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모색의 리더십-이철순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대표

대안 만들며 정책화 주력

전국가정관리사협 조직해 비정규직 정면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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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기계도 아니요 만월을 보며 짖어대는 개도 아니다. 노동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격을 갖춘 가장 중요한 보물이다.”

1970년대 초 가톨릭노동청년회를 시작으로 노동운동에 발을 디딘 이철순(52)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한여노협) 대표의 노동자에 대한 정의다. 1975년 화양동의 대동화학을 시작으로 태광산업, 동서양행, 태능 컨츄리 클럽, YH 무역 등 정부의 탄압에 맞서 노동자 조직화에 앞장섰던 그는 수 십년 간 여성노동운동계의 왕언니로, 여성들의 노동권 확보와 성차별 문제 해결에 주력해 왔다.

1984년 필리핀 유학과 1988년부터 6년간 활동했던 홍콩의 아시아여성위원회 집행위원장 경험은 국제 노동문제에 대한 이대표의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격동기의 필리핀과 70년대 한국의 노동현장을 보는 듯 다국적 자본의 유입으로 피폐해져 가는 남아시아를 보며 그는 자본의 세계화가 한국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을 예측했었다. 1992년 여성노동자들의 본격적인 조직체인 한여노협이 결성되고 1996년 그가 대표를 맡으면서 곧 한국에 IMF가 닥쳐 온 것. 한여노협은 IMF의 주요 타겟이었던 여성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여성실업대책본부를 꾸리고 사회안전망에 대한 대정부 요구, 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여성실업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여론 형성 등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은 파견직, 특수고용노동직 등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하며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여성노동자들을 몰아갔다. 1999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전국여성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이는 5000명 조합원을 가진 조직으로 발전하며 골프장 캐디의 노동자성 인정, 비정규직 문제 대통령 공약화, 고용보험 1인 사업장확대 등의 성과를 얻어냈다.

“노동 주체가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 한다, 옆에서 도와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비정규직 문제를 양대 노총에 맡길 순 없다는 판단도 있었다.”

최근 이대표는 노동시장의 73%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물론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는 기층 여성들의 문제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벨기에의 모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전국가정관리사협회를 조직하는 것이 그 일환이다. 이는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꿈과 동시에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는 방식으로, “대안을 만들며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그의 의지와도 맥이 닿는 부분이다. “제도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제도를 행정에 미치게 하는 것도 운동”이라고 말하는 그의 신조는 이렇듯 여성노동자에 대한 애정과 현장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의 끈을 계속 이어가게 하고 있다.

운동제도화의 리더십-정강자 여성민우회 공동대표

평생평등노동권 확보 온 힘

사무직 여성노동운동 기수…성희롱 불법화 등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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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중반 우리 사회의 대학생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택했던 길이다. 나와 같은 모습을 한 다른 조건의 여성들, 그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주위의 관계, 그 과정에서 평등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키웠다.”

1977년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 교육담당 간사로 노동운동에 첫 발을 디딘 정강자(52) 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1987년 여성민우회 출범과 함께 사무직 여성노동자 운동을 이끌어 왔다.

민주화 당시 대거 모습을 드러냈던 사무직 노동자들, 이른바 '넥타이부대'라는 남성 중심적인 명명에 사무직 여성노동자들은 가려져 있었다. 민우회는 사무직 여성노동자들을 사회 변혁의 핵심주체로 보고 사무직 여성노동운동을 여성운동의 주요 활동 영역으로 삼아 일터에서의 성차별 해소, 평등한 노동권 확보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내 여성참여, 기업 내 여성조직화를 주장하던 개별사업장 중심의 초기 활동은 점차 여성계가 주력했던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1988년 개정 운동으로 전개되며 여성사무전문직 노동자 일반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당시 남녀 임금격차, 법적으론 금지됐으나 사업장에 엄존했던 결혼퇴직제, 온갖 성차별적 근로조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법제 마련에 앞장섰던 평생평등노동권 확보 캠페인은 이러한 활동의 일환이다.

