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경 /

<뉴스위크>한국판 편집장

최근 한 유력 일간지에 '17세기 조선통신사 이후 최대의 한류'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에 대한 기획특집 기사가 실렸다. 제목에서 보이듯 이 기사의 핵심은 일본 현지에서 인기 있는 한국의 연예인들과 그를 중심으로 한 관광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시대에 일본으로 보낸 외교사절이었다. 일본에서 조선통신사 일행이 통과하는 객사에서는 문화상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조선통신사는 1403년부터 1811년 마지막으로 활동하기까지 중단과 재개를 거듭하며 모두 9차례에 걸쳐 일본에 파견됐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은 삼포왜란(1510년)을 비롯해 임진왜란(1592∼98년)을 일으키며 조선 땅을 침략하려 했다.

'조선통신사 이후 최대의 한류'라는 말을 들으면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일관계의 역사를 짚어보면 일본은 한창 양국의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는 순간 조선 땅을 넘보는 침략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한반도 분단의 단초가 된 일본 제국주의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진행된 조선침략과 병탄과정을 보자. 일본의 조선 침탈은 당시 조선사회 전반을 교묘하고 치밀하게 옥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에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체결되었고 발효되었다. 화가 장승업 일대기에서도 알 수 있듯 오히려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의 화가나 도공 등 명인들의 작품을 고가에 사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 불과 20여년 만에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최근에 일본에서 부는 한류에 대해 마냥 좋기만 하다는 보도가 나가고 있는 동안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제정세를 분석해보면 '17세기 조선통신사 이후 최대의 한류'라며 마냥 좋아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보인다.

우리나라는 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나라로 전락했었다. 그런데 그것도 당시 태국에서 손해를 본 일본계 자본의 상환요청으로 촉발된 것이었고, 결국 채권국들의 도미노적인 외채 상환요청으로 결국 우리나라는 그 수습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공적자금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2004년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205조원이 됐고, 향후 매년 약 40조원씩 늘어난다는 예상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가 국민들의 쌈짓돈인 연기금을 동원해 '한국판 뉴딜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가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또 갑자기 튀어나온 '핵사찰'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한국의 80년대 핵실험에 대한 조사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잘루키 한국 담당관을 단장으로 한 조사단을 파견해 지난 11월 2일부터 7일까지 최종적인 3차 조사까지 마치고 돌아갔다. 이번 조사는 11월 25일 IAEA이사회에 제출할 보고서를 마무리 짓기 위한 것이었는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도 회부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이미지 실추는 물론 북핵 해결방안을 모색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그런데 미국에 의해 철저히 조사되고 마무리됐던 80년대 남한의 핵문제가 지금 시점에 다시 불거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IAEA에서 대주주 역할을 하는 일본이 지구상에서 최초로 원폭 피해를 입은 바 있었다는 과거를 빌미로 핵문제를 재론해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현재 미국과 일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밀월관계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재선을 누구보다 반겼다. 전쟁에 의해서만 국가의 운명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시 미·일 관계에 의해 한반도의 앞날이 좌지우지되는 정세로 몰려가고 있다. 그런데도 한가하게 '신조선통신사 시대'에 대한 찬가를 부르고 있을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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