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그런 도시락을 먹고도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고 쪽지를 쓴 아이들아, 정말 고맙다…그런 쪽지를 쓸 수 있는 너희들은 우리 어른들보다 한결 성숙한 인간이란다

어느 게 서귀포고 어느 게 군산인지 벌써 헷갈리지만 밥 먹을 때마다 자꾸만 그 도시락들이 떠오른다. 아무리 소박하게 먹는다 해도 가난한 아이들에 비해 지나치게 호화스럽게 먹고사는 것 같아 켕기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 너무했다. 두 도시락의 내용을 합쳐 봤자 삶은 메추리알에 맛살, 아리송한 튀김 한 쪽, 그리고 건빵 몇 쪽인 그 한심한 반찬(?)들. 누군가 착한 사람이 있어 이웃에 사는 아이들이 굶는 게 애처로워서 얄팍한 자기 주머니를 털어 선행을 베풀었다 해도 자칫 욕먹기 쉬운 그런 도시락을 나랏돈을 무려 2500원이나 타내서 마련했다니 그 욕심과 배짱이 가히 놀랍다.

핑계야 늘 널려 있지. 업체의 입장에서는 요즘 물가도 물가려니와 배달비도 계산해야 하고 거기다 이문을 빠뜨릴 수도 없지 않나, 종업원 임금도 줘야지 세금도 내야지, 그리고 가족과 함께 먹고살아야 하는 형편인데. 관할 당국으로서는 인력이 태부족인데 일단 돈 주고 맡겼으면 믿어줘야지 어떻게 일일이 감독을 할 수 있겠나.

따지고 보면 이 도시락들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보았던 도시락에 비하면 훨씬 충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오기 전 나는 아주 궁벽한 시골에서 살았다.

학교는 우리가 살던 목장의 관사에서 꼬박 한 시간을 걸어야 나타났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동네 농사꾼의 자녀들이었다.

농지가 넓은 것도 아니라 모두들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았다. 수업료로 받던 도시락 두 됫박을 못 내서 교감선생님께 뺨을 맞는 아이들이 태반이었으니까.

일 주일에 두 번인가 도시락을 싸갔는데 양은도시락에 싸온 아이들은 나를 포함해서 한 반에 서너 명이나 되었을까, 거의 다 커다란 사기 밥사발을 보자기에 싸 갖고 왔다. 반찬은? 요즘 아이들, 아니 어른들도 믿기 어렵겠지만, 수북한 보리밥 위에 박은 조그만 종지에 든 고추장이 전부였다.

그래도 불평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그 시대는 정말 가난했고 아이들은 시커먼 보리밥을 빨간 고추장에 썩썩 버무려 먹으며 잘도 커갔다. 아이들이 먹은 건 부모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이번 도시락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끙 하고 깊은 탄식이 흘러나온 까닭은 아무리 '사업'으로 하는 일이라지만 어쩌면 이렇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사랑도 엿보이지 않을까 하는 데 대한 놀라움과 아쉬움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식이라면 그런 도시락을 줬을까'라고 질타하지만 솔직히 그런 식의 말은 하나마나다. 자식 사랑에 버금갈 만한 사랑이 또 어디 있나. 그러니 왜 남의 아이들을 네 자식처럼 사랑하지 않느냐고 무리하게 주문할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같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나보다 어렵게 사는 어린 인간에게 최소한의 배려는 해 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어야 옳다.

관할 당국은 아마도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었을 혜택을 누리게 해줬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사업자는 왠지 복지업무에 동참한 것 같은 뿌듯함에 스스로 도취되어 한껏 오만해졌던 것 같다. 내 추측에 그렇다는 말이다.

양측 모두 그 도시락이 굉장한 혜택이 아니라 아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라는 데까지는 생각이 못미쳤던 거다. 아이들이 굶도록 놔둔 사회가 잘못된 거였지 이제야 겨우 아이들을 먹이는 사회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경고, 흥분 금지! 혈압이 오르고 있음)

그런 도시락을 먹고도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고 쪽지를 쓴 아이들아, 정말 고맙다.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해서건, 아니면 마음에 상처를 입고도 그걸 숨기면서건, 그런 쪽지를 쓸 수 있는 너희들은 우리 어른들보다 한결 성숙한 인간이란다. 앞으로도 그렇게 잘 자라 주기 바란다.

나아지겠지? 이런 부끄럽고 서글픈 일들이 하나 둘 고쳐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괜찮은 쪽으로 나아가겠지? 그렇게 믿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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