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란의 시린 에바디와 노벨평화상

지난 2003년 노벨위원회는 이란의 인권 변호사 시린 에바디에게 평화상을 수여했다.
“시린 에바디는 변호사, 판사, 교수, 작가 그리고 인권운동가로서 이란 내에서 뿐 아니라 국경을 초월해 분명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혀왔다. 시린 에바디는 건전한 전문인으로서, 용기 있는 한 인간으로서, 어떤 위협에도 결코 머리 숙이지 않았다”
노벨위원회가 시린 에바디에게 평화상을 수여한 이유다.

“용기있는 한 인간으로, 어떤 위협에도 머리 숙이지 않아”

시린 에바디의 평화상 수상은 102년 노벨상 역사에서 처음으로 무슬림 여성이 시상식장의 붉은 계단을 밟은 역사적인 사건이었지만 정작 이란 내에선 그녀의 수상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거리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린 에바디가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시린 에바디의 노벨상 수상은 이란 내에선 정치적 이슈였다. 개혁세력들은 그녀의 수상을 이란의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환영했지만 보수성향의 언론들은 시린 에바디가 ‘외세의 지원을 받아 이슬람의 정치체제를 해체하는 적’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란의 인권문제는 이란인 스스로가 풀어가야 할 문제이지 외국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시린 에바디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석유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다음 공격 목표를 이란으로 삼기 위한 빌미로 시린 에바디를 내세워 이란의 인권문제를 들먹이며 내정을 간섭하려 한다는 것이다.
알-자하라 대학은 이란에서 손꼽히는 명문 여자대학이다. 노벨상 시상식 일 주일 전, 이곳에선 시린 에바디의 강연회가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교문은 검은 차도르를 입은 학생들에게 점거당했다.
“시린 에바디는 미국의 하수인, 이곳을 떠나라” “시린 에바디는 이슬람의 가치를 모독하는 적이다”
학생들은 히잡을 벗은 시린 에바디의 사진을 들고 나와 연좌시위를 벌였다. 그녀들이 시린 에바디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히잡이었다.
“히잡은 이란의 법으로 요구되는 것이므로 이란 내에서는 존중되어져야 하지만 이란을 벗어난 곳에서는 히잡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법률가 시린 에바디의 히잡에 대한 생각은 종교가 아니라 법의 테두리에서 이해되어졌고 결국 그녀는 노벨상 시상식장에도 히잡을 하지 않은 맨 머리로 올랐다. 그것이 이란의 여성들을 분노시켰다.
“시린 에바디는 기회주의자다. 히잡은 무슬림이 지켜야 할 절대가치이지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기고서야 간신히 강연회장에 나타난 시린 에바디는 그녀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야유 앞에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수많은 달걀 세례를 받으며 뒷문으로 도망쳐 나가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명문 여대에서의 강연, 학생들에게 야유당하는 수난도 겪어

나르게스의 집 거실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의 축하를 받으며 활짝 웃고 있는 시린 에바디의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다. 그녀에게 시린 에바디의 웃음은 암울한 현실을 헤쳐나갈 한 줄기 빛이다.
“시린 에바디가 이란의 인권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줄 것을 기대합니다”
나르게스는 작가 타기 라흐마니의 아내다. 이란에서 손꼽히는 비평가이기도 한 그녀의 남편은 체제 비판의 글 때문에 종신형을 선고받고 투옥 중이다. 이란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정치범 중 한 명인 아가자리 교수의 아내 자히라에게도 시린 에바디는 희망이다. 테헤란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아가자리 교수는 체제 비판 발언과 집필 활동이 문제가 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학생들과 시민의 계속되는 항의시위에 결국 사법부는 종신형으로 그의 형량을 줄였지만 정치범 아가자리 교수의 존재는 억압받는 인권의 대명사가 되었다. 시린 에바디는 그의 변호를 맡고 있다.
“남편을 면회하기 위해 매주 300㎞나 떨어진 먼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고도 교도소 측과의 긴 입다툼 끝에야 겨우 면회가 가능합니다. 시린 에바디의 노벨상 수상이 남편을 석방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남편이 처한 현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나세르 호스르 어린이집은 결손가정이나 거리의 아이들, 아프간 난민 자녀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다. 시린 에바디는 아동학대 등 어린이집 아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다. 2년째 어린이집에서 공부하고 있는 여덟 살 자히라도 시린 에바디의 도움이 절실하다.
자히라는 호적이 없어 정규학교에 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탈영병이라 혼인신고를 못한 부모는 자히라의 출생신고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마약소지 혐의로 감옥에 가 있고 돌봐야 하는 자식은 셋이나 되는데, 직업도 돈도 없는 자히라의 어머니는 사는 것에 지쳐 있었다.
“처녀시절에는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것도 참 많았습니다. 만약 공부를 했다면 지금쯤 그 꿈 중 하나는 이루었겠죠. 직업도 확실치 않은 자히라 아버지 같은 남자와 결혼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보통 여성들이 꿈꾸는 삶의 모델이고 딸의 미래 모습

배우지 못했기에 겪어야 하는 비참한 현실을 딸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는 자히라를 학교에 보내려 했지만 출생신고를 못해 불가능했다. 어머니 호적에 자히라의 이름을 올리려고도 해 봤지만 이란의 법이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온 곳이 나세르 호스르 어린이집이었다.
이곳에선 초등학교 교과과정만 가르치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공부를 할 수 없는 것이 문제지만 시린 에바디가 진행 중인 여성관련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면 자히라의 호적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 대학도 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어머니는 버리지 않는다.
“자히라는 결혼시키지 않겠습니다. 공부해 경제적으로 독립하길 바랍니다. 자신의 꿈을 펼치며 살았으면 합니다”
자히라의 어머니에게 시린 에바디는 자신이 살지 못한 삶의 모델이고 딸의 미래였다.
어린 시절,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숭고한 인간애의 상징이라 배웠던 노벨평화상.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노벨평화상의 의미를 믿지 않는다. 수상자들이 인류의 발전과 평화 정착의 귀감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서구인들의 가치 판단과 정치적 타협에 의해 수상자가 결정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상’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숨은 고귀한 영혼들을 수없이 봐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시린 에바디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자격이 있는지, 그녀를 수상자로 선정한 배경이 무엇인지, 세상에서 떠들어대는 이야기에 나는 별 관심이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상이 그녀에게 주어짐으로써 힘을 얻게 된 많은 사람의 존재다. 정치범 가족들에게, 종교와 전통의 굴레에 갇혀 사는 여성들에게,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준 꿈과 희망이 시린 에바디가 노벨상을 수상한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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