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2-1.jpg

나노기술은 여성생활 곳곳에 깊숙이 침투되고 있다. 사진은 나노 파마약을 이용하여 간편하게 파마하는 장면.

10억분의 1m, 10의 마이너스 9승, 머리카락 굵기 100만분의 1. 쉽게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세계를 나타내는 '나노(nano)'.

실험실에서나 사용할 법한 이 단어가 이젠 일상용어가 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바르는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을 자세히 살피면, 나노캡슐이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뿐 아니다. 세탁기와 그 옆에 놓인 세탁용 세제에서도, 혹은 서랍 속에 굴러다니는 소화제 상자에서도 어렵지 않게 나노라는 단어가 발견된다. 무엇이든 첨단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나노'라는 단어는 도대체 무엇인가?

티끌보다 작은 '나노' 만들기

사실 '나노' 자체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센티미터(㎝)나 킬로미터(㎞)처럼 나노는 미터(m)나 그램(g) 같은 단위 앞에 붙는 접두어다. 문제는 티끌보다 작다는 이 나노를 만드는 기술이다. 나노 제조 기술은 큰 것을 맷돌에 넣고 갈 듯 작게 나누어 만드는 이른바 톱다운(Top-down) 방식과 원자 분자들을 탑 쌓듯이 조립해 만드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크게 나뉜다. '바텀업' 방식은 과학자들이 나노기술의 꽃이라 부르는 최고 경지의 기술이지만 현재는 큰 것을 쪼개서 작게 만드는 톱다운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최첨단 화장품 나노캡슐 첫선

여성들이 사용하는 화장품은 흔히 첨단 기술의 결집체라는 찬사를 받곤 하는데 최근엔 나노캡슐 기술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국내 굴지의 화장품 제조업체가 개발해 화제가 된바 있는 화장품 원료는 바로 이 나노캡슐 기술을 적용했다.

공기에 접촉하면 산화해버리는 기능성 물질을 나노크기의 캡슐 안에 넣고, 그 위에 다시 기능성 물질로 채워진 마이크로 크기의 캡슐로 감싼 이중 캡슐을 선보인 것이다. 이중 나노캡슐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피부 속으로 침투가 쉽고, 일단 침투해 필요한 부위에서 캡슐이 터짐으로써 화장품으로서의 기능을 극대화한다. 마치 시간차 공격처럼 마이크로캡슐이 피부 표면과 가까운 곳에서 터져 스며들면, 그보다 작은 나노캡슐이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구조인 것이다.

피임약·파마약·인슐린 등 활용

이렇게 시간 간격을 두고 터지도록 설계된 나노 캡슐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패치형 피임약이나 붙이는 인슐린 등에도 적용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시한폭탄처럼 터지는 캡슐 안에 인슐린이나 피임약을 담아 붙이는 약으로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10%의 약물은 피임패치를 사용한 지 3일 이내에 터지고 그 다음 10%는 3일부터 6일 사이에, 또 10%는 6일부터 9일 사이에 터지도록 하는 것이다. 캡슐이 터지면서 흘러나온 약물은 피부를 통해 몸으로 흡수되어 약효를 발휘하게 된다.

여성들의 향수를 대신해 옷감과 스카프에도 향기 나노캡슐이 심길 예정이다.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캡슐이 터져 바람에 흩날리면서 은은한 향을 풍기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스카프가 있다면, 향수를 뿌리는 번거로움도 줄어들 것이다.

로트(일명 뼈다귀) 없이 간편하게 파마를 할 수 있다는 신기한 파마약의 비밀도 바로 나노기술이다. 화학연구원이 개발한 이 파마약은 머리카락을 산화시키고 환원하는 과정에 사용되는 촉매를 수십 나노 크기로 만들어 그 효율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이 나노촉매 덕분에 파마 시간을 2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아직 낯설기만 한 나노가 어느 사이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유지영 과학뉴스 기자jyryoo@sciencenews.co.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