거둘 때까지 엄청난 시행착오 비용을 감당할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 상처 뿐인 영광 한국 반도체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삼성전자 제공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매출 세계 1위를 되찾았고 SK하이닉스는 4위를 기록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반도체 매출은 지난해 670억5500만달러(88조5000억원)로 미국 인텔의 608억1000만달러를 제치고 세계 1위를 되찾았다. 

삼성이 1위를 기록한 것은 인텔이 더 부진했기 때문이다. 삼성의 매출은 전년보다 10.8% 줄어든 반면 인텔은 20.6% 감소했다.

SK하이닉스는 341억1000만 달러로 7.3% 줄었으며 세계 기업 순위도 3위에서 4위로 낮아졌다.

파운드리 분야까지 포함하면 대만 TSMC가 매출 1위를 차지하게 된다. TSMC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42.6% 증가한 746억3200만달러를 기록했다.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경기침체로 수요악화로 이어진 것과 달리 TSMC는 파운드리만 집중해 홀로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수출 현황을 보면 큰 위기를 맞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1320억5000만 달러로 2021년보다 1.3% 증가했다. 전체적으로는 증가했지만 지난해 8월부터는 급격한 하향곡선을 긋고 있다.  8월 수출 -7%, 9월 -4.9%, 10월 -16.4%, 11월 -28.6%, 12월 -27.8%를 기록했다. 1월에는 44.5%, 2월에는 42.5% 줄어 올들어 부진이 더 커지고 있다. 

반도체 수출 부진은 전체 수출부진에 무역적자,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경상수지는 45억2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해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상품수지가 74억6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한데 다른 영향을 받은 것이다.

1월 무역수지는 127억 달러 적자로 역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무역수지는 472억 달러 적자로 역시 사상 최대였다.

지난해 8월부터 이어진 반도체 수출 부진이 연간, 월간 무역적자, 경상수지 적자 최대 기록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 '사면초가' 한국 반도체

SK하이닉스 이천공장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 이천공장 ⓒSK하이닉스 제공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 비중의 40% 정도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8% 정도이다.

미국은 전세계 반도체 수요의 21%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 어떤 시장도 놓칠수 없는 실정이다. 미국은 중국 시장을 견제하고 있다. 이는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반도체 업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 정부는 중국과 스스로 멀어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전쟁으로 미국의 반도체 수입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크게 줄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사이익 최대 수혜국은 대만이며 한국의 상승폭은 미미하다고 평가했다.

한국이 중국과 멀어지는 사이 대만은 중국에서도 실익을 챙기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대만의 중국과의 반도체 무역수지는 223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해 전년 같은 기간 183억 달러보다 21.7%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중국과의 반도체 무역수지는 32억 달러의 흑자로 전년의 158억달러 보다 80% 줄었다.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수입시장에서 대만의 점유율은 35%로 미국의 중국 제재가 시작된 2018년의 28.9% 보다 6.1%p 높아졌다. 

같은 기간 한국의 점유율은 19.6%로 2018년의 24.4% 보다 4.8%p 하락했다. 주요 경쟁국 중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지난해 무역적자가 474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은 주력 중국에 대한 수출 부진에다 주력 반도체의 수출부진이 큰 영향 을 미쳤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전쟁에 양쪽에서 실익을 챙기는 대만으로부터 협공을 당하고 있는 모양새다. 대만의 TSMC는 옴디아의 집계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삼성전자의 매출보다 많았다.

여야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반도체 기업이 국내에 반도체 시설을 투자할 경우 받는 세액공제 규모를 대폭 높이는 방안에 합의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15%, 중소기업에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골자로 한 정부안보다 더 높이기로 했다. 

세액공제가 반도체 업계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69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미국, 한 기업에 9조원을 투자하는 중국과 비교하면 엄청난 액수의 혜택이라고 볼수는 없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가 될수 없는 한국 반도체 산업은 결국 미국과 중국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

다만 활로가 여러 장애로 가로막히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일정 부분 정부의 외교적인 역할이 필요하겠지만 미국, 중국 어느 쪽도 녹록하지 않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미국의 반도체지원법 세부조항과 관련해 "일반적인 외국인 투자 보조금 지급과 전혀 다른, 일반적이지 않은 조건들이 많이 들어있다"며 "이번 조건과 관련된 불확실성과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조항들이 협약 과정에서 상당부분 완화되고 해소되도록 정부가 적극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지급 조건이 상당히 방대해서 기업들이 조건을 하나하나 평가하기가 현재로서 쉽지 않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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