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계 미국 작가 태미 응우옌
한국 첫 개인전 개막
5월6일까지 리만머핀 서울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태미 응우옌(Tammy Nguyen)이 한국 첫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 서울에서 지난 23일 개막한 ‘필멸의 존재를 위한 희극: 지옥편 A Comedy for Mortals: Inferno’ 전시 전경.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Photography by OnArt Studio.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태미 응우옌(Tammy Nguyen)이 한국 첫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 서울에서 지난 23일 개막한 ‘필멸의 존재를 위한 희극: 지옥편 A Comedy for Mortals: Inferno’ 전시 전경.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Photography by OnArt Studio.

우아한 형상, 조화로운 미학, 다층적인 은유.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태미 응우옌(Tammy Nguyen)이 한국 첫 개인전을 열고 기자들을 만났다.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 서울에서 지난 23일 개막한 ‘필멸의 존재를 위한 희극: 지옥편 A Comedy for Mortals: Inferno’이다.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은 전시다. 신곡은 단테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과 연옥을 거쳐 연인 베아트리체가 먼저 가 있는 천국에 다다르는 여정을 그린 3부작 대서사시다. 한국 전시는 그중 1부 ‘지옥으로의 여정’을 다룬다.

천천히 깊이 들여다볼수록 재미있는 전시다. 서로 연결된 도상과 가려진 문구, 추상적 패턴과 구상적 형상이 가득하다.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태미 응우옌(Tammy Nguyen).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Photo by Annie Ling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태미 응우옌(Tammy Nguyen).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Photo by Annie Ling

응우옌은 동남아시아와 디아스포라에 천착해온 작가다. 특히 언어와 서사가 만나며 일어나는 윤리적 혼란에 관심이 많다. 코네티컷 주 이스턴을 기반 삼아 활동하면서 미국·유럽·일본·베트남·싱가포르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다. 이번 서울 전시는 2022년 리만머핀 전속 작가로 합류해 여는 첫 전시다. 

작가는 허구와 역사를 교차시켜 문학, 냉전, 식민주의, 폭력, 환경 등 다양한 주제를 탐구한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으로 하강하는 영적 순례와, 냉전 시대 미-소 간 우주 경쟁, 즉 우주로의 상승을 연결하는 식이다. “오늘날 서구 세계관을 형성한 두 역사적 서사 간의 공간적·문학적 유사성”을 포착한다.

‘내 가이드와 나’(My Guide and I)를 보자. 베르길리우스와 단테가 뱀 모양에 인간 머리, 전갈 꼬리를 가진 괴물과 엉켜있다. 배경은 따뜻한 주홍빛과 분홍빛으로 발하는데,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을 통과하는 여정을 마치고 새 여명으로 향하는 것을 뜻한다. 혹은 두 사람이 우주 탐사를 마치고 태양의 열기와 빛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일 수도 있다.

태미 응우옌(Tammy Nguyen), 내 가이드와 나(My Guide and I), 2023, 수채, 비닐 페인트, 파스텔, 고무 스탬핑, 패널 위에 펼친 종이에 금속박, 121.9 x 177.8cm.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태미 응우옌(Tammy Nguyen), 내 가이드와 나(My Guide and I), 2023, 수채, 비닐 페인트, 파스텔, 고무 스탬핑, 패널 위에 펼친 종이에 금속박, 121.9 x 177.8cm.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작품 전반적으로 선명한 나뭇잎 패턴이 눈에 띈다. 적도에 가까운 베트남의 열대 기후를 나타내는데, 작가는 이를 지옥·태양의 열기, 또 우주 로켓 발사와 연결한다. 적도는 기상 조건이 가장 안정돼 로켓 발사 실험지로 각광받는 지역이다. 또 캔버스 표면엔 작고 빛나는 금속박을 미사일과 로켓 모양으로 압인(스탬핑)했다. 멀리서 보면 별이나 빗방울처럼 보인다.

미국의 우주 진출에 앞장섰던 린든 B. 존슨 부통령,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 등 역사적 인물들의 사진, 냉전 시기에 발행된 신문인 ‘스타스 앤 스트라이프’지 헤드라인, 로켓선의 단면도를 포함한 다양한 우주선 이미지도 작품 전반에 등장한다.

‘벼룩에 물렸을 때’(When Bitten By Fleas)는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의 문지기 케르베로스를 그린 회화다. 1963년 미국 흑인민권운동 시위 현장에서 경찰견이 흑인 시위 참가자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찍은, 인종차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유명한 보도사진에 영감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작가는 윤리적 모호함에 대한 견해를 우주 경쟁 시기의 미 지도부로 확장하고, 식민지 역사에 대한 광범위한 비평을 전달한다.

태미 응우옌(Tammy Nguyen), 벼룩에 물렸을 때(When Bitten By Fleas), 2023, 수채, 비닐 페인트, 파스텔, 고무 스탬핑, 패널 위에 펼친 종이에 금속박, 121.9 x 177.8cm.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태미 응우옌(Tammy Nguyen), 벼룩에 물렸을 때(When Bitten By Fleas), 2023, 수채, 비닐 페인트, 파스텔, 고무 스탬핑, 패널 위에 펼친 종이에 금속박, 121.9 x 177.8cm.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공들인 작업 방식도 인상적이다. 작가는 먼저 화면 전체를 옅은 농도의 물감으로 채색하고, 스크린 인쇄 공정을 통해 작품 속 대상들이 비닐 페인트의 여러 층위에서 다양한 패턴 및 모티프와 얽히도록 한다. 평면 작업이면서도 선명하고 입체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다. 수채, 비닐 페인트, 스크린 인쇄, 스탬핑, 도금, 형압 등 다양한 재료와 기술을 사용했다. 또 야광 잉크를 사용해 조명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전달한다.

응우옌이 “이번 전시의 절정(heart and soul)”이라고 자평하는 아티스트 북도 놓치지 말자. 총 9권을 만들었는데 6권은 리만머핀 서울에서, 3권은 서울 강남구 소전서림(4월8일~5월6일)에서 만날 수 있다. 신곡 지옥편 원문 구절을 삭제하거나 변경하는 식으로 “작가가 지은 시”를 들려준다. 우주선 모양 등 여러 모양으로 펼쳐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재미가 있다.

태미 응우옌(Tammy Nguyen), 언어의 용접공 A Welter of Language (Vietnam), 2023, 가죽, 책판, 스미나가시, 음각, 판화, 포토그라비어, 레터프레스, 핫 스탬핑, 스크린 인쇄, 레이저 커팅, 마사지에 콜라주, (닫았을 때) 36.8 x 18.8 x 2.5 cm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태미 응우옌(Tammy Nguyen), 언어의 용접공 A Welter of Language (Vietnam), 2023, 가죽, 책판, 스미나가시, 음각, 판화, 포토그라비어, 레터프레스, 핫 스탬핑, 스크린 인쇄, 레이저 커팅, 마사지에 콜라주, (닫았을 때) 36.8 x 18.8 x 2.5 cm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후속 전시는 오는 2024년(‘연옥편’, 리만머핀 런던)과 2025년(‘천국편’, 리만머핀 뉴욕)까지 이어진다. 요즘 작가는 화석을 연구 중이라고 한다. 뚜렷해지는 신냉전의 기류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고, 차기작에 반영할 구상도 하고 있다. 오는 가을 미국 보스턴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서울 전시는 5월6일까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