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10년만 생산직 400명 공채 진행 중
나이·전공·성별 등 따지지 않는 '무(無)스펙' 전형
노조 ‘2023년엔 달라져야 한다’ 기자회견
400명 전원 여성 채용해도 생산직 여성 비율 3.5%
여성들 ‘안 될 것 알지만’ 자기 삶과 자아실현 위해 지원
‘글로벌 스탠다드’ 비춰보면 “현대차, 기업 경영 위기 상황”

29일 오전11시 서울 중구에 위치한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현대차 기술직부문 여성채용 0명, 2023년엔 달라져야 한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수진 기자
29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현대차 기술직부문 여성채용 0명, 2023년엔 달라져야 한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수진 기자

현대자동차가 10년 만에 진행 중인 기술직(생산직) 공개채용에서 여성을 뽑을까. 노동조합 등은 “사측이 채용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29일 오전11시 서울 중구에 위치한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현대차 기술직부문 여성채용 0명, 2023년엔 달라져야 한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현대차 생산직은 '연봉 1억'(2021년 기준 9600만원)에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이라는 점에서 양질의 일자리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래 생산직 공채에서 단 한 번도 여성을 뽑은 적 없다. 이에 최근 10년 만에 생산직 신입사원 채용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총 400명을 뽑는 이번 현대차 생산직 공채 지원자격은 고등학교 졸업 이상으로 연령, 성별 제한이 없다. 업계에서는 약 10만명이 지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는 3월 말 서류 합격자를 발표한다.  

금속노조 권수정 부위원장은 여는 발언을 통해 “현대차는 처음 공장 설계 시에도 남성 기준으로 설계했다. 식당, 청소만 여성 노동자 일할 수 있다는 전제로 설계됐고 여성 화장실도 없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제조업 전체가 이런 구조로 운영돼왔다. 올해 현대차는 기술직 400명을 신규 채용한다. 계산해봤는데 400명 다 채용돼도 여성은 기술직 전체의 3.5%밖에 되지 않는다”며 “현대차 미국 엘라배마 공장은 여성 비율이 36%라고 한다. 제가 정년퇴직이 10년 정도 남았는데 그 전에 현대차 울산 공장이 현대차 엘라배마 공장처럼 36% 정도 비율의 여성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이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채 400명 모두 여성으로 채용해도 전체의 3.5%
현대차 미국 엘라배마 공장의 여성 노동자는 36%

ⓒ이수진 기자
29일 오전11시 서울 중구에 위치한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현대차 기술직부문 여성채용 0명, 2023년엔 달라져야 한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수진 기자

금속노조 김은주 현대차지부 여성문화실장은 “법 뛰어넘는 얘기는 하지 않겠다. '대한민국 헌법 평등 이념에 따른 남녀고용평등법을 준수하라' 이것 하나만 이야기하고자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현대차 생산공장에는 500여명의 기술직 여성 노동자가 자동차 조립, 검사, 수정 등의 생산 현장 곳곳에서 일하고 있다. 2% 소수에 불과하지만, 현장에는 분명하게 여성 노동자가 존재하고 있다. 별도로 분리돼 일하거나 특수 공정에 배치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여성도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자격이 있다. 이는 지금 현장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현대차 여성 노동자들이 증명해 내고 있다. 채용 과정에는 어떠한 성차별도 발생하지 않아야 하며 사측은 반드시 성평등에 입각한 채용을 해야 한다. 더 이상 사측은 남성 중심의 현장 문화를 그대로 방관하고 여성 노동자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창사 이래 생산직 공채에서 단 한 번도 여성을 뽑은 적 없었던 현대차. 과연 여성들은 이번 채용에 지원하면서 어떤 심정이었을까.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레나 연대사업국장은 “이번 현대차 공개채용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적인 소식일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여성 취준생, 이직 여성 커뮤니티 반응은 달랐다. ‘여자라서 뽑히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로 가득했다. 현대차가 (생산직 공채에서) 직접 고용으로 여성 노동자 뽑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여성은 힘든 일 하기 싫어한다’ ‘여성이 일할 수 없는 환경이다’ 등 성차별적 편견을 가지고 여성을 바라봤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 지원자들은 자신이 여성이라 떨어질 걸 예상하면서도, 자기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노동하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 지원했다. 한 여성 노동자는 ‘로또 사는 기분’이라고 했다. 안 될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 써보자고 한 것이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현대차 여성 직원 단 2%p 증가
여성 직원 50% 되려면 210년 걸려

29일 오전11시 서울 중구에 위치한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현대차 기술직부문 여성채용 0명, 2023년엔 달라져야 한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노조가 현대차에 성차별 대상을 수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수진 기자
29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현대차 기술직부문 여성채용 0명, 2023년엔 달라져야 한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노조가 현대차에 성차별 대상을 수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수진 기자

현대차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기업 경영 전반에 내세우고 있다. 과연 이런 성차별적 일터 상황이 그 기준에 부합할까.

금속노조 법률원 박다혜 변호사는 “여성이 싫어서 안 뽑았다 해야만 차별인 건 아니다. 공시된 현대차 기업 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여성 직원 비율이 6.3%인데 2012년 4.3%였다. 10년 동안 2%포인트(p) 증가다. 이런 속도라면 여성노동자가 전체에 절반이 되려면 210년이 더 걸린다. 형평성 포용성과 인권의 맥락에서 젠더 이슈를 중시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사정에 비춰 보더라도 지금의 현대차는 기업 경영 위기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리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직의 구성이 조직 가치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차가 평등의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지는 젊은 여성 노동자들과 셀카를 찍는 기업 총수의 소탈한 모습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제 얼마나 많은 여성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만날 수 있는 지에서 시작한다. 너무 늦었지만, 올해부터라도 모두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것만이 낡고 반헌법적인 현실을 시정하는 길임을 현대차가 똑똑히 인식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이날 △정부와 기업이 채용에서 퇴직까지 생애주기에서 성차별 요인을 제거하고, △정부가 민간부문에서도 성별근로공시제도를 의무화할 것, △현대차가 이번 기술직 채용에 있어 기준, 응시자 성비를 공개하고, △남성 중심적 현장 환경을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구직자·근로자들에게 성차별적 면접, 채용, 노동환경을 적극 감시·고발해 달라고 당부했다.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카카오톡 오픈채팅방(pf.kakao.com/_adxbcb)이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에 채용 과정에서 겪은 성차별 사례를 제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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