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순위 근저당이나 조세채권 숨기고 계약
신탁 이용한 사기, 바지임대인으로 교체 등
보증보험 가입하지 않은 경우 경매절차 알아야
근저당권 설정, 조세체납된 날짜 우선 확인해
소액임차인, 최우선변제금액 조건 살펴야
‘대항력’ 갖춰야 경매시 우선변제 받을 수 있어
소송, 할 순 있지만 보증금 돌려받기는 어려워

17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전세사기 수사 대상 아파트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이날 해당 주택에서는 30대 여성이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그는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뉴시스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전세사기 수사 대상 아파트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뉴시스

집을 구하고 있거나 이미 세입자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혹시 나도 전세사기의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할 수밖에 없다. 전세사기 계약은 실제로 어떻게 이뤄지는지, 당했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전세사기를 당했다고 하면 ‘제대로 안 알아보고 위험한 집에 들어간 거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계약이 이뤄지는 자리에서 세입자들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민달팽이유니온의 ‘집구하기 AtoZ’ 주거교육에 따르면, 몇 가지 정형화된 전세사기 유형들이 있다.

먼저, 선(先)순위 근저당(빚)이 있는데 속이고 계약하는 유형이다. 여기서 순위는 경매에 넘어갔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일부 중개사들은 이런 매물을 ‘안전’하다며 속여 계약하도록 유도한다.

민달팽이유니온 지수 위원장은 “중개사가 안전하다고 호언장담하고, 대출도 나온다. 각서까지 쓴다고 한다”며 “(세입자들은) 집을 많이 운영하는 부자니까 이렇게 하는구나, 당연한 부동산 관행으로 이해하고 (전세사기) 집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선순위 조세채권이 있는 집의 사례. 세금 체납액이 너무 커서 경매에 넘어가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 ⓒ민달팽이유니온 제공
선순위 조세채권이 있는 집의 사례. 세입자들의 보증금보다 앞서 미납된 당해세(국세, 지방세)가 너무 커서 경매에 넘어가면 보증금을 전혀 돌려받을 수 없다. ⓒ민달팽이유니온 제공

등기 깨끗해서 믿었는데... 알고보니 세금 60억 안 낸 ‘빌라왕’ 집주인

선순위 조세채권(당해세)이 있는 경우도 문제는 심각하다. ‘빌라왕’ 김모씨 사건이 이에 해당한다.

김씨는 민간임대주택 등록을 해놨고, 당시 피해자들이 확인했을 때는 등기부등본 을구에 저당권과 임차권도 없이 깨끗했다. 피해자들은 안전하고 좋은 집이라고 믿고 계약했다. 하지만 집주인 김씨는 사실 60억이 넘는 세금을 내지 않은 고액 체납자였다.

민간임대주택으로 등록된 집은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제49조제1항’ 등에 따라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집주인 김씨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지수 위원장은 “실제로는 (보증보험) 가입이 안 돼도 민간임대주택 등록이 말소되지 않는다. 세입자 보호(조치)는 하나도 없다”며 “압류에 걸리면 보증보험 가입이 안 되는데, 김 씨 사건도 (보증보험) 가입을 미루더니 (세금 체납으로) 세무서에서 압류가 들어간 경우다”고 설명했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임대차 계약 시 임대인의 미납 세금을 확인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계약 후부터 실제 계약 이행(이사) 전까지는 임대인 동의 없이도 미납 국세와 지방세를 열람할 수 있다. 하지만 세무서까지 직접 가야하고, 계약 전이나 이행 후에는 임대인 동의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다.

경찰청이 지난해 7월 발표한 전세사기 중점 단속대상 목록이다. ⓒ경찰청
경찰청이 지난해 7월 발표한 전세사기 중점 단속대상 목록이다. ⓒ경찰청

신탁사기, 바지임대인, 전세가 부풀리기... 제도 허점 파고드는 다양한 수법 

신탁을 이용한 사기도 있다. 집주인이 돈을 빌리기 위해 담보로 신탁회사에 집을 맡기면, 집의 소유권은 신탁회사로 옮겨진다.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권리도 신탁회사에 있다. 세입자들에게 이런 내용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고 임대권한이 없는 사람과 계약하게 한 뒤 보증금을 가로채는 방식이다. 신림동 고시촌 전세사기 사례가 이 유형에 해당한다.

지수 위원장은 “신탁회사가 일시 운영하게 하는 게 한동안 부동산 투자집단에서 유행했다. 다 나쁘다고 하기엔 관행적으로 그런 집이 많긴 하다.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봐야 한다”며 “(원칙적으로는 이것도) 공인중개사가 설명해줘야 한다. 설명 안 해주면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계약 후에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는 ‘바지 임대인’으로 집주인을 변경하는 사기 사례도 많다. 건당 보수를 받고 명의를 빌려주는 무자본 갭투기 ‘알바’가 이같은 사기에 이용된다. 

