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미라 치유하는 글쓰기 연구소 대표
‘여성을 위한 자서전 쓰기’ 이끌고
워크북 『이츠 마이 라이프』 펴내
“인생 교훈, 내 삶 속에 있어”

박미라 치유하는 글쓰기 연구소 대표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연구소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박미라 치유하는 글쓰기 연구소 대표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연구소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60대에 자서전을 쓴 여성들이 있다. 신선기 작가는 노인요양시설 원장이다. 삼남매 중 장녀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장 노릇을 했다. 사남매를 낳아 키운 후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30여 년간 일한 노인요양복지 현장, 사랑하는 가족·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낙관적인 글로 풀어 썼다. 지난해 펴낸 책 『나는 날마다 즐겁다』(바른북스)다.

60대 ‘늘소’도 자서전을 쓰는 중이다.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서울에 왔다. 20대였던 1980년대엔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야학, 공장, 감옥을 거치면서 고군분투했다. 30~50대엔 두 딸을 키우며 일하느라 바빴고, 60대에 접어들면서 글을 썼다. 다른 여성들과 함께 올 초 『우리들의 인생책』을 펴냈다.

모두 치유하는 글쓰기연구소(대표 박미라)에서 진행한 ‘여성을 위한 치유와 성장의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의 결실이다. 30여 년간 심리상담가, 마음 칼럼니스트, 치유하는 글쓰기 안내자로 살아온 박미라(59) 대표가 멘토를 맡는다. 올해도 30대~70대까지 다채로운 여성들이 저마다의 인생 역정을 글로 쓰고 있다.

자서전 쓰기 워크북 『IT’S MY LIFE 이츠 마이 라이프』(그래도봄)도 최근 펴냈다. 박미라 대표와 한경은 통합예술심리상담연구소 나루 대표가 함께 집필했다. 조금씩 내 이야기를 채우다 보면 어느새 책 한 권이 탄생한다. 삶의 큰 고비들,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 부모, 내가 만난 사람들, 내면의 어두움까지 돌아보고 기록하도록 이끈다. 유언장, 100세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쓰는 편지도 써 보자.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정리하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시간이다. ‘셀프 선물’로도 좋고, 부모나 친지, 존경하는 분께 선물하기에도 좋다.

자서전 쓰기 워크북 『IT’S MY LIFE 이츠 마이 라이프』(박미라·한경은, 그래도봄) ⓒ그래도봄
자서전 쓰기 워크북 『IT’S MY LIFE 이츠 마이 라이프』(박미라·한경은, 그래도봄) ⓒ그래도봄

“다들 트라우마도 많고, 한 장 한 장 힘들게 쓰시면서도 인생 연표를 완성하고 나면 우셨대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네,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진 존재구나! 감격의 눈물이죠.”

영화 같은 삶, 세상엔 너무나 많다. 조명받지 못했지만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산 여성들이 너무나 많다. 박 대표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성공 스토리’만이 아니라 굴곡진 삶, 작은 이야기들이 조명받기를 바라요. 숨은 여성사를 발굴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박미라 대표의 책을 읽고 자극을 받은 한 여성은 틈틈이 메모, 편지 등을 썼다. 딸이 그 기록을 하나하나 타이핑해 책을 펴냈다(이영승, 『영승씨의 마음기록』) “여자들에겐 자기 삶을 이야기로 풀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자서전 쓰기는 내 인생의 과실을 수확하는 일이에요. 내 인생 참 지리멸렬하고 평범하다는 분들도 많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삶이야말로 많은 교훈을 주지요.”

