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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선 주

단국대학교

분자생물학전공 부교수

미국 유학시절, 나의 가장 큰 기쁨은 저명한 과학자들을 세미나를 통해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교과서에 나올 만큼 유명한 연세 지긋한 연구자를 접할 때도 감동이었지만, 이제 막 태동하는 연구로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과학자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감탄과 함께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가 솟구치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남자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연구경력에는 출산도 없을 것이고, 오랜 기간의 육아경험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 연구계의 특성 중 하나인 백인 남성 위주의 멘토 시스템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난 당시 임신으로 불러오는 배를 쳐다보며 언제 이 아이 키우고 연구경력을 쌓을까 걱정했고, 실험실에 있는 15명이나 되는 백인 남성과 경쟁하며 지도교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지도교수의 취미인 미식축구나 자동차에 대해 공부하는, 연구 외적인 노력도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싱글 맘' 틸먼 교수와의 첫 만남

그러던 어느날 프린스턴대학의 셜리 틸먼(Shirley M Tilghman) 교수가 와서 세미나를 한다는 공고가 났다. 새로운 연구영역을 개척하고 사고의 틀을 확장시키는 대단한 연구 결과였다. 무엇보다 놀랍게도, 그는 여자였다. 세미나가 끝나고 틸먼 교수와 함께 스탠퍼드대학교 바이오분야 여학생 모임을 했다. 나는 그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바이오 분야 여성 모임이라는 것이 궁금했고, 그런 훌륭한 연구를 한 여성 과학자를 개인적으로 꼭 만나고 싶어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녀는 매우 겸손하고 따뜻한 어투로 어떻게 연구경력을 개발할 것인가, 어떻게 하여 좋은 연구결과를 얻게 되었고 새로운 개념을 확립하게 되었는가 등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중 학생 하나가 “어떻게 싱글 맘(single mom)으로서 이런 좋은 연구를 하셨습니까”물었다. 그녀는 일찍 이혼하고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전 세계가 인정할 만한 연구를 한 것이다.

성차별 고민 중 해법 찾는 계기

한국에 돌아온 뒤 사이언스 잡지에서 틸먼 교수의 근황을 가끔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물론 새로운 연구영역을 개척하는 훌륭한 연구자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프린스턴대 문과 학생들도 수학과 과학을 수강하도록 유도하는 교육자의 모습이었고, 다분야를 통합한 대규모 연구소 소장인 행정가의 모습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국가적인 관심을 끌게 된 것은 98년 국립연구재단에서 주관하는 '연구자 경력 경향'에 대한 보고서의 책임자였고, 특히 여성 과학계의 대변인으로서 젊은 여성의 과학계 진출을 도모하고 효과적인 경력개발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참가했던 그 소규모 모임도 틸먼 교수의 여성 과학자 경력 개발 프로그램의 하나였고, 그 곳에서 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연구분야에서 어린아이를 가진 이혼녀도 저렇게 잘 하는데, 난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타박하고 남성 위주의 사회에 편입하려 눈치만 보고 있었는가.

2001년 틸먼 교수는 프린스턴대 255년 역사상 처음으로 총장으로 선임됐다. 나는 내 선생님이 총장이 된 것처럼 뿌듯했다. 그녀는 아직도 우수한 여성 인력이 이공계로 진입하도록 노력하고 있고, 이들이 연구경력을 착실히 쌓아 각 단계를 성공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해 주고 있다. 또한 프린스턴대 총장으로서, 영향력 있는 보직에 능력 있는 여성 교수를 배치하여 지금까지 생산적으로 활용되지 못한 인력을 배가하여 사용하는 예를 보여주고 있다.

틸먼 총장의 성공이유 세 가지

한 인터뷰에서 틸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성이면서도 성공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은 고집스럽게 인내하고 노력하는 것, 항상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것, 현실인식 능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내 일을 열심히 하는 동안에는 사회에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를 만큼 무감각했어요. 나중에 내 자리를 잡고 보니, 그때서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후속 세대의 여성을 키워주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미국 사회에도 여성 과학자 경력에는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탁월한 연구자와 훌륭한 교육자가 될 수 있고 우수한 여성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 주는 사회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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