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현실 정면 역행하는 '착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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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비밀도 아닌 일이지만 영화나 드라마 속 소녀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나이보다 성숙한' 컨셉트가 고집되곤 한다. 이른바 '소악마'의 이미지가 부여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바로 '나이보다 성숙한 소녀'이고, 그 아릿거리는 불균형성, 아슬아슬한 윤리·사회체계의 파괴가 바로 남성들의 도발적 심리를 꾸준히 자극해 왔던 것.

현재 새 출연영화 '댄서의 순정'의 공개를 앞두고 있는, 그리고 미디어로부터 '단 한 건의 부정적 기사'도 발생시키지 않은 소녀스타 문근영의 경우는 이 같은 '로리타형' 컨셉트에서 멀찍이 벗어나 있다. 문근영은 '착한 아이'다. 자신의 성적 가능성을 자신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듯한 그녀의 캐릭터는 사춘기 소녀로서 벌일 수 있는 도발적인 행동들을 어린아이다운 천진난만함으로 돌변시키고, 관객들이 품게 되는 그 어떤 성적 호기심도 무력화할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대체 현재의 관객들은 어째서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던 '로리타형 소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그 정반대 급부인 '착한 아이'를 선택하게 됐을까. 물론 이에 대해서는 여러 심리학적 접근이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예술작품 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면, 결국 수용자 측의 '시대의 금기'를 건드리는 쾌감 심리에서 찾아야만 할 것이다.

오늘날 원조교제, 청소년폭력, 가출 등의 사회현상이 더 이상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자기세대 통념보다 성인세계에 근접한 '로리타형 소녀'란 더 이상 아찔한 '금기'가 아니라 음울한 '현실'에 불과하고, 그것도 고개를 돌리고 싶은 현실, 잊고 싶은 현실에 속한다. 이런 세상에서 더욱 희귀하며 비밀스런 소녀상이란, 어쩌면 사회현실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는, 거의 존재하지 않을 듯한 느낌마저 드는 '착한 아이'의 캐릭터가 아닐까.

올 봄, 지난해 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은 문근영 주연 영화 '어린 신부'의 김호준 감독은 언뜻 '어린 신부'와 전략적 측면에서 흡사해 보이는 중학생 소녀의 임신 이야기 '제니, 주노'를 공개했다. 그러나 '제니, 주노'는 '어린 신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흥행에 대 참패했고, 많은 이들은 그 원인을 '스타의 부재'로 꼽기도 했지만, 이는 문근영 캐릭터의 원천에 대해 생각해 보면 오히려 더욱 간단히 이해될 일이다.

'어린 신부'에서 문근영의 캐릭터는 '결혼'이라는 성인적 상황에 대해 철저히 저항하며 자신의 '소녀성'을 지켜낸다. 그러나 '제니, 주노'는 그 정반대로 중학생이라는 미성년적 상황에 놓여있었을 뿐인데도 '임신'이라는 성인적 상황을 자신이 만들어내고야 만다. 같은 '미소녀'의 이야기더라도 정반대의 컨셉트, 정반대의 접근으로 관객에게 다가섰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문근영의 신작 '댄서의 순정'은 과연 문근영 캐릭터의 성공비결을 잘 꿰고 있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사교댄스라는 지극히 성인적이며 퇴폐적인 아이템을 떠 안게 된 연변처녀 문근영이 자신의 '소녀성'을 착실히 지켜내는 과정을 다뤄 '어린 신부'의 '유예처녀 신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 문근영의 스타성이 그녀가 성인이 되어감과 동시에 위협받게 되리라는 전망은, 결국 그녀의 '외모'나 '연기력' 차원이 아니라, 이처럼 영원히 고집할 수만은 없는 꽤 억지스런 '컨셉트'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문원/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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