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잡링크, 네티즌 1156명 대상 설문조사

삼성이 사회에 내놓은 8000억 원의 용처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여성 네티즌들은 ‘빈곤·저소득층의 교육지원과 실업’ 분야에 지원이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신문과 취업포털 잡링크가 2월 24∼27일 남녀 네티즌 1156명(여성 684명, 남성 4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삼성 8000억 원 어디에 쓰면 좋을까?’ 설문조사 결과 여성 응답자들은 빈곤·저소득층 교육 지원(42.1%), 청년실업 해소(41.7%), 교육 양극화 해소 사업(32.3%) 순으로 답했으며, 남성은 청년실업 해소(46%), 생명공학(BT) 연구(35.4%), 빈곤·저소득층 교육 지원(32%) 순으로 답해 차이를 보였다.

전체적으로는 청년실업 해소(43.4%), 빈곤·저소득층 교육 지원(38%), 교육 양극화 해소사업(31.7%), BT연구(31.3%)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년실업 해소’는 30대(빈곤·저소득층 교육지원, 40.7%)를 제외한 남녀 전 연령층에서 고른 지지(평균 44.15%)를 얻어 사회적 관심도를 반영했다.

한편 양성평등 사업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20.6%에 달했는데, 여성(22.4%, 남성 18%)과 대학원 졸업 이상의 고학력층(26.5%)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또 외국인 노동자 지원(9.1%)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최하위를 기록해 이주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아직도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시민사회 단체에서는 우선 기금의 운영 주체로는 정부나 삼성이 아닌 별도 ‘협의체’ 가 필요하며, 구체적으로는 여성(성폭력 피해자 지원), 일자리 창출(사회적 기업 지원) 등 분야에 쓰이길 희망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동우 강남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연구위원)는 “문화양극화 지원, 환경문제, 특히 여성분야 지원이 시급하다”며 “성폭력 피해자 지원, 여성의 정치권 진출을 위한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빈곤문제는 가장 시급한 분야이지만 민간이 아닌 정부가 주도적으로 사회 인프라를 갖출 책임이 있다”는 의견을 분명히했다.

최홍관 사회연대은행 사무총장은 “사회적 기업의 설립으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 사무총장은 “빈곤·소외 계층의 사람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적극적 고용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일은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 기업이 추진하긴 어렵다”며 “삼성이 설립한 무궁화전자가 좋은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무궁화전자는 94년 삼성이 전액 출연한 장애인전용근로시설로서 120명 직원 중 75%가 장애인이다. 이 회사는 지난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사회적 기업의 좋은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강경희 한국여성재단 사무총장은 “삼성이 헌납한 기금은 면죄부 성격이 짙은 만큼 일회성이 아니라 기금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갖길 바란다”며 “기금의 운용 또한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시키는 식의 중장기적 인프라 구성에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지난해 아름다운재단이 ‘제5회 국제기부문화심포지엄(기빙코리아)’에 앞서 조사한 ‘기업의 사회공헌 의식(192개 기업 조사)’에 따르면 사회공헌 경험이 있는 국내 기업들은 사회복지분야(37.8%)와 교육·장학분야(18.5%)에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회공헌 활동의 대상으로는 장애인(49.4%), 노인(41.3%), 아동(40.6%) 순으로 꼽았으며, 여성(4.4%), 북한 이탈주민(1.3%), 외국인 노동자(0.6%)에 대한 관심은 매우 적었다.

해외사례에서 배우자

국제사회는 지금 기업의 경쟁력을 사회공헌 등 윤리경영에 기반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지난 2004년부터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을 지수화하고 이를 기업의 지속가능성의 수치로 활용하자는 논의를 시작했다. 이에 이미 기부문화가 자리잡은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CSR 유럽’을 출범시키고 CSR 표준화에 대처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사회적 책임투자(SRI) 펀드가 탄생했다. 일본도 2003년을 CSR 경영 원년으로 삼고 구체적인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세계에서 기업과 기업인의 사회공헌이 가장 활발한 국가는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 사회기부 문화는 기업보다는 기업인이 개인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미국의 이런 기부문화 활성화는 세금 감면 등의 제도적 혜택도 있지만 기업의 사회공헌이 주가를 움직일 정도로 기업의 가치로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빌 앤드 미란다 재단’은 세계적인 공익 재단이다. 자산규모 28조 원이 넘다 보니 학교 정보기술(IT) 교육 지원에서 아프리카 전염병 퇴치까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개인 자산을 출연한 재단은 대부분 기부자의 목적이 곧 기금의 용처가 된다. 그러나 이미 2∼3세대를 거친 카네기, 록펠러, 포드 재단은 최초 출연자와 관계없이 독립재단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은 기부행위를 통해 재단이 설립되면 매년 자산 가운데 20분의 1을 반드시 사용하도록 법에 명시해 재단이 부당하게 상속되는 것을 막고 있다. 최근에는 신흥 벤처 부자들을 중심으로 업종 관련 분야에 집중 기부하고 이를 장기적 투자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 그동안 의료, 문화, 복지에 치중되던 미국의 기부문화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현금 기부 외에 월마트재단은 지역 밀착형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GE그룹의 ‘엘펀(Elfen)’과 IBM의 ‘온 디맨디 커뮤니티’는 세계적인 자원봉사 조직이다. 한국토요타자동차의 경우도 2000년부터 본사 지원으로 교육, 문화, 의료, 사회봉사, 환경 분야에 폭넓은 지원을 하고 있다.

박성연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의 기업은 직접적인 재단 운영보다 사회복지재단 기부 및 비정부기구(NGO)와 협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를 통해 전문성을 살리고, 일정 분야에 기부금이 몰리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사회공헌 사업을 진행하는 국내 기업들은 기부 대상을 직접 선정하고 기획하는 것을 선호(아름다운재단/조사 기업의 69.7%)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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