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AP/뉴시스]26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사법 개혁 반대 시위대가 고속도로를 막고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텔아비브=AP/뉴시스]26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사법 개혁 반대 시위대가 고속도로를 막고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전 국민적 반발을 사법부 무력화 입법을 다음 회기까지 미루기로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그러나 사법부 무력화 법안에 대한 의지를 꺾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네타냐후 총리는 사법개편안 입법을 중단하라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조언을 단칼에 거절했다.

사법부 무력화 반대 시위가 이스라엘 전역에서 대규모로 진행된데 이어 우파 단체들은 사법개혁 찬성 시위를 벌이는 등 사법개혁을 둘러싸고 이스라엘이 큰 혼란에 빠졌다.

◆네타냐후 사법개혁은 '사법부 무력화'

네타냐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법 개혁안의 핵심은 국회의 대법원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 확보다.

이스라엘에서 대법원은 국회의원과 총리를 견제하는 유일한 기관이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져 왔지만 이번 개혁안에는 대법관 임명권을 사실상 정부에 위임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에는 대법관 추천위원회를 내각 추천 2명, 대법원 추천 3명, 크네세트(의회) 추천 2명, 변협 추천 2명 등으로 구성돼 법조계의 의지가 반영됐다.

이번 개혁안에는 내각 추천 3명, 대법원 추천 3명, 크네세트 추천 3명(야당의원 1명 포함)으로 간단하게 만들고 변협 몫인 2명을 폐지, 내각과 여당이 최소 5 대 4의 비율로 사법부 인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네타냐후 정부는 사법 개혁을 통해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과 대법원 간 권력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법조계와 야당은 해당 법안이 사법부 독립성을 침해, 3권 분립에 대한 개입이라고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입법 연기 동의 대가...안보장관의 사병 논란

벤-그비르 이스라엘 안보장관 ⓒ이스라엘의 힘(otzma yehudit) 트위터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토안보장관 ⓒ이스라엘의 힘(otzma yehudit) 트위터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사법부 무력화 입법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하기 전날 벤-그비르 장관을 만나 입법 연기 선언을 용인하는 대가로 '국가 경호대'(National Guard) 설립 추진을 약속했다고 이스라엘 언론이 보도했다.

그비르 장관은 이스라엘 집권 연정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으로 네타냐후 총리가 입법을 멈추면 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인물이다.

벤-그비르 장관은 이틀만인 29일(현지시각) 경호대 설립 계획과 일정을 발표했다.

이 조직은 2천명가량의 군 복무 대상자로 구성되며 지휘권은 국가안보장관에게 있다.

이 계획에는 이 조직이 '민족주의자 범죄'(nationalist crimes) 및 테러 대응 및 필요한 지역에서의 통치권 강화'에 동원될 예정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내각이 이 안을 채택하면 총리실, 국방부, 법무부, 재무부, 경찰과 군이 참여하는 경호대 설립 위원회가 꾸려지고, 이 위원회가 경호대의 활동 범위와 지휘 체계, 관련 예산 등의 밑그림을 그린다.

이 과정에서 현재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 성지 등에서 질서유지 활동을 하는 국경 경찰의 기능 일부를 경호대에 넘기는 방안도 검토된다.

이후에는 벤-그비르 장관이 위원회의 결정 사항을 토대로 경호대 설립을 위한 입법 절차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경호대가 벤-그비르 장관의 사병 조직처럼 움직이며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에서 정착촌 운동가들을 지원하거나, 반정부 시위를 탄압하는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네타냐후-바이든, 서리발 같은 대화 주고 받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AP통신은 지난 29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릿발 같은 대화(frosty words)를 나눴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화요일 이스라엘 총리가 사법개혁과 관련해 어떻게 하기를 바라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거기서 떠날 것을 바란다"라고 답했다.

바이든은 네타냐후 정부가 "이 길을 계속할 수 없다"라며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타협을 촉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우리일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라고 맞받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우리는 주권국가이며 우리 결정은 외국의 압력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의지로 결정한다"라고 말했다.

AP는 두 지도자의 설전은 동맹국 사이의 드문 공개적 의견 불일치였으며 대규모 시위 후 연기한 네타냐후의 사법부 개혁과 관련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마찰을 키우는 신호였다고 보도했다.

◆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의 반기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부 무력화' 법안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뒤 경질된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 ⓒ갈란트 트위터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부 무력화' 법안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뒤 경질된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 ⓒ갈란트 트위터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25일 생중계된 TV 연설을 통해 연립정부가 추진하는 ‘사법 조정안’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갈란트 장관은 “우리 사법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한 것은 맞는다”면서 “하지만 중요한 변화는 대화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며 현재 진행 중인 입법 절차는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11주 넘게 이어지는 사법부 무력화 반대 시위에 대해 “현재 내가 목격하는 (시위대의) 강렬한 분노와 고통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며 “사회 분열이 군 내부까지 퍼졌다. 국가안보에 즉각적이고 실재하는 위험이다. 나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다음날 갈란트 장관을 해임했다.

