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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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9일, 충북·청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청주경실련) 조직위원회 단합회에서 임원들에 의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다. 상근자였던 피해자들은 조직 내에서의 해결을 바랐으나 일부 청주경실련의 임원들은 ‘경실련 팩트체크’라는 네이버 밴드를 만들어 피해자와 연대자를 향한 2차 가해를 했다. 서울경실련은 청주경실련을 사고지부 처리해 성희롱 사건에 대한 꼬리 자르기를 했다. 이에 ‘경실련 피해자 지지모임’은 경실련 측과 해고무효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경실련으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한 지 3년이 되어 간다. 내가 원했던 것은 으레 그렇듯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었다. 하지만 ‘일한 만큼 대접받고 약자가 보호받는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다는 경실련은 그 안의 노동자를 일한 만큼 대접해주지도 않았으며, 성희롱 피해자를 보호해주지도 않았다.

청주경실련에 들어가며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또래 여성 활동가들과 모임을 만든 적이 있었다. 만나면 즐거운 이야기도 나눴지만, 결국엔 시민단체 내의 위계와 ‘여성’ ‘청년’으로서 겪는 차별로 귀결되기 일쑤였다. 결국 1년도 채 되지 않아 친구들은 심각한 트라우마로 지역을 떠나기도, 하고 싶은 활동을 포기하기도, 차라리 공부가 낫다며 대학원에 가기도 했다. 아쉬웠다. 함께 더 나은 세상은 만들지 못해도, 더 나은 지역을, 하다못해 더 나은 조직문화를 만들어보자고 노력했던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이. 이들의 인권이 대의라는 명분 아래에 소의로 치부되고 제대로 발화조차 되지 못했던 것이.

조직 내에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으나 피해자의 비밀 유지 요청은 지켜지지 않았고, 새로 들어온 인턴 활동가는 지역의 스쿨미투 기사를 지속적으로 써왔던 기자가 경실련을 장악하기 위해 위장 취업을 했다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고, 피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경실련의 임원들로부터 ‘페미나치’라고 불렸다. 서울경실련은 이런 소동이 불편했는지 청주경실련을 사고지부 처리해 피해자들을 비롯한 모든 사무처 활동가를 해고하며 사건을 일단락시켰다. 나는 그렇게 직장을 잃었다.

법원까지 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성희롱 피해자를 해고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이 당연한 명제를 모르는 경실련에게 진짜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좋은 선례를 만들어 훗날 법원을 찾은 나와 같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법정 싸움은 나만 잘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서울경실련과 청주경실련은 법정 내에서도 사용자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1심 마지막 변론기일, 서울경실련의 임원이자 담당 변호사는 재판 후 나에게 “모든 경실련 임원이 성희롱 가해자 같지는 않다”, “미안한 마음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사건 당시 2차 가해를 막고 피해자들이 출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에는 대답 한 줄 없었으며, 재판 내내 모르쇠를 일관하던 사람이 저런 말을 한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모든 사과가 면죄부는 아니다.

사진=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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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을 담당했던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2민사부는 나와 인턴 활동가의 사업주를 청주경실련으로 봤고, 청주경실련은 5인 미만 사업장이기에 우리의 해고가 다툴 필요도 없는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내가 받은 해고통지서는 ‘충북청주경실련 비상대책위원회’가 발신했고 해당 기구는 서울경실련이 만들었다. 서울경실련은 5인 미만 사업장이 아니기에 이 해고는 부당하다. 법리적인 해석을 떠나서 성희롱 사건으로 피해자가 겪은 피해와 불이익을 봤다면, 1심 재판부는 이런 판결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경실련과 1심 재판부가 외면한 정의를 위해 2심에 왔다. 여전히 서울경실련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청주경실련은 성희롱 사건마저 부정하고 있다. 1심 판결과 같은 결과가 나올까 봐 지난 변론기일엔 생계를 며칠 포기하고 서울에 올라가 1인 시위를 했다. 홀로 고등법원 앞을 지키고 있으니, 사람들이 가끔 응원의 말을 건넸다. 말로 감사함을 전하고 싶지만 오랜만에 받아보는 외부의 위로에 눈물이 날 것 같아 꾸벅 인사로 대신했다. 내 인생을 모조리 바꾼 이 사건에 정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되면, 그땐 보내주신 모든 연대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정의로운 판결을 위해 투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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