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
맨땅에 일군 첫 도심형 수목원
축구장 90개 규모 3759종 식물
정원 문화 확산 위한 거점으로
“조성 넘어 함께 가꿔가는 정원으로”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 원장 ⓒ홍수형 기자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 원장은 “숲이 제일 필요한 것은 도시”라며 “숲은 도시의 환경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치유하고 문화를 바꾸고 삶의 색깔을 바꾼다”고 말했다.  ⓒ홍수형 기자

대한민국 행정수도인 세종특별자치시. 이 도시 한복판에 천 가지의 표정을 지닌 국립세종수목원이 자리해 있다. 연둣빛 새순이 짙은 초록색을 띠기 시작할 무렵인 5월 초 이곳을 찾았다. 곧 비가 내릴 듯 강한 바람이 불었지만 수목원을 찾은 관람객들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책하듯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유아차를 끄는 젊은 부부와 연세 지긋한 어르신 단체까지 손쉽게 이곳을 찾는다. 아파트 숲이 내다보이는 ‘도심형 수목원’인 까닭이다. 깊은 산자락에 안겨있는 국립수목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과는 태생부터 다르다. 세종수목원을 가꿔나가는 이유미 원장은 “세종수목원은 물길을 살리고 땅을 돋워 공간들을 만들었고 그에 적절한 식물들을 심어 가꾸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시민들과 가장 가까이 만나면서, 그 식물들로 하여금 시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수목원 문화를 발전시키는 곳”이 바로 세종수목원이 그리는 도시의 미래다.

행정도시 한복판 수목원의 의미

2014년 여성으로는 첫 국립수목원장에 오른 이 원장은 초대 국립세종수목원장에 이어 지난해 말 2대 원장으로 복귀했다. 세종시 건설계획 당시 이 원장의 제안에서 뿌리 내리기 시작한 세종수목원은 지난해에만 79만8000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 있는 수목원으로 성장하고 있다.

“제 역할은 굉장히 미미해요. ‘비전 2020’이라는 자문회의에서 지역별 거점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던진 것뿐이죠. 도시를 만들려면 나무를 다 없애야 하는데 나무를 옮겨서 은행처럼 만들자는 회의였어요. 나무은행을 만들 거면, 수목원을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했죠. 많은 분의 노력 덕에 세종수목원이 생겼습니다.”

보전되어 온 깊은 숲이 아닌, 도심 한복판을 초록으로 채운 세종수목원은 도시의 미래를 바꿀 새로운 ‘정원도시’ 모델로도 평가받는다.

“세종시는 도넛 형 도시에요. 커다란 도넛처럼 자연이 도시에 둘러싸여 있어요. 도시 중앙에 수목원이 자리 잡았다는 점이 큰 의미가 있습니다. 도심 가운데 있어서 어디서나 쉽게 찾아올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지요. 요즘 우리나라가 처한 기후문제, 탄소문제는 사실 숲이 해결해주는 일들이 많아요. 역설적으로 숲이 제일 필요한 것은 도시이지 않나요. 숲은 도시에 있는 우리가 가진 여러 환경적인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치유하고 문화를 바꾸고 삶의 색깔을 바꿉니다. 세계적으로도 수목원, 식물원은 문화예술 복합공간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 원장 ⓒ홍수형 기자
사계절전시온실을 소개하는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 원장 ⓒ홍수형 기자

반려식물·정원문화 확산 앞장

세종수목원 정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붓꽃 잎을 형상화한 사계절전시온실이 관람객을 맞는다. 열대와 지중해 식물관, 특별 전시관 등 3개 전시관으로 구성돼 기후별로 다른 지역의 식물을 만나볼 수 있다. 이밖에도 축구장 90개 면적의 부지에 국내외 식물 3759종, 172만본을 보유하고 있다. 주제별 전시원도 20여개가 조성됐다. 창덕궁 후원의 누각을 실물과 같은 크기로 재현해 꾸민 한국 전통 정원, ‘속리산 정이품송’과 ‘뉴턴의 사과나무’ 후계목을 보존하는 후계목 정원, 텃밭 식물을 옮겨 놓은 생활 정원에서는 관람객이 파종과 재배, 수확을 체험할 수 있다.

