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첫 노벨생리의학상 게르티 테레사 코리

체코 프라하 태생인 게르티 테레사 코리(Gerty Theresa Cori, 1896∼1957)는 남편 칼 페르디난드 코리와 함께 글리코겐이 포도당으로 전환되는 화학적 변화를 발견해, 47년 아르헨티나의 B A 우사이와 함께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최초의 여성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그는 의사이자 약리학자인 동갑내기 남편 칼과 함께 25년간 동물 조직에서의 탄수화물 물질대사와 효소의 기능을 연구했다.
코리 부부는 1922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 버펄로의 퇴행성 질환 연구소의 연구원이 됐으며, 1931년부터는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의과대학 병리학교실로 옮겨 남편은 연구원으로, 그는 저임금의 연구보조원으로 일했다. 16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1947년 51세의 게르티 코리는 노벨상 수상과 함께 워싱턴대학의 생화학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실험실에서 함께 일하던 젊은 과학자들 중에는 장래 노벨상 수상자가 6명이나 끼어있었다.
코리 부부는 탄수화물의 대사, 특히 해당(解糖)에 관해 연구하던 중 중간 생성물 ‘글루코오스-1-인산’을 분리해냈다. 1936년에는 자신들의 이름을 본떠서 명명한 ‘코리 에스테르(Cori ester)’라는 활성 물질을 발견했다. 코리에스테르는 글리코겐이 간에서 글루코오스(포도당)로서 분해되어 혈액을 따라 각 세포에 운반되도록 하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코리는 근육조직의 글루코오스에서 생성된 젖산이 간에 운반되어 일부는 산화 분해되고, 일부는 글리코겐으로 전환되어 저장된다는 것을 밝혔다. 1943년에는 글리코겐의 합성에 성공했다.
이들 부부팀은 첫 논문부터 시작해 늘 함께 연구를 해온 파트너로서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 중 가장 오랫동안 가장 긴밀한 유대를 가지고 기초과학 부문의 연구를 진척시킨 부부학자이다. 이들의 완벽한 파트너십은 ‘한 사람이 어떤 사고의 틀을 짜면 다른 사람은 그 틀을 더욱 알차고 멋지게 가꾸어 결국에는 그 생각을 맨 처음 한 사람에게 되돌려주어 그가 그 사고를 완성할 수 있게 했다’고 표현되고 있다.
과학자로서 성공한 여성들 뒤에는 대체로 남자가 있었다. 칼 코리는 버펄로 연구소 재직 중 인근의 한 대학으로부터 좋은 대우의 일자리를 제안 받았다. 하지만 자리를 옮길 경우 아내와의 공동 연구를 포기해야 했기에 그는 잠시 갈등하다가 그 제안을 거절하여 학자로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저버렸다. 기초과학 연구에 장인정신을 가지고 고집스럽게 일생을 헌신한 게르티 코리는 57년 61세의 나이에 신장병으로 사망했다. 게르티 코리의 학자적 그리고 개인적인 철학은 ‘내가 믿는 이것’이란 표제를 가진 음반에 잘 담겨 남아 있으며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성실함은 격상된 정신세계, 용기와 친절함을 갖게 하는 데 가장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일을 사랑하는가? 나 자신이 행복하기 위한 기본적인 것들을 일이 주기 때문이다. 연구자에게는 일생을 두고 드물게 찾아오는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바로 온 정열을 다해 오랫동안 해온 일을 마무리지을 때, 그로 인해 자연의 신비를 한 꺼풀 벗겨내어 혼란스럽던 무언가가 투명한 빛 속에서 아름다운 구조로 나타나 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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