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남편 살해 잇단 중형…무죄 판결 전무

가정폭력 피해자가 폭력 남편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 무기징역이 구형되면서 가정폭력의 특수성을 간과한다는 여성단체의 비판을 받아 온 형법상 '정당방위'조항이 또 다시 법리논쟁의 도마에 오르게 됐다.

동부지방법원 형사합의 11부(재판장 이기택)는 9월 17일, 지난 4월 10년간 폭력과 성적 학대를 일삼던 남편 김모(42)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숨지게 한 최경주(47·가명)씨에게 범행이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최씨는 평소 남편 김씨가 술을 마시고 들어와 아이들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 병원에 수차례 입원할 정도로 폭력과 성적 학대를 일삼아 우발적으로 이 같은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최씨의 변호인 최일숙 변호사는 10월 15일 있을 1심 판결에 대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살해 당시 남편이 폭행을 하던 상태가 아니었고 흉기로 여러 차례 찔렀다는 사실 때문에 무리수가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이 사건을 지원 중인 서울여성의전화와 최씨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마을 주민들은 최씨와 같이 장기간 상습적으로 이루어지는 폭력과 위협의 상황에서 살인을 저지른 경우 정당방위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서울여성의전화 측은 “이번 사건 역시 피해자의 심리로 봤을 땐 남편이 현재 때리고 있지 않아도 공포와 위협 속에서 폭행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라며 “형법상 정당방위의 요건인 폭력의 현재성과 상당성이 여성들의 피해 심리를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동안 정당방위 구성 요건은 똑같은 힘을 가진 성인 남성 2인을 전제로 한 규정이기 때문에 남녀 간에 일어난 '만성적인 폭력'에 '즉각적인 위협'이 없을 때, 특히 부부 간에 발생하는 가정폭력의 경우에는 구성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만성적 폭행의 잠재적 공포 등 피해자 심리 간과

국내 판례 가운데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 정당방위를 적용해 무죄를 선고한 예는 아직까지 없다. 92년 김보은·김진관 사건에서 대법원은 “사건 범행 당시 피고인 김보은의 신체나 자유 등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상태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라고 판시했으나 결론적으로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2001년 심정진씨 사건은 정당방위 인정 가능성이 다분했음에도 불구하고 2심에서 2년 실형이 선고됐다.

최근 이처럼 가정폭력 범죄 해법의 출구가 보이지 않자 정당방위의 요건의 확대를 위한 형법 개정이 절실하다는 법학자와 여성단체의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10월 10일, 특별법 점검과 형법 개정에 관한 공청회를 열 계획인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법소위는 96년부터 성희롱,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 여성 관련 폭력을 통합법 체계 하에서 다뤄 온 스웨덴의 '여성인권법'모델을 검토 중이다.

여성계·법학자 “구성요건 확대 위한 형법 개정을”

서울대 법대 양현아 교수는 “특별법이 기초한 기본법이 형법이기 때문에 특별법 개정만으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면서 “형법상의 개정에 관심과 힘을 보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당방위를 입법상의 문제이기보다 관행, 의식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대 법대 박은정 교수는 “여성이 불가피하게 저지르는 상황은 각인이 안되는데, 이를 각인시키기 위한 토론의 장을 만들어 법 운용의 관례를 바꿔야 한다”면서 “법 적용과 해석의 태도를 바꿔나가기 위해 논의의 저변을 넓히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성단체연합 김금옥 정책국장 또한 “법의 형평상 현실적, 제도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 인식을 바꿔나가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정당방위는

상습폭행 '위기'상태로 인정...피해여성 '손' 든 판결 많아

미국에서는 정당방위 요건 가운데 폭력의 '현재성'을 인정,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손을 들어준 판결이 적지 않다.

89년 '노먼(Norman)' 판례는 남편에게 장기간 학대당하고 구타당한 아내가 그 상황을 견디다 못해 근처 친정집에서 권총을 갖고 돌아와 잠자는 남편을 살해한 사건으로, 법원은 “피고인이 심각한 정도의 '구타당하는 아내증후군'의 증세를 보인다”면서 “지속적으로 구타 당해온 아내의 경우 가해자를 살해하는 것은 그 정황을 고려해 경우에 따라 정당방위가 허용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는 주 고등법원에서 파기됐지만 현재의 침해는 20년 동안 비인간적이고 굴욕적인 취급을 당해왔던 피고인의 상황을 고려해 피고인의 관점으로부터 파악되어야 한다는 당시 법학계의 공론을 낳았다.

2000년 '에드워즈(Edwards)' 판결은 “'구타당하는 여성증후군'으로 고통받고 있는 합리적 사람이라면 어떻게 인식하고 반응했을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판시했으며, 90년 캐나다의 '라밸르(Lavallee)' 판결, 84년 '켈리(Kelly)' 판결도 “제 3자의 관점에서는 남성의 공격이 임박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구타당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죽음 또는 심각한 신체상해에 직면해 있다는 인식이 합리적일 수 있음을 설명해 준다”는 주장으로 정당방위 법리의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은 84년부터 “여성은 합리적 자기통제 능력이 없다는 불쾌한 인식을 강화하고 형법이론 속에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정형을 제도화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구타당하는 여성 증후군'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판결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임인숙 기자is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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