이 원장이 일하는 연구동도 작은 식물원 같다. 원장실은 홍지네고사리, 파초일엽, 동백나무 팅커벨 등 생경한 이름의 식물 화분들이 즐비하다. 모두 세종수목원이 반려식물로 테스트 중인 자생식물이다.

“최근 반려식물이 유행하고 있어 반갑지만, 실내 관엽식물의 90% 이상이 다 외국산이라는 점이 아쉬웠어요. 세종수목원이 우리나라 소재 중에서 반려식물로 적절한 것을 발굴해 보급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홍지네고사리의 경우, 지금 시중에서 가장 잘 팔리는 보스턴 고사리보다 미세먼지 흡착 능력이 뛰어나요. 파초일엽은 제주도에만 자생하는 멸종위기 희귀식물이에요.”

세종수목원은 발굴에서만 그치지 않고 기술 검증이 되면 농가에 보급하는 역할도 맡는다. “자생종을 발굴하고, 농가나 정원식물 기업의 산업화 지원”이 국립수목원의 또 다른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정원 산업 성장을 위한 반려식물 키트(Kit) 산업계 지원도 늘리고 있다. 접근성이 뛰어난 수목원이라는 특성을 살려 ‘즐기는 식물’ 문화 확산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가드닝 체험프로그램부터 하계 야간 개장과 버스킹, 시네마 가든 등 문화 행사도 연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부러워하지만 수목원도 시스템이 잘만 되면 훌륭한 정원이 될 수 있어요.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하는데서 그치면 안 됩니다. 정원을 만들어서 가만히 둔다면 그저 잡초밭에 지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조성해서 가꾸어 나가는 과정입니다. 정원을 함께 가꾸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사람이 치유받고 도시가 재생되며 문화가 바뀔 수 있는 것이지요. 단순히 어떤 공간을 점유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자연과 교감하며 양쪽이 서로 회복해나가느냐는 관점입니다. 도심 한복판에 들어온 세종수목원이 사람과 자연이 함께 성장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은?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산림자원학 박사 학위를 받은 식물분류 분야 전문가다. 1994년 산림청 임업연구원 임업연구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2014년 국립수목원장에 임명됐다. 산림청 개청 이후 47년 만에 첫 여성 고위공무원이자 연구직 공무원이 원장이 된 첫 사례다. 재임 중 일본식으로 붙여져 있던 식물의 영어 이름을 우리 식으로 바꾸는 ‘우리 식물주권 바로잡기’ 사업 등을 진행했다. 6년 간 국립수목원장을 지내고 2020년 세 번째 국립수목원이자 첫 도심형 수목원인 국립세종수목원 초대 원장에 임명됐다. 『광릉숲에서 보내는 편지』, 『우리 나무 백 가지』 등을 펴냈다.

<도심 속에서 만나는 숲 ‘국립세종수목원’>

ⓒ국립세종수목원
붓꽃을 모티브로 지은 사계절전시온실. 축구장 1.5배의 면적으로 국내 식물 전시 유리온실 중 최대 규모다. ⓒ국립세종수목원

국립세종수목원은 2020년 7월 문을 연 국내 최초의 도심형 국립수목원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 중앙공원에 위치한 이 곳은 온대 중부지역의 식물을 체계적으로 보전하고 도심 속 녹색문화 체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조성됐다.

축구장 90개 규모인 65만㎡의 크기에 땅에 3759종, 172만본의 식물이 자리잡고 있다. 국내 최대 식물전시 유리온실인 사계절온실과 조상들의 정원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한국전통정원, 금강에서 가져온 원수로 수로를 조성해 습지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학습의 장인 청류지원,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 분재를 전시한 분재원도 보유하고 있어 도심 속의 녹색 문화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홈페이지 www.sjna.or.kr 문의 044-25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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