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징 솔로』
김희경 지음, 동아시아 펴냄
1인가구 담론에서 배제됐던
‘중년 비혼 여성’ 집중 조명

『에이징 솔로』 김희경, 동아시아 엮음 ⓒ동아시아
『에이징 솔로』(김희경 지음/동아시아 펴냄) ⓒ동아시아

에이징 솔로(aging solo). ‘홀로 나이 들어가는 40·50대 중년’을 뜻하는 이 단어는 아직 우리에게 낯선 개념이다. 한국 사회에서 1인 가구는 20·30대 ‘미혼’ 청년을 호명할 때나, 노년기 이혼·사별로 인한 고독사 대책에서만 주로 논의됐다. 

『이상한 정상가족』에서 가부장적 ‘정상가족’ 체제의 문제점을 고발하며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졌던 김희경 전 여성가족부 차관이 6년 만의 신간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한국 사회 1인 가구 담론에서 배제돼 있던 ‘중년 비혼 여성’을 조명한다.

저자는 혼자 살아가는 비혼 중년으로서, 자신처럼 혼자 사는 40·50대 비혼 여성 19명을 만나 한국 사회에서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 외로움에 대처하고 친밀감을 만들어 가는 방법, 노후를 준비하는 여정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혼자 살면 외롭다?... “나이 들수록 삶이 나아진다고 느껴요”

“혼자 살면 외로워.”
‘비혼’을 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저자가 만난 비혼 여성 중에서 외로움과 고독사에 대한 불안을 심각한 문제로 꼽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이 책은 “고령자를 자녀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자녀가 가까이에 사는 사람, 멀리 사는 사람으로 나누어 만족도와 고민, 외로움, 불안을 조사한 결과 자녀가 없이 혼자 사는 노인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고, 외로움과 불안을 느끼는 정도도 더 낮았다”는 연구를 소개하며 이런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나이 들수록 삶이 나아진다고 느껴요.” 에이징 솔로 선배들의 말이다.

비혼, 노인 여성 공동체의 등장... 관계, 돌봄을 발명하는 솔로들

누군가는 이웃들과 연결된 마을에서 혼자  살고, 누군가는 친구와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해 함께 살고, 누군가는 대안적 생활공동체 모델을 만들어 산다. 이들은 가족 바깥에서 서로를 돌보며 생애 주기를 함께 통과해 간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전라북도 전주시의 비혼 여성 공동체 ‘비비’(‘비혼들의비행’의 준말)와 경기도 여주시의 여성 노인 공동체 ‘노루목 향기’는 한국에서도 “비혼으로 함께 나이 드는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서로서로 견디는 힘만 있으면 다른 건 헤쳐나갈 수 있어요. 누군가를 견디지 않고 가능한,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관계가 있나요? 그런 건 없어요. (...) 누군가가 나를 감당해 주기 때문에 나도 누군가를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이 공동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_257쪽

법 제도에도 스며든 비혼 편견... “복지 단위 이제는 ‘개인’ 돼야”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벨라 드파울르는 결혼이 비혼보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비혼자에게 편견을 갖는 것을 ‘싱글리즘(Singlism)’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이러한 싱글리즘이 단지 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법률·제도 등 모든 구조에 스며들어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의 에이징 솔로들 역시 크고 작은 제도적 차별을 경험한다고 증언했다. 이들이 가장 큰 어려움로 꼽은 두 축은 주거와 돌봄 문제다. 정부의 주택공급제도는 결혼 여부와 자녀 수를 기준으로 청약 가점을 매겨서 1인 가구는 청약 등의 혜택을 받기 어렵다. 병원에서는 여전히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보호자로서 원가족의 동행을 요구하고, 솔로들은 곁의 소중한 사람을 돌보고 싶어도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돌봄휴가를 낼 수 없다.

혼자 살기의 증가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일본의 사회학자 오치아이 에미코는 “이미 모든 사람이 속하는 사회적 단위가 없다고 한다면, 사회의 기초 단위가 되는 것은 개인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자 김희경 역시 이제 복지의 단위를 가족이 아닌, 개인으로 전환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이 책에 담긴 비혼 중년의 경험과 증언에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하의 낡은 제도를 수정할 제도적 개선점과 가족 너머의 사회를 향한 새로운 상상력이 가득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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