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란이 만난 지구촌 여성들] (1) 연재를 시작하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면 좋은 날은 꼭 온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 단순함과 순진함을 무기 삼아 나는 지난 15년간 세상을 헤집고 다녔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것을 보았다. 망설임 없이 달려온 세월은 경험이 되었고 심리적인 당당함도 주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알지 못하는 나라를 찾아가던 날의 막막함이나 죽음을 처음 봤던 날의 공포 같은 건 이젠 없다. 집을 나서면 길을 잃을 것을 먼저 걱정하는 나에게 ‘분쟁전문’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타이틀이 붙어 다니게 되었다.

‘위험하지 않으냐? 두렵지 않으냐? 여자이기 때문에 힘들진 않으냐?’ 사람들은 인사말처럼 내게 물어온다. 전쟁터를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위험하지 않다고, 두렵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공포 때문에 비굴해져 봤고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그 자리에서 그냥 죽었으면 원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총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정말 힘든 건 ‘사람’이었다. 정복하고 파괴하고 죽이는 먹이사슬의 정상에 선 인간, 생존본능만 남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독기가 나는 가장 무서웠다.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으리라, 다시는 이 곳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수없이 결심하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전쟁터를 찾아다닌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이익을 좇아 이합집산을 되풀이하는 배반과 불확실의 공간에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타인을 배려하고 나누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 초월하는 분쟁지역 어머니들의 희망

그들은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치욕으로 느끼지 않게 해주었고 이 세상을 미워하지 않게 해주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고통의 이야기만 취재하면서도 나는 행복할 수 있었다.

오래 전 팔레스타인에서 한 어머니를 만났다. 25세의 아들은 자살폭탄을 메고 이스라엘 정착촌으로 들어가 자폭해 버렸고 이스라엘 군인들은 다이너마이트로 이들의 집을 폭파함으로써 보복했다. 막 두 돌을 넘긴 손자와 젊디젊은 며느리를 부둥켜안고 무너진 집만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신이 문 하나를 닫을 땐 다른 문을 열어 주신다’ 침조차 말라버려 허옇게 딱지가 붙은 입으로 어머니는 오래 오래 그 말을 반복했다. 그것은 고통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의 삶의 지혜였고 희망에 대한 갈구였다. 그런데 그 팔레스타인 어머니의 희망이 나에겐 절망이었다. 어머니의 그 간절함이 나에겐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 할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남성이 벌인 전쟁, 후유증은 여성 몫

‘여성신문’에서 내가 만난 세계의 여성에 대한 연재를 부탁해 왔을 때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보잘것없는 내 삶을 드러내고자 함은 아니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어머니의 고통을 나눠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절절해 나 혼자만의 가슴에 묻어 버릴 수 없었던 세상의 고통들, 내가 그 일부가 아님이 그렇게 서운할 수 없었던 환희의 순간들, 태어나고 죽고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지만 너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지 못했기에 놓쳐 버렸던 수많은 순간들을, 삶의 숙제들을 함께 고민할 친구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이면서도 여자이길 부정하면서 살았다. 여성의 여성과의 연대, 그런 말들을 코웃음으로 흘려보내곤 했었다. 여성문제 운운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일 뿐, 여성이라고 뭐 특별히 더 힘들다고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터에서는 그런 부정이 불가능했다. 고통은 도처에 있었고 눈 감는다고 외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전쟁은 남성들이 만든 논리에 의해 남자들이 만들어 가는 게임이다. 하지만 그 희생은 고스란히 여성들의 몫이다. 자신을 보호할 힘이 없는 여성들은 총알과 폭탄과 강간의 희생자가 된다. 파괴된 사회의 부담을 져야 하는 것도 여성이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돌봐야 하는 아이들은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일자리는 없고,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전쟁터에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여자들의 고통을 남자들은 알지 못한다.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어머니를 사회는 돌팔매질한다. 아들의 주검을 안고 통곡하는 어미의 마음을, 남편의 부재를 견뎌야 하는 아내의 절망을 사회는 방관할 뿐이다. 나도 그들을 몰랐었다.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전선에서 화장실을 찾아 고민하고, 언제 어디서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긴장의 순간에 갑자기 생리가 시작되는 당혹스런 경험을 하고, 테러집단의 인질로 잡혀 남자들의 목소리가 모두 공포로만 느껴지는 몇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여성으로서 그들이 살아내야 하는 삶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고 같은 여성으로서의 동질감과 연대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여성들, 연대해 현실고통 극복 노력

나는 소심하고 겁 많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여성운동가도 아니고 여성의식이 투철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40대 한국 여자일 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회가 있어 다른 사람은 갈 수 없고 볼 수 없었던 것을 좀 더 많이 보았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도 많지만 나보다 더 불행하고 더 힘든 사람도 많다는 것을, 비록 하찮은 존재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지라는 것을….

10년을 훌쩍 넘겨버린 분쟁지역 취재를 통해 내가 느꼈던 많은 것들을 이제 독자들과 함께 하고 싶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창문 하나를 더 만들어 가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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