치유하는 글쓰기연구소(대표 박미라)에서 진행한 ‘여성을 위한 치유와 성장의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거쳐 세상에 나온 책들. ⓒ이세아 기자
치유하는 글쓰기연구소(대표 박미라)에서 진행한 ‘여성을 위한 치유와 성장의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거쳐 세상에 나온 책들. ⓒ이세아 기자
박미라 치유하는 글쓰기 연구소 대표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연구소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박미라 치유하는 글쓰기 연구소 대표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연구소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여성들의 글쓰기엔 공통점이 있다. 성폭력의 경험을 털어놓는 이가 많다. 부모의 정서적·육체적 학대를 고백하는 여성들도 종종 있다. “친족성폭력, 지속적인 폭력·학대 등 털어놓지 못한 폭력의 경험은 더 많을 것”이라고 박 대표는 말했다. 

“상상조차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들이 기적처럼 고통을 정리해 내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그런 과정을 지나온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던 사람보다 힘이 몇 배는 더 세요. 저는 그분들이 아픈 기억을 떠올릴 때 곁에서 들어주고 함께해 드리려고 해요.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상기하려고 해요. 그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 그분들이 누리는 행복이 더 단단하고 풍요로우리라고 확신해요.”

박 대표는 ‘거리두기’를 강조했다. 글쓰기 과정에서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러 장치를 마련했다. 강렬한 경험에 대해 기록한 후, ‘이 경험으로부터 나는 어떠한 감정을 느꼈다’고 정리하는 식이다. “인생 경험이 준 교훈, 의미를 객관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성찰하기가 너무 어렵거든요. 특히 폭력과 학대의 경험이 있는 분들은 그 ‘우물’에서 나오셔야 해요.”

나의 상처를 바라보고,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서로 연결될 때 고통은 비로소 치유로 돌아선다. “각자 말할 수 있는 만큼만, 터놓고 말해도 안전하다고 느낄 때 이야기하면 된다. 타인의 이야기를 많이 듣기만 해도 치유가 된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MBTI, 에니어그램 같은 성격 유형론의 유행도 긍정적으로 봤다. “어렵게만 느꼈던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그러다 보면 숨은 고통을 들여다볼 용기도 생기지요. 특정 유형론에 나를 꿰맞춰선 안 되겠지만요.”

‘마음공부’와는 거리가 먼 우리 공교육의 현실도 꼬집었다. “1020 세대는 생의 욕구, 생명력이 아주 강렬할 때잖아요. 경쟁에 뒤처지지 말라고만 압박하는 사회는 이들이 내면의 생명력을 다루지도 만끽하지도 못하게 해요. 그 대가가 너무나 커요. 잘 살다가도 어느 날 질투, 허무, 죽음에의 충동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글쓰기란 내 너저분한 속내를 들여다보고, 불안, 공허, 분노를 다루는 법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더 깊고 단단한 나를 만들어 가는 여정이다. “대학 시절 자신의 미래 목표를 글로 써 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수입이나 인생의 만족도가 더 높다는 미국 연구진의 분석도 있어요. 살다가 좌절하면 또 어때요. 다시 글 쓰면서 성찰하고, 다시 힘을 얻어 나아가면 돼요.”

박 대표가 말하는 실감 나는 인생 이야기 쓰는 법

1. 구체적으로 묘사하라, ‘빵’ 대신 ‘삼립 크림빵’으로, ‘버스’ 대신 ‘36번 버스’라고 써라. 한 편의 글에서 중요한 대목의 한두 문장 정도만 그렇게 쓰면 된다.

2. 시대적 배경이나 당시 사회적 사건을 기록하라. 개인적 이야기를 집단적 시대상과 함께 기록하면 독자들은 한층 글을 신뢰할 것이고,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3. 팩트 체크.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 당신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에게 나의 기억이 맞는지, 그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지 물어본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관점이다.

4. 다양한 형식으로 써라. 꼭 산문일 필요는 없다. 시, 편지, Q&A도 재미있다. 상상력을 총동원해 보라.

5. 사진이나 그림을 첨부하라. 더 흥미롭고 자료적 가치도 높아질 것이다. 가족이나 어린 시절 사진, 떠나보낸 강아지 사진도 좋다. 단 글 쓰는 흐름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작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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