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경 /

<뉴스위크>한국판 편집장

본질 꿰뚫는 시각 없이한류 열풍에 일희일비

지금이라도 냉철하게대일관계 바로 잡아야

불과 5∼6개월 전인 2004년 11월, 당시 한 유력 일간지에서는 일본을 강타하고 있는 욘사마 열풍에 흥분하며 '17세기 조선통신사 이후 최대의 한류'라는 제목으로 한류열풍에 대한 기획 특집기사를 몇 차례 나눠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기사를 보면 일본과 한국은 둘도 없는 이웃으로 더할 수 없는 우애를 나누는 맹방처럼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이때 필자는 여성신문 칼럼(2004년 11월 12일자)을 통해 지금까지 한·일관계의 역사를 짚어보며 일본은 한창 양국의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는 순간 조선 땅을 넘보는 침략행위를 서슴지 않았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분위기에서 이런 목소리는 '뜬금없게' 들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독도 사태는 이런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통신사 시대 최대 한류'라며 축제 분위기를 만들었던 이 일간지를 포함해 대다수 언론들은 이제 방향을 180도 선회한 반일적(혹은 항일적) 기사를 내보내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 독도 영유권 분쟁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최근 사태는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일본대사의 발언에서 점화됐다. 이것이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3월 16일로 독도의 날 조례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을 일본 정부가 방관하는 자세로 나가자 반일감정은 극에 달하고 있다. 국내 언론은 연일 '주한 일본대사 추방' '한·일우호의 해 재검토' '일본상품 불매운동' '대마도 한국령 캠페인' 등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한국에서 20년 이상을 보낸 산케이신문 구로다 가쓰히로 서울지국장은 3월 16일자 신문에 '한국 매스컴 다케시다(독도) 문제 연일 보도, 대일강경론 선동'이라는 서울발 기사를 내보내며 국내 언론에 대해 강력한 비난을 퍼부었다.

물론 구로다 국장의 비판에 민감하게 반응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는 일본의 극우언론인으로 지목돼 국내에서도 만만치 않은 반대세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는 것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일본 내의 한류를 아무런 경계심 없이 칭송하던 국내 언론의 태도로 보면 너무나도 대조적인 변화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상황에 따라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한 개인이 아니라 최소한 여론을 주도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언론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본질을 꿰뚫는 시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이 현상을 놓고 일희일비하며 대리만족이나 충족시키는 역할에 머무르다간 포퓰리즘의 선동가 역할이나 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한국인의 '냄비 근성'도 결국은 이런 언론의 줏대 없는 보도태도에서도 영향을 받았음직하다.

올해는 한·일 국교수립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보호조약까지 넘어가면 100주년이 된다. 이런 굴곡의 역사 속에서 앞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일본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한번쯤 냉정하게 생각하며 대처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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