특히 민우회는 성별분업 구조의 고착화를 극명하게 드러냈던 여행원제 폐지와 용모 차별을 공공연히 자행하는 44개 기업을 고발해 남녀고용평등법의 용모차별 조항을 바꿔내고 1995년 화제가 됐던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을 통해 성희롱의 개념화, 즉 성희롱이 성폭력이며 직장 내 고용차별이라는 정의를 이끌어 남녀고용평등법, 여성발전기본법, 남녀차별금지법 내에 성희롱을 불법 행위로 법제화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또한 경제 위기 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 비정규직화에 대항했던 '여성우선해고반대운동''농협사내부부우선해고' 소송지원도 빼놓을 수 없는 민우회 노동운동 성과 중 하나다.

그는 “민우회 활동을 하며 평등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사회의 차별과 평등은 아직도 나한테 던져진 질문”이라며 “성차별, 이주노동자, 장애인, 성적 소수자 문제 등 많은 영역의 문제를 풀어가는데 조금 먼저 제도화의 경험을 가진 여성운동이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독자적 조직력의 리더십-최상림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특수직 껴안는 법 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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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림(47)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은 여성들의 노조운동을 독자적으로 본격화한 여성노동 운동가다. 99년 비정규직과 영세 사업체의 여성노동자를 중심으로 전국여성노동조합을 창립할 당시부터 조직을 이끌고 있는 그는 전국 9개 지부와 5000명의 노조원들로 구성된 현재의 전국여성노동조합을 이뤄냈다. 대학을 졸업한 80년 이후 학생운동의 연장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 최 위원장은 현재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부대표, 한국여성단체연합 노동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협력적, 배려지향적 여성이 노조운동을 통해 사회를 보다 평등화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최 위원장은 특수고용직 문제, 최저임금 투쟁, 학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펼쳐왔다.

최근 전국여성노동조합 창립 5주년을 맞아 최 위원장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적응하려는 경향이 강한 여성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노동권리를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간 활동 과정을 통해 여성 노동자들의 결집력을 충분히 확인했다”고 전했다.

최 위원장은 “특수고용직을 아우르고 비정규직 확대를 규제하는 고용정책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노조 중간 간부 역량을 키워낼 것”이라고 전했다.

성평등 노동관의 리더십-이찬배 민주노총 여성연맹위원장

“'투쟁'을 '운동'으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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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운동은 여성 스스로 갇혀있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와 사회관습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는 남성들의 가부장적 사고방식과 사회활동의 기초부터 바뀌어야 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를 이끌고 있는 여성연맹위원장 이찬배(50)씨.

그는 83년부터 미싱사로 일하던 현장에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착취의 문제를 생생하게 확인하면서 87년 경기·남부지역 권익단체와 노동문제상담소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현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노동조건은 70, 80년대 수준과 다르지 않다”며 “비정규직 제도의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 위원장의 운동관은 98년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던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해 99년 경기·남부지역 여성노동조합을 건설하고, 2001년 1500여명의 청소용역직이 주를 이루는 여성연맹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그는 99년 7월 3일 민주노총 산하 여성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으로 활약하다 2001년 2대 여성연맹 위원장을 거쳐 현재 3대까지 위원장을 연임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여성노동투쟁은 있었으되, 여성노동운동은 이제 시작이라고 본다”며 여성노동운동의 특화를 강조했다.

실무형의 리더십-정현숙 한국노총 여성1호 본부장

“20대 여성 조직화가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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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운동의 대모라 할 수 있는 한국노총 정현숙(46) 본부장은 노동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노조활동가다. 여고를 졸업하고 79년 '한독'의 노동자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정현숙 본부장. 주식회사 한독의 노조사무위원장을 거쳐 금속연맹 여성국장, 한국노총 여성1호 본부장이 되기까지 직책은 달랐지만 출산휴가 보장, 보육시설 확충, 남녀동일임금 보장 등 여성이슈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정 본부장은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여성노동운동의 제1과제로 꼽았다. 아이 엄마이기도 한 그는 가정을 꾸린 여성이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 때문이다.

정 본부장이 꼽는 여성노동운동의 두 번째 과제는 여성조직화 문제. 25년을 노동자로 살았어도, 자신을 노동자가 아닌 여성으로 보는 가부장적 노조활동가들 때문이다. 이들을 바꾸기 위해선 5%밖에 안되는 여성 조직률을 남성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최근 그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20대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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