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니메일] (78)

아무리 간소해도 잔치는 역시 잔치다. 한 열흘을 줄곧 잔치 분위기에 빠져 살았다. 이런 것이 사람 사는 재미인 것도 같고, 이렇게 삶의 한 고비 한 고비를 넘다 보면 어느 새 나의 대장정도 끝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좀 오버해서 말하면 이렇듯 인생의 진수를 만끽하는 동안에도, 나의 뇌 한 귀퉁이에는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의 끝 무렵에 들었던 두 개의 뉴스가 우울한 잔향으로 남아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혔다.

하나는 우울증을 앓던 64세의 여성이 치매에 걸린 85세 된 어머니 손을 잡고 전동차에 뛰어 들었다는 뉴스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노인전문요양원에서 간병인이 노인 환자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뉴스였다.

둘 다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당뇨 합병증으로 3년을 고생하시다가 일흔 아홉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만약 더 오래 사셨다면 치매에 걸리셨을지도 모를 일인 데다 중풍으로 13년을 누워 지내시다가 아흔 셋에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생의 마지막 2년을 노인전문요양원에서 지내셨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둘러보는 한 인터넷 매체에선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중년 딸의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다. 다른 가족과 함께 짐을 나누다가 우여곡절 끝에 요즘은 혼자 모시는데, 그러면서도 바깥일을 해야 하는 처지인지라 하루하루를 살얼음을 딛는 듯 위태롭게 살아가는 내용이다. 딸이 워낙 씩씩해서 아직은 꿋꿋하게 버티고 있지만 상황 자체가 낙관을 불허하기 때문에 나는 그 글을 읽을 때마다 저절로 한숨을 토하게 된다.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이 곤경을 겪고 있는데 나는 그냥 편안히 앉아서 컴퓨터나 들여다보고 있구나.

에라, 오지랖 넓게 한번 나서볼까. 어머니를 혼자 떠맡지 말고 어디 적당한 곳에 모실 의향이 없느냐고 넌지시 권해 보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남의 속도 모르느냐, 그럴 돈이 있으면 진즉에 모셨지 이러고 살겠느냐, 일까, 아니면 내 사랑하는 어머니를 그런 곳에 모시다니 자식으로서 절대로 못할 짓이다, 끝까지 가보겠다, 일까.

아무려나 혹시 노인전문요양원에 모시려는 마음이 쬐꼼 일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노인을 때리고 발로 차고 질질 끄는 그 엽기적인 뉴스를 보고들은 다음에야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무료도 아닌 데다 종교기관에서 운영한다는 곳이 저럴진대 그냥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라면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겠느냐고 아예 포기하겠지.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결정할 때까지 큰동서와 나는 며느리로서의 죄책감과 상호 간의 신경전을 겪느라 둘 다 탈진 상태였다. 그러나 유전자는 이기적이라고 했던가. 두 사람 모두 몸이 안 좋았기 때문에 이럴 수밖에 없노라고 눈을 질끈 감았다(그리고 채 1년도 안 돼 큰동서는 세상을 떴고 나는 서서히 회복되어 갔다).

사찰에서 운영하는 그 요양원은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는 곳이었고 간병인들(하나같이 중년 여성들로 간병하는 솜씨가 탁월했다)의 표정은 보살처럼 환했다. 나는 속으로 혹시 요양원 측에서 이들에게 신앙을 핑계로 일방적인 헌신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 가난한 여성 가장임이 분명한 이들은 중노동의 대가로 과연 얼마를 받을까 궁금했지만 발설할 수는 없었다. 그저 간병인들의 얼굴이 지나치게 자주 바뀌는 현상에서 이들에 대한 처우를 대충 짐작할 뿐이었다.

뉴스를 접한 순간 나는 혹시 나의 시어머니에게도? 라는 의혹이 꿈틀대는 걸 느꼈다. 그런 느낌이 잔치 분위기에서도 불쑥불쑥 되살아나 나를 우울하게 만든 거였다. 짧은 기쁨에 긴 서글픔, 그게 우리 삶의 정체라면 기쁠 수 있을 때 한껏 기뻐하며 살자는 생각도 새삼 들었다.

그런데, 모두 다 외면하고프겠지만 섬뜩한 현실. 그건 치매 걸린 어머니나 우울증의 딸이나 요양원의 노인이나 폭력을 쓴 간병인이나 모두 여자들이라는 것. 유병장수시대, 남성도 물론 그렇지만 여성의 삶은 한층 더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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