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성스런 엄마들의 유별난 아이 사랑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아이에 대한 헌신의 정도가 말 그대로 슈퍼 울트라 메가톤급이다. 아기를 위해 원정 출산도 마다 않고, 생활비의 50% 이상을 교육에 투자하는 엄마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생활은 아예 포기한 채 아이에게만 ‘올인’하는 엄마도 많다. 그런 엄마들과 나를 객관적인 기준으로 비교 평가한다면 나는 그 엄마들의 발뒤꿈치도 못 쫓아가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일하는 엄마니까 애당초 아이와 보내는 시간부터 너무 차이가 나서 다른 건 따져보나 마나다. 처음 출산휴가를 마치고 출근할 때는 그런 것들이 너무 마음에 걸려 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아이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너무나 당연히 내 사랑이 부족한 탓이 돼버렸다. 그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이 제대로 안 되면 회사 일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더 쓰지 못하는 내 탓인 것만 같아 늘 마음이 불편했다.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도무지 답이 나오질 않았다. 주변에 널린 수많은 교육 기관들과 학습지, 교육 전문가의 주장들 중 제대로 된 선택을 하는 것은 엄마의 몫인데 그건 내 인생관과 가치관을 돌아보게 할만큼 어려운 숙제로 느껴졌다.
요즘 직장인들에게 인기 있는 성공의 지침서들은 모두 ‘멘토’를 찾으라고 강조한다. 아직도 고민 중이긴 하지만 지금 육아에 대한 내 고민이 한결 가벼워진 것은 바로 ‘멘토’ 덕이다. 나의 멘토는 나보다 먼저 아이를 키우기 시작해 나보다 몇 걸음 앞선 고민을 하는 대학 동창이다.
“엄마가 행복하지 못한 육아가 과연 아이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남들이 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아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해보자”는 그 친구의 얘기를 들었을 때 뿌옇게 흐렸던 시야가 비로소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문제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내 아이니까 엄마가 원하는 대로 키우는 것이 무조건 옳은 일도 아니다. 지금 내 상황과 조건에서 나도 행복하고 아이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부단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 엄마들이 육아에 쏟는 시간과 노력의 가치를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지만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려는 엄마들의 노력은 실험실에서 연구를 거듭하는 학자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일은 우리 사회의 행복한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더 이상 아이를 키우는 일로 미안함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미안함보다 함께 하는 시간들을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고, 내가 피곤하고 힘들 땐 아이에게 양해를 구할 줄 아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그것이 3년이란 길지 않은 육아의 과정에서 내가 연구하고 실험하며 얻은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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