갈란트 장관은 군인 출신으로 2008년 ‘가자전쟁’을 지휘했다. 정계에 입문한 이후로는 건설장관과 교육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해 국방장관에 임명됐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여당인 리쿠드당 소속 의원이다. 이스라엘군 남부 사령관 출신인 갈란트는 여권의 사법 정비 입법에 대한 예비군의 반발이 커지고 현역 군인들까지 동요하자, 네타냐후 총리에게 우려의 뜻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임 통보를 받은 갈란트는 트위터에 "이스라엘의 안보는 내 인색의 목표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갈란트 장관을 해임한 것은 훈련 및 복부 거부 선언을 한 예비군들에게 강경대응 하지 않은 것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 순수성 의심 받는 네타냐후...끊이지 않는 뇌물 의혹

밴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트위터
밴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트위터

이스라엘 최장수 집권자인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 뿐만아니라 부인도 끊임없는 뇌물수수 의혹을 받았다.

BBC는 네타냐후 총리가 뇌물, 사기, 배임 등 적어도 4건의 혐의를 받고 있으며 이 중 한 건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는 2011부터 2016년까지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 등으로부터 26만4000달러(약 3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2014년에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신문 중 하나인 예디오트 아하로노트의 발행인 아르논 모제스와 부적절한 거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통신재벌 샤울 엘로비치라와 그의 아내가 자신들의 사업이 방해받지 않기를 바란다며 네타냐후와 그의 가족에게 특혜를 줬다고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BBC는 네타냐후 총리의 뇌물 혐의 등에 대한 수사는 2016년에 시작됐다고 전했다. 당국은 총리가 물질적으로나 무형적으로 선물을 받는 대가로 부유한 사업가들에게 관행적으로 특혜를 줬다고 보고있다.

경찰은 지난 2018년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기소 의견을 냈으며 검찰은 지난 2019년 11월 기소했다. 네타냐후에 대한 재판은 2020년 5월 시작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말 총리로 취임했다.

네타냐후는 부패 재판에서 법적 절차를 뒤집기 위해 권한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의 사법부 무력화 추진은 자신의 뇌물 의혹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 이스라엘 의회 '네타냐후 방탄법' 개정

이스라엘 의회 ⓒ이스라엘 의회 홈페이지
이스라엘 의회 ⓒ이스라엘 의회 홈페이지

이스라엘 의회는 지난 24일(현지시각) 현직 총리의 직무 부적합 결정 방식 등을 제한하는 '정부조직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야당은 16시간 동안 쉬지 않고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이어갔지만 재적 120명 의원 중 '찬성 61명, 반대 47명'으로 의회를 통과했다. 

이번 법안은 현직 총리의 낙마 혹은 사퇴 여부에 외부 변수의 개입을 최대한 막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우선 총리에 대한 직무 부적합성 심사는 '정신·육체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만 가능토록 했다. 형사 소추나 유죄 판결이 나와도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용 항목을 최소화했다.

'부적합 결정'도 매우 힘들도록 했다. 총리의 자진 사퇴가 아니라면, 각료의 3분의 2 이상이 부적합 판정을 내려야만 하는데, 이마저도 총리가 각료 투표 결과를 거부하면 의회로 공이 넘어간다. 전체 의원(120명)의 '3분의 2'(80명) 이상이 찬성해야만 부적합 결정이 확정된다.

심지어 기존에 있던 총리 권력 견제 수단은 아예 사라졌다. 대법원의 총리 탄핵 판결, 검찰총장의 총리 직무 부적합 결정권 등을 규정한 조항이 개정안에서 빠졌다.

메라브 미카엘리 노동당 대표는 "순전히 네타냐후를 감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 만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알자지라 등 외신들도 "권력으로부터 총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표현했다. 

◆ 둘로 나뉜 이스라엘 

이스라엘 우익 단체들이 30일(현지시각) 사법개혁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Im Tirtzu 트위터
이스라엘 우익 단체들이 30일(현지시각) 사법개혁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Im Tirtzu 트위터

이스라엘 우익단체 수백명은 30일(현지시각) 저녁 텔아비브에서 사법개혁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예루살렘 포스트에 따르면 이스라엘 경찰은 이날 오후 8시 30분쯤 친 사법개혁 단체가 시위를 벌인 키부츠 갈루아이오 나들목에서 하샬롬 나들목까지 북행하는 아얄론 고속도로를 통제했다. 통제는 90분뒤에 풀렸다. 

경찰은 시위자 2명을 체포했다. 

리쿠드와 임 티르즈 단체가 조직한 시위대는 전국에서 버스를 타고 몰려와 '자유 행진'을 했다.

우익단체들은 지난 월요일에 예루살렘의 크네세트(의회) 앞에서 열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벤-그비르 장관 국토안보부 장관은 트위터에 "오늘 우리는 침묵하는 것을 그만둡니다. 오늘은 우파가 깨어나는 날입니다"라며 우파의 시위를 독려했다.

CNN에 따르면 반 사법개혁 시위 주최측은 이 법안이 중단될 때까지 시위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11월 선거에서 개혁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유권자들로부터 위임을 받았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개혁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스라엘 노동조합 히스타드루트는 월요일 네타냐후에게 사법 개혁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항만과 공항, 소매업 종사자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야르 라피드 전 이스라엘 총리는 네타냐후에게 갈란트 국방방관 해고 결정을 번복할 것을 촉구하고, 이스라엘 정부에 사법개혁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브레이크도 없고 경계도 없는 극단주의자들에게 인질로 잡혔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전에 야당 정치인들이 협상을 위해 그를 만날 것을 요구했는데, 그들은 입법 절차가 중단되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부 무력화를 저지하기 위한 시위대의 시위는 수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시위대는 이스라엘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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