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본 나라살림]

정보화 사회에서 시간은 물질이고 생산성이며, 돈이다.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할수록 부가 더욱 창출된다. 또한 시간은 곧 자유다. 시간을 소유하는 자는 자유를 향유한다. 그런데 아니러니하게도 가족에서 삶의 경험은 정보화 사회의 시간의 개념과는 정반대를 경험하게 한다. 출산과 양육 속에서, 환자와 노인들의 보살핌 속에서 여성들이 사용해 온 시간은 느리게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사랑이라는 추상적이고, 비생산적이며, 또 경제적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가족에서의 노동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에서는 많은 것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짜여 있기 때문에 가사와 양육은 부자유로 경험되기도 한다. 이처럼 사회에서의 시간과 가족에서의 시간은 대립적이고, 양자의 시간은 모순된 관계에 놓인다.

실제로 가정과 직장의 양립은 어린 자녀를 키우는 젊은 가족에게는 시간의 문제로 나타난다. 직장을 다니면서 자녀를 키우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나 진배없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지난 다음에도 자녀들은 부모를 원한다. 직장 노동시간이 길고, 노동시간이 탄력적이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은 장시간 적절한 보살핌과 가족으로서의 함께함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위하여 보육시간을 끝없이 늘리겠다는 것은 그리 가족친화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어린아이들이 보육시설에서 10시간, 12시간 있는 것을 상상해 보라. 직장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겁지겁 달려가는 사람 또한 늘 대부분 어머니이다. 아이들은 사랑과 관심을 받을 시간이 필요하고, 부모들도 자녀들에게 사랑과 보살핌을 줄 시간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것은 사회가 가족을 위해 사용되는 느린 시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부모 모두에게 보장(또는 강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직장 일을 다 하고 난 다음 자투리 시간에 돌보아지는 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가족을 위한 시간을 다시 보는 것은 보육시설이나 각종 경제적 지원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또 다른 방법론적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은 정보화 사회에서 요구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시간을 원하고 있으며, 이 두 가지 종류의 시간을 함께 보며, 양립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정책이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따라서 정책은 시간의 개념을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여성과 남성이 가족의 유지를 위해 쓰고 있는 시간을 분석하여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일에서부터 가사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경제적 가치에 대한 위성계정을 만드는 일, 노동시간의 효율적 관리와 탄력화, 그리고 육아휴직 기간의 양성 평등적 배분 등 성 역할에 가려진 시간들을 성 인지적으로 드러내줄 새로운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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