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랑 산다]
챗GPT 필두로
편리한 의사결정 돕는 기술 줄이어
노년층 등 ‘기술 약자’엔 공포로 다가와
소외되지 않도록 안전망 확충해야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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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곳곳이 지뢰밭이다. 남이 건네는 판촉 행사물 같은 음료에는 섭취하면 안 될 약물이 투입돼 있고,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으면 십중팔구 보이스피싱이나 스팸 전화다. 문자로 온 URL은 자칫 잘못 누르면 범죄에 연루될 것만 같다. 택배사 번호로 온, 배송 상황 웹사이트 연결 주소가 담긴 문자를 본 나의 어머니는, 이것이 과연 진짜일지 아닐지 한참을 고심하다 자식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진위는 아무래도 젊은 너희들이 더 잘 알겠지’ 싶었다는 것이다. 요새는 공공기관을 사칭한 피싱 웹사이트도 넘쳐서, 서류 확인할 일이 있으면 차라리 품을 들여 주민센터에 직접 간다는 어르신들도 많다. 젊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둔해진 감각 탓에, 뭐라도 하나 자칫 잘못 눌러 크게 피해를 볼까 노심초사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쌓아온 경험과 지혜, 노하우가, 현재의 기술 발전 앞에선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탓도 클 것이다. 

기술은 프로세스의 많은 단계를 생략하고 자동화한다. 편의와 효율의 관점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은 특히 사람의 말로부터 의도와 문맥을 알아차리는데 능하다. 따라서 반복적이고 번거로운 과정을 줄이고 결과물이나 결정에 대한 의견만 마지막에 던져주도록 설계되고 있다. 

최근 나온 챗GPT(ChatGPT) 플러그인이 내세운 데모가 대표적이다. 여행 사이트나 레스토랑 추천 서비스에 연결만 해두면, 내가 원하는 조건의 여행 일정과 레스토랑 메뉴를 적당히 잘 뽑아서 제안한다. 기존에는 직접 웹사이트를 골라 들어가서, 시간과 위치와 가격을 따져 최종 선택을 해야 했던 모든 과정을 줄글 한 마디 쓰고 엔터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해결한다. 여기에 어댑트(Adept)나 오토GPT(AutoGPT) 같은 사례들은, 아예 마지막에 ‘확인’용 클릭만 하면 되는 상태까지 사람들을 끌고 간다. 철도의 발명으로 공간이 사라지고 시간만 남았다는 말처럼, AI 서비스는 모든 검색과 탐색의 공간을 삭제하고 잉여 시간을 더욱 부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차근차근 과정을 설명해 가며, 느슨하고 침착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디자인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하다챗GPT로 인해 많은 이들의 AI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분석이 이어지지만, 상대적 약자들이 그 그룹에 포함되는지는 살펴봐야 한다. 챗GPT 화면에 로그인하고, 프롬프트에 문장을 쓰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무척 단순한 작업이다. 하지만 데스크톱 컴퓨터 앞에 앉는 것부터가 낯설거나 어려운 이들도 분명히 있다. 더구나 PC보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챗GPT를 써보는 것도 쉽지 않다. 시력 저하를 겪는 이들, 난독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문장 쓰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기술 개발 시 ‘일반적인 사용자’로 고려되지 못하고 ‘상상되지 못한’ 이들이 기술로부터 밀려난다. 마치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하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AI 기술은 사회 전반의 효율을 높이고 생산을 늘릴 수 있다. 산업적인 측면만 봐도 AI 기술의 파급력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소외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시민사회 곳곳에서 기술을 감시하고, 약자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창구들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민간정책연구소 Lab2050이 시민사회 전반의 AI 리터러시를 높이겠다는 목표로, 본격적으로 사회 곳곳에서 AI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자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기술개발을 주도하는 테크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미처 고려하지 못한 지점들을 짚을 수 있다. 

모두가 급변하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없고, 적응이 느리다는 이유로 피해를 봐선 안 된다. 뭔가를 클릭해도 위험하지 않고, AI의 제안으로 도달한 웹사이트가 나쁘지 않은 곳임을 충분히 보장할 안전망이 필요하다. 약자의 시선을 잘 아는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까딱 잘못하면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소셜임팩트 벤처캐피털 옐로우독에서 AI펠로우로 일하고 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주로 인공지능 기술과 인간이 함께 협력해가는 모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AI랑 산다>는 장밋빛으로 가득한 AI 세상에서, 잠시 ‘돌려보기’ 버튼을 눌러보는 코너다. AI 기술의 잘못된 설계를 꼬집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AI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이들과, 그리고 그 기술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짚어 본다.

① 인공지능이 나에게 거리두기를 한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379

②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인간은 바빠야 한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310

③ 인간이 AI보다 한 수 앞서야 하는 이유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353

④ AI에게 추앙받는 사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684

⑤ 메타버스서 공포증 극복·명품 쇼핑...‘비바 테크놀로지 2022’ 참관기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824

⑥ 월경·난자 냉동... 79조 펨테크 시장 더 커진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5977

⑦ 사람을 살리는 AI 솔루션이 필요하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7124

⑧ 이상행동 탐지·채팅앱 신고...AI로 스토킹 막으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068

⑨ 일하다 죽지 않게 만들 기술이 필요하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998
⑩ ‘AI 예술가’는 이미 현실, 이제 창작자들이 연대해야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928
⑪ 요즘 대세 ‘챗GPT’ 이후의 AI는 어떻게 진화할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0850

⑫ ‘박사학위자의 결혼 조건은?’ 챗GPT에 물어보니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1690

⑬ 편견·차별 없는 AI 만들려면? 챗GPT가 던진 질문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3074

⑭ 막 오른 빅테크 AI 대전...사람은 어떻게 일해야 할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4139

⑮ AI 시대, 밀려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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