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칼럼은 여성신문이 제정한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 지도자상’(미지상) 수상자들의 기고문이다. 이번 순서는 여성적 글쓰기를 통해 여성운동을 펼치고 있는 정희진 여성학자다.

현행 징병제는 한국전쟁 이후 확립된 국민개병주의에 근거한 것이다. ‘국민개병(國民皆兵)’. 글자 글대로 모든 국민이 군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이나 장애인은 국민이 아니게 된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시민권(성원권) 개념은 군사화되어 있다. 최근 사회운동가들의 노력으로 대체 복무제, 모병제 등이 징병제에 대한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주로 ‘보살핌 노동’을 공공화(公共化)하는 대체 복무제와 달리, 모병제는 징병제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모병제보다는 징병제가 ‘낫다’고 생각한다.

여성을 포함해 원하는 사람만 군대에 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병제를 실시한 국가 중에서 여성이 군인이 되어 시민권을 갖게 된 사회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남성성을 숭배하는 군대 자체의 구조 때문이다. ‘모병제를 통한 양성평등’이라는 골치 아픈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모병제는 크게 세 가지 점에서 대단히 문제다.

모병제는 ‘필요악’이라는 위선과 모순의 사회 심리에서 나온 것이다. 즉, ‘더럽지만 필요한 노동(dirty work)을 누가 할 것인가’의 문제다. 지원자들로 군대를 유지하게 되면, 미국처럼 가난하고 사회적 자원이 없는 이들로 집단이 구성될 확률이 높다. 계급, 학력(벌), 성별, 지역 등 동일한 정체성이나 비슷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로만 구성된 동성 집단(homosocial)은 그것이 학교든 회사든 건강한 조직이 되기 어렵다.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징병제는 원하든 원치 않든 가족을 군대에 보내야 하므로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군대문제나 전쟁의 고통으로부터 절연될 수 없고, 사회적 관심을 갖게 된다. 직업군인이나 모병제로 군대에 들어간 사람들은 특진과 포상금, 휴가 등 각종 혜택의 유혹과 정체성의 사회적 확인 때문에 전쟁을 원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징병제는 그나마 군대의 공격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모병제는 징병제보다 군의 전문화에 유리한 제도다. 태생적으로 ‘전쟁과 폭력을 목표로 하는’ 군대는 최대한 전문화되어서는 안 되는 조직이다.

모병제는 군대의 민영화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이라크전은 미국 빈민과 세계의 기민(棄民)들에 의해 수행된 대표적인 전쟁이다. 현재 네팔 등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고용된 군사청부회사(Private Military Companies)의 ‘직원’ 2만여 명이 이라크에 파견되어 있다.

회사 직원들은 민간인 신분이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군대 업무다.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네팔은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았지만, 네팔 청년들은 군사청부회사 직원으로 이라크에서 ‘근무’한다. 군대를 독점해 왔던 국가가 군대청부회사를 지원하고 전투원을 양성하는 상황, 폭력의 민영화가 자본주의 원리로 합법화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손에 피 묻히는 일’을 ‘자처’하게 되는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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