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징 솔로』 저자 김희경
‘정상가족’ 구성하지 않은 ‘비혼 중년 여성’ 조명
한국 사회에 비혼·비출산 중년 여성은 ‘없는 존재’
비혼은 평생 혼자 살고 외롭다는 오해·편견 있지만
관계망 만들어 대처, 큰 문제로 외로움 꼽는 사람 없어
노년기 돌봄, 여성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질 문제
“가족에서 개인 중심으로 복지 제도 변해야”

김희경 강원대 객원교수 ⓒ홍수형 기자
『에이징 솔로』 저자 김희경씨. ⓒ홍수형 기자

“혼자 살다가 늙고 병들면 누가 돌봐주지?” 비혼 비출산으로 평생 혼자 살아야 한다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고민이다. “혼자 살면 외롭다”며 사람들도 한마디씩 거든다. 그래서인지 ’괜찮은’ 비혼 중년의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서 비혼으로 ’꽤 잘’ 살아온 선배들이 있다면 어떨까. 신간 『에이징 솔로』(Aging Solo)에서 비혼 중년들의 생각보다 괜찮은 삶과 앞으로 우리 사회가 해결해 나가야할 과제를 조명한 저자 김희경씨를 7일 여성신문 사무실에서 만났다.

- 『이상한 정상가족』에서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불러오는 여러 문제점을 짚었다. 그다음으로 중년 비혼 여성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이상한 정상가족』은 가족 내 소수자인 아동의 입장에서 가족 문제를 바라보자는 취지의 책이었다면, 이 책도 어쩌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불러오는 제반 문제에 대한 관심이 확장돼서 쓰게 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가족을 구성하지 않았다고 간주되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협소한 우리나라 가족 제도의 문제점을 생각하면서 쓴 책이다. 그래서 저 자신에게는 주제가 바뀌었다기보다는 지속되는 관심의 연장 이런 느낌이다.”

- 22명이라는 꽤 많은 인터뷰이를 만났다. 이들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섭외 과정에서 고려했던 점은.

“제 주변에서 찾으면 풀(pool)이 한정될 것 같아서 잘 모르는 분한테 한번 섭외를 부탁드렸고, 한 분을 만나서 그분한테 아는 사람 (소개를) 부탁드리다 보니 또 수도권 위주길래, 건너 건너 아는 지인한테 경남 지역도 부탁드리고 해서 폭을 넓히려고 제 딴에는 노력했는데 보시다시피 서울 수도권에 더 많다. 근데 중년 여성 1인 가구가 (통계적으로) 서울 수도권에 많기는 하다. 소득층도 고소득은 좀 피하려고 했고, 3분의 1 정도는 (월수입 200만원 이하인) 저소득층이다.”

- 2019년 여가부 차관을 지냈다. 당시 ‘비혼 중년’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겪었던 어려움은.

“비혼 중년이기 때문에 일이 어려워진 건 없었다. 그런데 책 서문에 썼듯이 국회의원들 인사를 다니고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때문에 설명드리는 일을 해야 하는데, 상대가 비혼 중년이라는 상상을 그분들도 못 하시는 거다. 그래서 너무 자연스럽게 ‘애는 졸업했어요?’ 이렇게 물어보고. 어떤 한 고위 공무원은 ‘가족을 구성하지 않은 사람들은 극단적이다’고 험담하다가 나중에 제가 지적하니까 놀라면서 쩔쩔매며 사과한 적도 있고. 비혼 중년 여성은 이 사람들한테는 없는 존재구나, 상대가 비혼 비출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예 못 하는구나 그런 걸 느끼는 계기들은 많았다. 이게 내 정체성의 매우 큰 부분이라는 생각이 그때 일하면서 들었다.”

- 고위 공무원 중에 비혼 비출산인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도 문제 같은데.

“기본적으로 여성 자체가 별로 없다. 정부만 그런 게 아니고 기업 CEO들이나 학계도 그나마 유리천장을 간신히 뚫은 사람 중 비혼은 별로 없다. 흔히들 결혼 안 하고 아이를 안 낳았다고 하면 ‘일과 결혼했다’는 얘길 많이 하는데, 실제 유리천장 뚫은 사람을 보면 기혼 유자녀가 더 많다. 미국에서도 그렇다. 미국 MBA 출신 졸업생들을 쭉 추적해보니까 비혼인 여성들이 오히려 직장에서 불이익을 겪는다는 거다. 지나치게 남성적이라고 평가를 받거나, 흔히들 ‘모성’에 기반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잘 돌보는 걸 ‘여성적 리더십’이라고 하잖나. 그런데 비혼 비출산은 그게 없다고 보는 거다.”

김희경 강원대 객원교수 ⓒ홍수형 기자
김희경 『에이징 솔로』 저자 ⓒ홍수형 기자

- 비혼 공동체의 장점으로 ‘돌봄의 분담’이 꼽힌다. 이에 대한 의견은.

