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연극·서울연극제 개막작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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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재 삼은 문제작, 12일까지 대학로 학전블루서

위안부 할머니들, 작가, 연출자 관객 만나는 자리도 마련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한·일 양국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현재,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위안부 소재의 연극이 화제 속에 공연되고 있다.

제26회 서울연극제 개막작으로 5월 12일까지 학전블루 소극장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나비'(영어제목 '위안부, Comfort Women')가 바로 그것. 재미 극작가 김정미씨가 10년 전 친구로부터 건네 받은 증언집('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 위안부들' 한국정신대연구소) 한 권이 이 작품의 시작점이 됐다. 증언집을 읽고 충격을 받은 김씨는 위안부 이야기를 작품으로 옮겼다. 그의 희곡은 드라마지만 집필 과정에서 만난 '나눔의 집' 할머니들과 증언집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재구성해 극적 재미와 감동, 충격적인 작품이 됐다.

'나비'는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에서 시작한다. 딸 내외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 퀸스에 살고 있는 김윤이 할머니. 김 할머니는 미국으로 이민와 10년이 다 되도록 자신만의 방에서 외부세계와 단절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런 할머니를 안타깝게 여긴 손녀 지나가 박순자, 이복희 할머니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이들은 위안부였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온 세계에 알리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것이다. 그런데 두 할머니를 만난 김 할머니는 이들과의 만남은커녕 대화조차 하길 꺼린다.

김 할머니의 오빠가 일본군에 징용되었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박 할머니는 김 할머니에게 일본으로부터 배상을 받아내는 탄원서에 서명하기를 권하는데 김 할머니는 신경질적으로 이를 거부한다. 박 할머니와 이 할머니가 위안부로 겪은 고통을 증언하자 김 할머니의 히스테리 증세는 극도로 심각해지고 손녀 지나는 진실을 외면하는 할머니를 수치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이 할머니에 의해 50년 동안 숨겨진 중대한 진실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는 작가 김정미씨의 슬픈 가족사도 일부 포함됐다. 또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창작돼 보는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처음으로 위안부 할머니 연기에 도전하는 세 명의 여주인공도 오랜 시간에 걸친 자료조사와 공부,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만남으로 그들이 겪은 고통을 무대 위에서 토해낼 수 있게 됐다.

박순자 할머니 역을 맡은 조한희(51)씨는 “우리 모두 이 작품을 준비하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는 그들의 고통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과거의 비밀을 안고 괴로워하는 김윤이 할머니 역을 맡은 김용선(49)씨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수요시위에도 처음 참가해 봤다”면서 “월드컵 때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인원이 수요시위에 참여했다면 벌써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냈을 것”이라고 분노했다. 김윤이 할머니의 과거를 들춰내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이복희 할머니를 연기한 윤혜영(37)씨는 “한 명에게 강간을 당해도 그 상처가 평생을 가는데 할머니들은 어떻겠어요?”라면서 “전쟁의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이지만 이 분들은 아마 세계적으로 최대 피해자일 것”이라고 통탄했다.

연극 '나비'는 95년 남가주대학(USC)이 주최한 단막극제에서 대상을 탄 이후, 99년엔 장막극으로 손질해 '하나코(HANAKO)'라는 제목으로 LA 공연을 가졌다. 지난해 11월에는 세계의 연극인과 희곡작가들이 동경하는 오프 브로드웨이 어번 스테이지 극장에서 공연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김정미씨는 일본의 만행을 미국 주류사회에 알린다는 취지로 작품제목을'Comfort Women(위안부)'으로 바꿨다.

문의: 02-765-4953 월∼금 오후 7시30분, 토·공휴일 오후3시·6시, 일요일 오후4시 1만2000∼2만원

한정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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