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 남자에 대한 관음적 시선·성적 체위 등 여성 대상화 ‘한계’ 못 벗어

‘왕의 남자’와 ‘음란서생’ 섹슈얼리티, 새로운 해석

퓨전 사극 ‘왕의 남자’가 지난 11일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하고 영화계 최고 흥행기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가운데 같은 장르의 ‘음란서생’이 23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왕을 둘러싼 인물들을 다루고 있어 ‘왕의 남자’와 ‘왕의 여자’로 비교되기도 하는 두 작품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시도다. ‘왕의 남자’는 모성애(연산군-장녹수)와 동성애(연산군-공길)를 적절히 조합하고 있으며 ‘음란서생’은 오르가슴과 성적 체위 등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을 보여준다.

‘왕의 남자’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동성애적 코드의 주인공으로서 ‘예쁜 남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공길 역의 이준기이다. 공길은 장생(감우성)과 연산군(정진영), 연산군과 장녹수(강성연)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이루는 중심인물로 여성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등장한다. 그동안 동성애를 다룬 ‘로드 무비’ 등의 영화가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했던 탓에 ‘왕의 남자’의 흥행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수연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원은 이에 대해 “동성애의 표현이 우정을 가장하며 흐릿하게 표현돼 이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기 때문”이라며 “공길은 남성이지만 여성적인 존재로서 관음적 시선의 대상이 된다”고 해석했다. 유지나 영화평론가는 “‘왕의 남자’ 속 섹슈얼리티는 인간에 대한 연민의 표현인 ‘유사동성애’”라고 정의했다. ‘왕의 남자’에서 나타나는 동성애는 소수자로서의 삶을 다룬 다른 영화와 달리 여장 남자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며 성의 또 다른 상품화를 조장한다는 것. 그는 또한 “이준기의 ‘예쁜 남자’ 신드롬은 가부장제에 의해 거세됐던 ‘아니마’(anima, 남성 내면에 존재하는 여성적 본능)가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왕의 남자’의 사극 열풍을 이어갈 영화로 꼽히는 ‘음란서생’은 몰락한 사대부 집안의 자제인 소심한 문장가 김윤서(한석규)가 우연히 시전 거리에서 본 음란소설을 접하고 억눌려 있던 욕망을 분출해 당대 최고의 음란소설 작가가 된다는 내용.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허울을 풍자하면서 왕의 후궁과 관리와의 금지된 사랑도 그리고 있다.

‘음란서생’은 탄탄한 각본과 배우들의 연기, 의상과 미술 등으로 평단의 호응을 얻고 있지만 남성 중심적인 시선을 통해 섹슈얼리티를 표현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남성들이 여성의 성적 만족에 대해 그들의 시선으로 표현하는 부분이나 절정에 오른 여성의 표정을 흉내내는 이광헌(이범수)의 모습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음란서생’은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코미디라는 장르로 포장한 영화”라면서 “성행위의 체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남성들을 모델로 삼은 것은 ‘여성을 대상화’한다는 비판을 피하려는 일종의 장치”라고 지적했다. 옥선희 영화평론가는 “남성에게 이용당하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복수를 포기해버리는 정빈(김민정)은 남성들의 착한 여자 콤플렉스를 보여주는 단순화된 캐릭터”라고 말했다.

이들 두 영화는 조선시대라는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시대에 억눌린 섹슈얼리티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신한 시도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성을 남성의 시선으로 재단하고 대상화하면서 성의 주체가 아닌 피사체로서 그리는 등 여전히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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