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 주민 등으로 구성된 '사포마을 골프장 건설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2일 오전 전남도청 앞에서 '지리산골프장 추진 중단 촉구·감사청구'기자회견을 열고 골프장 건립 반대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전남 구례 주민 등으로 구성된 '사포마을 골프장 건설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2일 오전 전남도청 앞에서 '지리산골프장 추진 중단 촉구·감사청구'기자회견을 열고 골프장 건립 반대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여기가 정녕 숲이었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설령 내가 다람쥐의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딱따구리의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그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떠난 뒤였으니까. 온갖 생명이 살던 나무들은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수천수만 그루 아름드리가 무참히 뽑혀 쓰러져 있었다. 울창한 숲이었던 그 자리는, 지리산골프장 예정지였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숲이야 좀 줄어들더라도 온천 손님도 없는데 골프장 생기면 관광객도 늘고 지역 경제 살겠지.” 골프장이 생기기를 바라는 몇몇은 이런 생각으로 제 입보다 큰 알사탕을 먹고 싶어 침을 흘렸다. 얼마나 대단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가져오길래 45만 평 지리산 기슭을 밀어내도 괜찮고, 무수한 농약으로 다랑논과 섬진강을 더럽혀도 괜찮다는 걸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좀 찜찜한 것들은 굳이 들춰내지 말라고 하는 이들은 그 ‘좋은 것’을 위해 무엇까지 내어 줄 수 있을까? 자기 집이었다면, 자기 가족이었다면, 자기 목숨이었다면 그렇게 쉽게 타협할 수 있을까. “숲을 파헤쳐도 골프장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무수히 죽어 나가야 할 ‘작은 것들’이 내동댕이쳐지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그런 죽음을 개의치 않는 이들일 터. “인생은 돈벌이”쯤으로 생각하는 이 자들의 눈엔 벗겨진 숲이 보이지 않는다.

작은 것들의 희생을 눈감는 자들에게 맞서 온 한 사람이 생각났다. 아룬다티 로이. 에세이 <9월이여, 오라> <자본주의:유령이야기>,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을 쓴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 정부, 기업, 정치인, 연구기관 심지어 환경단체까지 엮인 거대한 부정부패와 댐을 둘러싼 카르텔을 신랄히 까발려 온 지구 시민이다.

그는 큰 것을 따르려는 자들을 비판한다. 처자식을 때리는 가부장과, 카스트 제도를 질서라고 생각하는 계급주의자들과,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종교인들과, 계급제 타파 구호를 외치지만 스스로는 철저히 계급제를 따르는 선동가들과, 민중의 고통보다는 자기 밥그릇에만 열중하는 권력자들을 아룬다티 로이는 ‘명확한 입장과 분명한 관점’으로 고발한다.

생명이 이윤이고 이윤이 곧 생명인 자들에 맞서 아룬다티 로이는 눈을 뜨라고 한다. “우리가 스위치를 켜서 불을 밝히고, 냉방을 하고, 목욕을 즐길 수 있도록, 누군가가, 먼 곳에서, 어떤 희생을 치르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기쁘게 저항하자고 한다. “만약 우리가 햄버거를 먹고, 다이아몬드를 사고, 롤스로이스를 타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면, 우리는 이것이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고, 최대한 행복한 모습으로 말하는” 페미니즘적 투쟁을 이어가자 한다.

그러니 이 존경스러운 지구 벗을 따라 나 역시 행복한 모습으로, 절망하지 않은 얼굴로, 말하고 싶다. 숲, 강, 논, 들, 마을을 부숴서라도 골프장을 놓아야 행복할 거라는 생각은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고. 좋은 게 좋은 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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