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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훈 '일생'(163×98cm, 종이에 혼합재료, 2004)

고영훈은 그림을 참 잘 그린다.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는 것은 화가에게 있어서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하다. 특히 실재의 대상을 묘사해내는 실력은 예로부터 화가의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왔다. 이러한 측면에 있어서 마치 사진과 같은 고영훈의 하이퍼리얼리즘(Hyper Realism) 계열의 그림은 우리 화단의 정점에 서있다. 더군다나 고영훈의 작업이 진부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작업에 대한 사색과 자연에 대한 철학이 충분히 녹여져 있기 때문이다. 정물화인 이 그림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풍부한 상상력을 일깨워주는 이유는 엉뚱하게도 꽃이 책 위에 놓임으로써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 시각적인 충격을 주며, 그로 인해 물체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게 되고 깨달음을 얻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선이자 지식의 결집체인 책 바탕 위에 자연의 상징인 꽃을 놓음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대비를 산뜻하고 경쾌하게 제시한다. 책을 휘감고 올라가는 호박넝쿨! 일생동안 우리 삶도 저마다의 꽃을 피우기 위해 그리고 각자 정해 놓은 목표를 향해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가!

극도의 수공적 노동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는 작업 성격상 다량의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는 없지만 논리적이고 현대적인 그의 조형미를 꾸준히 지켜보고 싶다.

이옥경/ 가나아트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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