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아이 같게만 보이던 막내는 학교와 군대와 연애와 취직의 숱한 관문을 소리 없이 혼자 넘더니 이제 드디어 결혼을 한단다…막내가 떠나면 다음부턴 명실공히 부부시대로 돌입한다. 앞으로 어떻게 둘이 싸우지 않고 재미있게 살아낼지 그게 문제다.

나는 잠꾸러기다. 친구들 말로는 나이가 들면서 잠이 확 준다고들 하는데 나는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잠이 많아 시험을 보는 대신 만약 잠을 얼마나 많이 잘 수 있나를 기준으로 등수를 매기면 1등은 무조건 내 차지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살다가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일단 잠으로 도피하는 것도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그런데 어젯밤엔 잠을 설쳤다. 자리에 누워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게 새벽 두 시가 넘어도 좀체 잠으로 빠져들지 못했다. 가끔씩 그러듯이 커피를 대여섯 잔씩 마신 것도 아니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과 상관없이 저 혼자 룰루랄라 태평성대를 누리더니 드디어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냐고?

글쎄, 심상치 않기는 한데 나쁜 쪽이 아니라 좋은 쪽의 일이다. 에이, 읽는 사람들 궁금증 자극하지 말고 그만 뜸 들여야지. 여러∼부∼운, 우리 막내가 장가를 간대요∼. 그래서 어제 그 상견례라는 걸 했답니다!

이런 실없는 여자 같으니라고, 생전 처음 상견례를 해 본 것도 아니고 생전 처음 자식 결혼시키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웬 호들갑일까 호들갑이.

그러게요.

그런데 이 세상에는 똑같은 일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정말 맞다. 어느 자식이고 부모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겠느냐만 막내는 왠지 한결 더 애틋한 존재인 것 같다. 아마 위의 아이들보다 더 나이 들어서 낳은 데다가 육아에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여 여유로운 마음으로 키울 수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엄마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막내는 거의 원시적으로(?) 키웠다. 실은 위의 두 아이를 키울 때도 요즘 젊은 엄마치고 너무 촌스럽게 키우는 게 아니냐고 어른들께 흉을 잡혔을 정도로 동물처럼 물고 빨고 했었는데 막내는 오죽했으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고마워서 그저 어쩔 줄 몰라 했었다.

언제나 아이 같게만 보이던 막내는 엄마가 이렇다 하게 키운 기억도 없는 사이 형들 따라 쑥쑥 커갔다. 학교와 군대와 연애와 취직의 숱한 관문을 소리 없이 혼자 넘더니 이제 드디어 결혼을 한단다. 나름대로의 스케줄상 당분간결혼할 틈을 못 내는 둘째 형을 추월하기로 했단다. 저희들끼리 결혼 날을 잡고 양쪽 부모들의 만남인 상견례를 마련한 것이 바로 어제였다.

기쁘고 흡족하면서도, 그리고 무엇보다 시원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가슴 한 편에서 뭉클한 것이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정말 사람 사는 거 잠깐이구나, 이렇게 금방 떠나보낼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잘해줄 걸 그랬다는, 아무 짝에도 쓰잘 데 없는 뒤늦은 후회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첫째 보낼 때도 그러더니 또 그러네. 그러니까 후회하는 사람은 밤낮 후회만 하다가 만다니까).

지난 주에 네 식구가 아주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갔었다. 둘째의 제안으로 떠난 여행이었는데 자연스럽게 막내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의례로 기억될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부모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들이 어느새 저만치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부모가 잘 따라오는지 못 따라오는지 점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야말로 세대교체를 실감했었다. 막내가 떠나면 다음부턴 명실공히 부부시대로 돌입한다. 앞으로 어떻게 둘이 싸우지 않고 재미있게 살아낼지 그게 문제다. 어젯밤 잠을 설친 이유는 바로 그 문제를 생각하느라고 머릿속이 바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 참. 여기서 소위 혼수문제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다. 잊지 마시라,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은 시어머니의 왕국이란다. 시어머니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니 나로선 마음놓고 휘두를 수밖에. 예단은 필요 없다, 젓가락 한 짝이라도 하지 마라. 예물도 없다, 금반지 하나씩 맞추어 주마.

그랬더니 아이들 대답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이 반지, 작년에 새로 맞췄걸랑요. 4주년 기념으로요”

아니, 도대체 애들 결혼시키는 일이 뭐가 힘들다고 난리들이지? 부모들은 그저 결혼식 날 잊지 말고 결혼식장에 참석하기만 하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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