공인중개사, 분양대행사, 은행 대출상담사, 건축주가 한 패로 전세가를 시세보다 올려받는 유형의 사기도 있다. 중개사가 대출이자 지원을 제안하고, 특정 은행의 상담사를 연결해 준다면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작정한 ‘사기’는 아니지만 “다음 세입자 당신이 구하세요”라며 무작정 안 돌려주는 집주인도 있다. 지수 위원장은 “안 된다”고 단호히 말하라고 조언했다. 이는 명백한 계약 위반행위일 뿐더러 “보증금은 기간을 약속하고 임차인이 ‘빌려준’ 것이기 때문에 안 돌려주는 임대인에 대해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배당받는 순위를 알기 쉽게 나타냈다. ⓒ민달팽이유니온 제공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배당받는 순위를 알기 쉽게 나타냈다. ⓒ민달팽이유니온 제공

집에 빚이 많거나 집주인이 세금 체납자일 경우, 대처방안은?

전세사기를 당한 것 같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보증보험에 전부보증으로 가입돼 있는 상태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대위변제(대신 갚아줌)를 통해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증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는데 집에 근저당(빚)이 많거나, 집주인이 심각한 세금 체납자인 경우다. 보증금을 돌려받지도 못했는데 내가 사는 집이 의지와 상관없이 경매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보증금을 떼이면 우선 확인해야 하는 건 집이 빚을 진 날짜다. 보증금 크기가 작은 소액임차인은 ‘최우선변제금액’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이 기준은 법개정에 따라 지속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내가 보호받을 수 있는 금액이 얼마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근저당권 설정일자가 2019년 1월 1일이고 김포시에 있는 주택이라면, 보증금 6000만원 이하인 사람이 소액임차인이고 경매를 통해 우선 돌려 받을 수 있는 보증금은 2000만원이다.

소액임차인과 최우선변제금 기준은 법 개정에 따라 지속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따로 확인해야 한다. ⓒ민달팽이유니온 제공
소액임차인과 최우선변제금 기준은 법 개정에 따라 지속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따로 확인해야 한다. 근저당권 설정일자가 2019년 1월 1일이고 김포시에 있는 주택이라면, 보증금 6000만원 이하인 사람이 소액임차인이고, 경매시 세입자가 먼저 돌려 받을 수 있는 금액은 2000만원이다. ⓒ민달팽이유니온 제공

소액보증금 다음 순위로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 ‘대항력’을 갖춘 보증금이다. 경매에서 대항력은 해당 주택에 실제로 거주하고, 주민등록을 옮기는 ‘전입신고’를 마치고, 임대차 신고 시 나오는 ‘확정일자’까지 받아야 생긴다. 이 같은 조건을 갖춰야 먼저 보증금을 배당받을 수 있는 ‘우선변제권’이 주어진다. 만약 대항력을 갖추지 못하면 맨 마지막 순위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사실상 “못 돌려받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대항력 있는 보증금은 집주인의 당해세와 같은 순위에서 경합(경쟁)한다. 즉, 시기상 임대차 계약이 우선이면 먼저 돌려받을 수 있지만, 그게 아니면 집주인의 밀린 세금보다 뒷 순위로 받게 된다. 만약 집주인의 세금 체납이 보증금보다 앞서 있고 금액도 보증금 이상으로 많다면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다.

소송이 ‘최선’은 아냐... 피해자들이 특별법 요구하는 이유

피해자들이 취할 수 있는 다른 조치로 민형사 소송이 거론되기도 한다. 민사로는 전세금반환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재판을 통해 요구하는 것이다. 임대인에게 죄를 묻고 싶다면 경찰에 사건을 접수하면 된다. 대표적으로 사기죄가 적용될 수 있다. 실무적으로는 피해자가 여럿일수록 경찰이나 재판부가 사건을 심각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같은 임대인에게 피해를 입은 세입자들을 수소문해 함께 고소를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소송을 통해 정작 보증금을 돌려받는 피해자는 많지 않다. 전세사기가 터진 후라면, 임대인이 이미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가족 명의로 재산을 빼돌리는 등 ‘꼼수’를 쓰기 때문이다. 전세금반환소송은 승소율이 높은 편이지만, 이미 가진 돈이 없는 임대인을 상대로는 큰 의미가 없다. 게다가 현행법에 따르면 범죄수익에 대한 환수는 범죄단체일 경우에만 적용된다. 범죄가 인정돼 환수 조치를 한다고 해도 임대인이 돈이 없으면 역시 무용지물이다.

피해자들이 ‘선(先)구제 후(後)구상권 청구’ 방안을 담은 특별법을 요구하는 이유도 이런 현실에 있다.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전재산이나 다름없었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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