“생활공동체의 장점으로 전주시 1인가구 네트워크 ‘비비(비혼들의비행)’에 계신 분이 비슷한 말씀을 했다. 생활 공동체는 1대 1이 아니라 1대 다의 돌봄이 가능하다. 돌봐주는 사람도 부담이 줄고, 받는 사람도 한 사람이 오롯이 해주면 미안하고 폐 끼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받는 자로서의 무력감이나 내가 한 사람에게만 의지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 같은 게 줄어들 수 있다.”

-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를 맞은 일본에서는 나이 든 부모를 간병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돌봄에 지쳐 장례를 치를 여력도 없이 시체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례 등이 알려지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예방을 위해 우리 사회에 어떤 정책이 필요할지.

“돌봄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여성이 맡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에 남녀 모두 해야 하는 일로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거다. 지금은 (주 69시간제 개정 등) 자꾸 일을 더 하라고 하는데 일하다가 돌봄을 하고 다시 일로 돌아가도 불이익을 안 받을 수 있어야 하고, 내가 일하다가 필요한 돌봄 시간을 일상적으로 충분히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식으로 우리 사회 노동 구조 전체가 바뀌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될 것 같다. 지금은 좀 암담하다.”

- 중년 비혼 여성으로써 오해받는 부분 중 가장 바로잡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솔로는 혼자 살지 않는다’는 말을 썼는데, 제가 이 책을 쓰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게 바로 그런 점이다. 솔로라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오롯이 혼자서만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결혼하지 않고 자녀를 출산하지 않았다 뿐이지, 자기가 의지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도 있는 관계망을 주변에 어떤 방식으로든 다 만들려고 한다는 점이 굉장히 신선했다. 그리고 ‘외로움’의 문제가 자기 삶의 큰 이슈인 사람이 없었다. 조사를 봐도 오히려 젊을수록, 남성일수록 많이 외롭지, 관계망을 만드는 데 적극적인 여성들은 외로움의 문제에 잘 대처하고 있었다. 그래서 외로움이 혼자 사는 것에 굉장히 큰 문제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가장 바로잡고 싶다).”

김희경 강원대 객원교수 ⓒ홍수형 기자
김희경 『에이징 솔로』 저자 ⓒ홍수형 기자

-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요즘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취미는.

“아마추어 극단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저는 그동안 공무원을 했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활동을 못 하고 조명 도와주고 하다가 공무원 그만두고 연기를 같이 (하고 있다). 다 자기 생업이 따로 있어서 지지부진한데 재밌다.”

- 다른 중년 비혼에게도 추천하는지.

“연극을 하고 싶은 게 로망인데 무대 공포증 때문에 못 하겠다, 허들이 높아서 못 할 것 같다, 나이 들어서 건망증이 심해져서 대사 암기를 못 할 것 같다(는 걱정이 많은데), 제가 해보니 대사 외우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외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가 훌륭한 직업 배우를 상상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용기내도 된다). 내가 살아보지 않았던 삶의 감정을 한번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거니까.”

- 앞으로 어떤 문제에 관심을 두고 싶은지.

“사회 기본 단위가 가족이 아니라 개인일 수밖에 없는 사회로 가고 있는데 복지제도는 그렇지 않다. 근데 이게 어떻게 하면 가능한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북유럽처럼 개인을 중심으로 한 복지 사회로 가려면 혁명적 변화가 필요할 것 같기는 한데, 부분적으로 도입하고 바꿔 가는 건 (가능할 것 같다). 예를 들면, 지금 가족돌봄 휴가가 법적인 가족을 돌보는 것에만 한정돼 있다. 이걸 같이 살고 있는 나의 친밀한 타인을 위해서도 쓸 수 있도록 열어주는 게 사회적으로도 비용 효율적이기도 하고 정부로서도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 비혼 후배와 동지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

“‘불안해하지 마라.’ 저도 책 쓰기 전에 되게 불안했다. 어쩌면 제가 불안해서 책을 쓰게 된 거기도 한데. ‘나이 들면 나를 누가 돌봐주지’ 이런 불안감은 지금도 딱히 뾰족한 대안이 없는 건 마찬가지이기는 한데, 사람들 만나면서 불안이 굉장히 묽어졌다. ‘비비’ ‘노루목향기’를 보면서 각자 자기 상황에서 찾아지는 해법들이 있구나 (싶었다). 주변에 관계를 계속 만들면서 문제를 해결해가다 보면 (불안은) 다 사라진다.”

『에이징 솔로』(김희경 지음/동아시아 펴냄) ⓒ동아시아
『에이징 솔로』(김희경 지음/동아시아 펴냄) ⓒ동아시아

저자 김희경은 1967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전북대사대부고와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로욜라메리마운트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동아일보 차장, 한국세이브더칠드런 사업본부장,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이사를 역임했다. 2018년 문체부 차관보, 2019년 여가부 차관을 지냈다. 현재 강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문화인류학과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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