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경 /

<뉴스위크>한국판 편집장

짧은 역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미국의 힘은 엘리트 양성에서 시작됐다. 미국 정부는 2차 대전에 참가하면서 자원해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에게는 대학 무상교육의 기회를 부여했다. 그때 키운 인재들이 현재 사회 각계에 흩어져 '미국의 힘'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이 지식사회로 전환하는 분수령을 맞았다는 것이 유명한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의 분석이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대학 교육제도를 가진 나라로 해외 유학생들의 꿈인 명문대학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소위 '아이비 리그'로 불리는 미국의 유명 사립대학 출신들은 미국을 움직이는 핵심 세력이며, 그들이 속한 조직 내부에서도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럼 한국사회를 보자. 요즘 한국은 늘 그랬듯 새로운 입시제도가 발표된 이후 몸살을 앓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학생들의 학습 능력 평가를 학교에서 부과한 등급으로만 한정지어 대학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를 택해 사교육비를 없애겠다는 취지의 입시제도를 발표했고, 각 대학은 변별력이 없다며 본고사를 부활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교육부의 입장대로라면 어느 고등학교나 예외 없이 학교별로 부과하는 9개 등급으로 학생의 능력 평가가 이뤄지니 학교별 학습 능력의 차이는 아예 인정하지 않겠다는 발상이다. 안병영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런 갈등 속에서 10월 13일 본고사와 고교등급제를 철저히 금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고, 열린우리당은 이 두 가지에 기여입학제까지 포함한 '3불정책'의 입법화를 추진하겠다는 뜻까지 밝혔다.

대입제도를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신경전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어두운 미래에 대한 우려를 씻을 수 없다. 한국의 입시제도는 인재를 키워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역점을 둔 '백년 대계'가 아니라 '괴외공부와의 전쟁' '평준화'에만 온통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한 우물 안의 개구리가 어디에 있을까 싶다. 어떤 대학이든 들어가고 보자 식으로 딴 '학사 졸업증'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타이틀뿐인 고학력 실업자가 넘쳐나는 것도 결과적으로 적재적소의 인재를 키우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세계경제포럼(WEF)이 10월 13일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 보고서를 보면 이러한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단 1년 만에 세계 18위에서 29위로 추락했다. 이 중 눈여겨봐야 할 것이 한국의 최강점으로 지목돼왔던 기술지수가 6위에서 9위로 주저앉았다는 점이다. 인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읽을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또 이러한 원인으로 지적된 사항 중 첫 번째가 '일관성 없는 정부정책'이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대입제도 만큼 일관성 없이 치러지는 정부정책이 또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 대로라면 평준화 세대가 배출한 '범재'들의 손에 맞겨질 한국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나 있을지 암담한 심정이 든다.

한국은 인적자원 외에는 세계에 경쟁력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한국이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된 데는 60년대 가난 속에서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애쓰던 어머니들의 교육열이 뒷받침이 됐다. 그들이 자신을 희생해가며 자녀를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갈 엘리트 집단으로 키워냈기 때문에 오늘의 한국사회가 가능했다. 이런 뒷받침을 받으며 현재 한국을 이끌어가는 힘으로 성장해온 40대들은 소위 말하는 '본고사 세대'들이다. 어려웠지만 변별력이 분명한 입시과정을 통해 선발된 인재들이 요소요소에서 한국을 이끌어가는 힘으로, 세계 경쟁의 전위대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도 이제는 세계시장을 내다봐야 한다.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신화를 창조했듯 대학도 자유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도 과외가 단절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공평하게 대학졸업장을 나눠주는 데 골몰한 대입정책을 재고하기보다는 차라리 다소의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우수 인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정책의 기조를 바꾸기를 바란다. 교육부가 국제화된 시각을 가져야 지금의 혼돈이 정리될 것 같다. 한국의 경쟁력이 실종될 위기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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